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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서 봄이 될 무렵, 그리고 가을에서 겨울이 될 무렵.
미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려고 수화기를 들 때면
“혹시 지금 서머타임 기간인가?”고민해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국 내 거주자들도 서머타임이 언제부터 시작되는지 헷갈려하는 판에 한국에서 미국의 서머타임 시작 날짜를 손쉽게 알리 만무하다.
지난 3일 한명숙 총리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서머타임제(일광절약시간제)를 도입한다고 했다. 여름철 일광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취지에서다.
하절기에 시계를 한 시간 앞당겨 낮시간을 한시간 늘리는 서머타임의 에너지 절약 효과는 이미 입증되었다. 뉴질랜드의 한 전력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서머타임 기간에는 평균 3.5%의 에너지 절약효과가 있었고, 첫 주간 동안에는 가장 전력이 많이 사용되는 저녁 시간대의사용량이 5%나 줄었다고 한다. 1973년 미국에서는 기존 6개월의 서머타임을 8개월로 연장하여 총 60만 배럴의 에너지 절감 효과를 거뒀다. 미국 의회는 2005년 서머타임을 1개월간 더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렇듯 서머타임의 효과과 도입취지에는 일리가 있다. 아마 자리를 마련한 ‘에너지시민연대’를 위한 한총리의 입발린 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불연듯 ‘서머타임이 실시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1988년 당시 4살이었던 본 기자는 서머타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우선 침대 옆에 있는 시계를 고쳐야 한다. 부엌, 거실, 당연히 깜박할 엄마, 아빠를 위해서 안방과 차 안의 시계까지.
그리고 나서는 손목시계, 디지털 카메라, 핸드폰...
엇? 핸드폰은...?? 시간변경기능도 없는데, 그럼 최신형 소유자가 아니면 업그레이드를 다 받아야 하는 건가? 무상으로 해줄까?
내 주변의 일만 따져봤는데도 한두가지가 아니라 생각만으로도 골치가 아파지려고 한다.
하물며 사회 주요 시설과 공장 생산라인 등 까지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조그마한 실수도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발전소나 군사시설, 공항 등에서 관계자가 혹시라도 착각한다면?
그렇게 따져보니 서머타임을 실시하면서 시스템을 바꾸고, 홍보하는 것이 에너지 절약 비용보다 더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못담그냐?’라고 반문할 수 도 있겠지만 혼란이 불러올 사고와 그 처리비용은 가늠하기 힘들다.
사회적 혼란과 비용 문제만은 아니다.
과거 국내 서머타임 시행 때 한 시간 일찍 일어남으로서 바이오리듬도 깨지고, 소화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나같이 아침잠 많은 사람에게 꿀같이 달콤한 한시간을 뺏긴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겨울에는 다시 돌려 받겠지만.)
농장을 경영하는 일부 농부들도 “소나 닭과 같은 가축들이 바뀐 시간에 적응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불평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염려되는 것은 서머타임 도입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근로시간이 늘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문제이다. 97년에도 정부 차원에서 시행을 검토했지만 노동계의 반발로 도입되지 못했다. 안그래도 인터넷과 전자 업무로 일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한데 서머타임이 실시된다면 ‘해가 떠있을 때 까지는 일을 해야한다.’는 느낌도 들고, 업무량도 늘어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물론 효율적으로 시간을 이용해야하는 것도, 에너지를 절약해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이다.
미 운수부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저녁시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 긍정적으로 본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그러한 제도가 정착된 나라에 국한된 일일 것이다.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나 미국은 세계 1차 대전 때부터 실질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고, 전후 체계적으로 정착되었다.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소한 사고와 피해는 일어나고 있지만 으례 그려러니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부기관과 기업, 각종 사회 공공 시설들의 기반제도가 철저하게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과거 잠깐 실시된 서머타임에 대해서 혼란스러운 기억만 가지고 있는 중장년 층들, 그리고 개념조차 잘 모르고 있는 청소년들.
과연 한총리가 언급한 서머타임 도입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는 언제쯤이나 형성될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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