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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선배 결혼식을 갈 때였다. 적당한 시간에 나왔노라고 생각했지만, 주말을 맞아 꽉 막힌 도로는 내 예상은 커녕 사정조차 봐주지 않았다. 흡사 꽉 메워진 테트리스처럼 제각기 길이가 다른 차들이 유닛 형상을 해 도로를 서로 메우고 있었고, 내가 탄 택시도 서울의 어느 도로 한 가운데서 제 역할을 다하는 네모 유닛처럼 테트리스 구조로 꽉막힌 도로를 형성하고 있었다.
택시 기사의 기본 소임
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소임조차 우물거리는 상황에서 타인의 직업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당시 내가 탄 택시의 운전대를 잡은 기사분은 이 소임을 다시금 생각을 하게끔 해주었다. 도시에서 대중교통으로서의 택시의 소임은 무엇일까? 이 생각을 하게끔 해주는 기사분이였다.
도시 대중교통의 한 축을 담당하는 택시의 소임은 '빠르고 안전하고 편하게' 손님을 집까지 태워다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택시는 존재하고, 승객들은 이를 기대하며 여타 다른 교통수단이 아닌 택시에 승차한다. 간혹 비용적인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경우 버스나 지하철이 아닌 택시를 탄다는 것 자체가 비용에 대한 감수를 하겠다는 상황이고, 실제 대부분 승객들은 특별한 경우 아니고는 비용에 대하여 큰 항의없이 지불하고는 택시를 내린다. (간혹 택시가 돌아간 듯 하여 승객과 기사가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 등은 특별한 경우로 규정한다)
'빠르고 안전하고 편하게' 손님을 태우는 대중교통으로서의 소임이 있는 택시를 모는 택시 기사의 소임은 무엇일까? 친절한 서비스? 깨끗한 매너? 승객을 즐겁게 해주는 유머감각?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으나 개인적으로 난 '빠르고 안전하고 편하게 택시를 운전해야 하는 소임'이 택시 기사로서의 그 첫째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택시의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직접적 조종을 하는 것이 택시 기사의 소임이라고 보는 것이다. 궂이 존재의 이유를 따지고, 유머 감각이나 서비스 등은 무시하여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택시가 택시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첫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인 것이다.
소임을 지키는 택시 기사의 자세
꽉 막힌 도로를 생각하지 못하고 집에서 나온 내게 그 첫째 잘못이 있고, 막힌 도로를 보면서도 지하철이 아닌 택시를 잡아 탔던 내게 그 두번째 잘못이 있는 것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 자신의 문제인 것이고 이에 대한 책임과 피해 역시 고스란히 내게 온다. 이는 택시 기사의 소임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내 개인적인 문제인 것이다. 허나, 당시 택시를 몰았던 기사 분은 이런 개인적인 사정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가 생각한 '택시 기사의 소임'과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빠르고 안전하고 편하게' 승객을 이동시키는 수단인 택시의 기사로서, 승차한 승객의 편의와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꽉 막힌 도로에서 안절부절하며 택시를 잡아타고 좌석에 앉아 안절부절 거리며 씩씩거리는 승객의 사정은 뒤로 한채 꽉 막힌 도로를 휘파람을 불며 유유히 자적하며 콧노래를 흥얼 거리는 모습은 그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한 승객의 입장은 어느 정도 생각한 것이며, 해당 수단을 운전하는 기사로서의 소임은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승객이 안절부절하건간에 자신의 자리에서 흥얼거리며 콧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한적한 휴일 야외로 놀러가는 승용차의 오너의 모습 같았고, 뒷좌석에 앉은 승객은 히치 하이킹을 하여 겨우 자리 한 칸을 양보받은 무임승객 같았다. 대중교통 수단으로서 소임을 지닌 택시는 오로지 고객의 이동에만 치중한 모습이였고, 그 한 가지에 충실한다면 차가 강으로 가건, 배가 산으로 가건 다른 건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자세였다. 그 대중교통을 선택하고, 개인 사업자에 정당한 비용을 지불할 승객에게 보여주는 자세는 과연 최선이였을까? 긴박한 사정과 시간에 쫓겨 안절부절 못하는 승객 앞에서 휘파람을 불며 차창 밖으로 가래를 뱉는 그런 자세 말이다.
그분께 바라는 점
급박한 순간에 길이 막힐 때 앞장서서 길을 뚫어주는 해결사적 모습을 바라는 건 아니다. 출사표를 던진 제갈량처럼 온갖 장애에도 굳건히 길을 뚫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신호를 어겨가며 질주를 하는 적토마적 행보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순간에 그들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승객들에 대한 배려를 조금만 해달라는 것이다. 자리에서 휘파람을 불거나 라디오 유머에 맞춰 웃음을 터뜨리며 가래를 뱉는 행위가 아닌 "차가 많이 막혀서 죄송합니다"는 말 한 마디나 (물론 차가 막힌 것은 그들의 탓이 아니니, 이 말은 정말 형식적이어도 좋다) 최소한 그나마 뚫리는 차선(車線)을 찾아가는 차선(次善)책을 펼쳐주며 그나마 승객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정도 말이다.
택시는 기사의 자가용이 아닌 사업장이며 사무실이고, 승객은 그들을 찾는 클라이언트다.
택시에 오르는 승객을 클라이언트라 보고 클라이언트에 대한 약간의 배려만 고려하여 준다면 어떨까? 한번 탄 승객은 두 번 다시 내 사업장을 찾지 않을 거라는 생각 또한 없애고 꾸준히 내 차를 이용할 승객이라고 생각하여 준다면 더욱 고맙고 말이다.
대다수 이들에겐 평화로웠지만 본인에겐 굉장히 급박했던
어느 휴일에 본인을 태워 준 한 택시 기사 분에게 바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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