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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일요일, 한통의 전화가 한적했던 오후의 나른함을 깨웠다.
(사)샘골다례 정기진 이사장의 전화였다.
“집에 손님이 오셔서 연차를 만들고 있는데 함께 나누지 않겠습니까?”라고.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곧 찾아뵙지요.” 대답은 했지만, 휴일 무더위로 늘어진 몸은 쉽게 수습되지 않았다.
정 이사장의 집에는 이미 낯익은 몇 분의 손님들이 도착해 있었다.
자리 중앙에 연차가 놓이고 사방에는 다식(茶食)과 함께 금잔이 놓여졌다.
무료하고 나른하기만 했던 잠시전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별 세계에 온 듯 한 분위기다.
한순간 “네”와 “아니요”의 차이로 단순하게 마련된 차회가 아님을 모두가 알아차렸다.
강원도 홍천에서 오신 김진규 선생의 기억이 조금 더 빨랐다. “그러고 보니 여기 모인 모든 선생님들이 지난 영등절(靈登節)에 모두 백학의 농원, 온조우(溫祖宇)에서 함께 제사를 지냈던 분들이군요.” 그리고 다음순간, “아!” 모두가 같은 탄성이다.
“그런데 한분이 빠졌군요.” 정 이사장의 독백이다.
“오늘 언제쯤 오는지 전화나 한번 걸어볼까요?”라고 김영애 선생이 묻자 “아니요, 제가 걸어보죠.”
누구라고 상대를 말하지 않았어도 전화기 너머의 상대는 이계숙 선생이다.
“전화가 되는 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오셨군요. 태국 여행은 잘 하셨습니까? 정읍엔 언제나 오십니까? 그래요? 그럼 빨리 오세요.” 전화통화는 초스피드로 순식간에 끝났다.
이어 정 이사장의 “분명 이것이 인연은 인연이군요. 인천에 내려, 전주 들렀다 지금 막 정읍에 들어서고 있답니다.” 라고 말하자 또 다시 “아!”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온조우(溫祖宇)는 글자 그대로 우리조상을 따뜻하게 대하자는 집이다. 또한 조상의 업적과 공덕을 살펴 연구하고 발표하자는 집이다.
‘백학의 농원’ 온조우에 배향된 신위는 개천(開天)이래 동이(東夷) 땅에 나라를 세웠던 역대 왕조의 창업주들로 환인(桓仁), 환웅(桓雄), 환검(桓儉), 본주(本主), 부루(夫婁), 부우(夫虞), 부소(夫蘇), 부여(夫余), 현왕(玄王), 한안(韓雁), 서여(胥余), 동명(東明), 온조(溫祚), 혁거세(赫居世), 수노(首老), 고왕(高王), 왕건(王建), 요태조(遼太祖), 금태조(金太祖), 이단 이태조(李旦 李太祖)까지다.
온조운 이야기도 잠시 “아니, 오늘 나를 위해 귀국 환영파티라도 준비 하셨나요?”라며 유쾌하게 들어선 이계숙 선생 이야기로 온조우 이야기는 뒤로 미뤄졌다.
찻잔에 몇 순배 연차가 다시 채워질 무렵, 예정에 없던 유지연 선생이 차회를 찾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화제는 다시 온조우로 향했다.
“오늘 우연하게도 차회를 열다보니 모두가 영등절에 함께 제사를 올렸던 분들이 모였는데 지연이는 온조우와 무슨 인연이 있니?” 하고 김영애 선생이 묻자 “온조우요? 하하하……. 제가 온조우와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오고 계신걸 알고 여쭈어 보시는 건가요?”라고 한다.
유 선생은 오래전부터 어머님의 손에 이끌려 그동안 온조우에서 지내는 영등절 제사를 비롯해 어천절(御天節), 단오절(端午節), 개천절(開天節), 동지절(冬至節)에도 온조우를 찾아 조상들에게 예를 올려왔다고 한다.
뒤 늦게 차회에 들어온 유 선생의 설명으로, 지난해 영등절에 조상들께 제사를 올리며 계획했던 헌공다례 계획이 급속하게 수정되어 앞당겨 졌다.
그것은 오는 음력 개천절과 동지절에도 우리가 차로 헌공다례를 올리자는 얘기가 분분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선생님 말씀대로 2천 3백년, 이전부터 이미 정해진 일이고 인연인가?’ 한순간에 나른했던 휴일오후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이끌었던 이날의 차회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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