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처(庫車), 옛 마을에서 고선지 장군을 떠올리다

-실크로드 여행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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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borisogol)등록 2006.08.29 11:14

2층 기차, 밤 새 내 위의 침대가 옥색 긴꼬리 누에나방처럼 날개를 파닥이고 있었다. ⓒ 최성수



어제 낮 열두 시 오십 분에 우루무치를 출발한 카슈카르 행 열차는 내내 사막을 지친 낙타처럼 헉헉거리며 달려왔다. 그리고 새벽 두 시 사십 분에 내가 내려야 할 쿠처에 도착할 예정이다. 열 네 시간에 가까운 기차 여행, 그러나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단조로운 사막의 풍경에도 지칠 만 할 때쯤이면 늘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온통 흑백인 것 같은 사막 풍경이지만,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색깔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검은 흙이 모여 있는 곳도 있고, 붉은 색에 가까운 흙들이 이어지는 곳도 있다. 풀 한 포기 없이 삐쭉 솟은 산도 있고, 하얗게 소금이 제 몸 말리며 물의 흔적을 증명하는 마른 개울도 있다. 낙타풀이 소똥처럼 누워있는 평원이 한없이 이어지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온통 흙빛 황무지 위로 햇살만 어찔어찔하게 내려 쪼이는 곳도 있다.

막막하고 막막해서 가슴 한 켠이 텅 빈 것 같은 사막 풍경. 기차는 이런 풍경을 스치듯 지나간다. ⓒ 최성수



그런 풍경조차 지칠 만하면, 거짓말처럼 백양나무 숲이 이열 종대로 뻗어 푸르름을 자랑하는 작은 오아시스 마을이 나타난다. 갑자기 흑백의 풍경들이 총천연색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그런 순간이면 가슴 저 아득한 곳에서 절로 기쁨이 솟아오른다.

마치 조울증 환자처럼 순간마다 감정의 변화가 심한 것은, 이곳이 사막이기 때문이고, 내 마음이 그만큼 가라앉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문득 어제 우루무치 역에서의 출발 장면을 아득한 옛 일처럼 아련하게 기억해 낸다. 송곳 세울 틈조차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사람들을 뚫고 간신히 오른 기차는 상층과 하층이 나뉜 이층이었다. 우리 일행이 자리 잡은 곳은 일층의 4인 1실, 2층으로 가 보니 그곳은 2인 1실이었다. 여러 차례 중국 여행을 했지만, 2층으로 된 기차는 처음이다.

함께 여행을 떠난 늦둥이 진형이 녀석은 새벽 비행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움직이는 바람에 잠이 부족할텐데도, 2층 기차를 보더니 환호성이다. 어린 아이에게는 낯선 것이 두려움보다는 신비로움을 먼저 느끼게 하나보다.

자리를 잡고, 나는 창가에 앉아 스쳐 지나가는 사막의 풍경을 그저 막막하게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 막막함을 위해 이번 여행을 떠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우루무치에서 트루판 가는 길의 염호. 숱한 세월 전, 바다의 길이었고, 오랜 세월 전, 사막의 길이었음을 저 호수는 알고 있을까? ⓒ 최성수



우루무치를 출발한 기차는 트루판으로 들어가는 역인 대하연(大河沿)을 지나서 오른쪽으로 돌아든다. 그냥 똑바로 내려가면 하미를 거쳐 돈황, 시안에 이르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돌면 쿠처를 지나 카슈카르까지 이어진다. 대하연까지 오는 사이, 염호를 지났다. 사해 다음으로 염분 농도가 높다는 염호에는 우리나라 한화그룹에서 운영하는 소금 공장이 있다.

바닷물의 일곱 배나 되는 염분을 간직한 큰 호수 염호를 지나자, 그 유명한 풍력 발전소가 나타난다. 끝 간 데를 모르게 늘어선 발전기들이 느릿느릿 날개를 돌리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면서 한편으로는 자연을 절대 그냥 두고 보지 않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보는 것 같아 마음 한 편이 짠해 지기도 한다.

그리곤 다시 한없는 모래사막과 모래 산과 황무지 벌판이 이어진다. 그리고 군데군데 작은 오아시스다. 반복되는 풍경이 그래도 지루하지 않은 것은, 내가 이런 풍경들을 찾아볼 수 없는 이방에서 온 나그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쿠처 가는 길의 사막. 사막에도 산은 있다. 비록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어도... ⓒ 최성수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으로 눈길을 돌린다. 거기 퀭한 눈의 지친 사내가 낯선 얼굴로 나를 건너다본다. 그 낯선 사내는 이제 막 실크로드 여행을 떠난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

퍼뜩 잠결에 내내 파닥거리던 소리가 들렸던 것을 기억해 낸다. 내 위에 매달린 2층 침대의 고정 쇠가 아마도 헐거워졌는지, 기차가 흔들릴 때마다 파닥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런데 나는 잠결에 그 소리를 나방의 날갯짓으로 착각을 했다. 아마 잠결에 ‘저 옥색 긴 꼬리 누에나방 좀 치워.’라고 위층의 아내에게 소리를 질렀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나방은 내 보리소골 집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참새만큼 큰 나방이다. 나방 치고는 모양도 고운데, 생물 전공인 우리 학교 선생 한 분이 놀러 왔다가, 아주 귀한 나방이라고, 청정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나방이라며 감탄한 적이 있었다. 나방은 해로운 곤충이라는 선입견을 그 말을 들으며 지우게 되었는데, 그 인상이 강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었나 보다, 이렇게 아득한 사막의 길에서 그 나방을 생각한 것을 보니.

어둠 속으로 옥색 긴 꼬리 누에나방의 파닥이는 소리도 밀려가고, 어둠도 함께 밀려가고, 생의 아득한 벼랑 끝에 매달린 우리의 하루도 그렇게 밀려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밀려나가는 모든 것들 너머, 아득하게 사막을 지나는 자동차의 불빛과, 어린 날의 기억처럼 오아시스 마을에 매달린 등불들이 깜박인다. 저렇게 잠 못 드는 누군가의 밤을 향해 기차는 달려가고 있는 것이리라. 어쩌면 우리들의 삶은 늘 누군가를 향해 떠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확한 시간에 쿠처 역에 도착한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들고 내려서니,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분다. 새벽 세 시가 가까운 시간, 졸듯이 흐리게 켜진 철길 가의 가로등에는, 내가 꿈결에 본 옥색 긴 꼬리 누에나방은커녕, 날벌레 한 마리조차 없다. 그제야 비로소 이곳이 사막이라는 실감이 든다.

숙소인 쿠처반점에 여장을 풀고, 여명 속에 깊은 잠에 든다. 꿈도 없이 사막의 모래처럼 팍팍한 잠이 나를 옥죄는 쿠처에서의 첫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구자 고성(龜玆古城), 시간 속에 버려진 곳

늦게 잠든 것 치고는 제법 일찍 일어난다. 여행의 아침, 낯선 풍경에 대한 그리움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특히 새벽에 나가 바라보는 거리의 풍경은 늘 여행을 시작하는 나의 그리움 중의 하나다. 그러나 어제 워낙 늦게 도착한 탓인지, 일찍 일어났다 싶으면서도 몸은 영 개운치 않다. 그리움보다는 몸의 피곤이 더 먼저인가보다. 거리 풍경 감상을 미루고 깔깔한 아침 식사 뒤 구자고성을 찾는다.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사이좋게 뒤섞여 모래처럼 바람에 흐르는 쿠처의 길 ⓒ 최성수



쿠처, 옛 구자국의 땅에 온 실감이 난다. 그러나 그 실감은 구자 고성이라는 이름 때문이지, 실제의 모습 때문이 아니다. 그만큼 구자 고성은 다 무너지고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큰 길 가에, 마치 시간 속에 마모되어가는 꿈의 조각들처럼, 구자 고성은 자욱한 먼지와 매연을 온 몸으로 감내해 가며, 조금씩 조금씩 부서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원래는 내성과 외성으로 되어있었다는 구자 고성은 이제 그 위용을 숱한 세월 속에 다 내어주고, 그저 밑둥만 남아있을 뿐이다.

구자고성. 햇살과 바람과 세월에 스러지는 옛 성은 고선지 장군을 기억이나 할까? ⓒ 최성수



구자국(龜玆國)은 한때 서역에서 가장 큰 나라였다. 한나라 때만해도 성 안의 집이 6,970호에 인구가 8만 1천 3백 명이었다고 한다. 인도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 때문에, 국경 무역이 활발했던 곳이고, 인도의 불교가 가장 먼저 전해진 곳이기도 하다. 전한의 멸망 직후에는 흉노와 함께 이웃 카슈카르 지역을 정벌해 서역 지방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나라가 구자국이다. 후한의 장군 반초가 이곳을 점령한 뒤, 그 화려한 시절을 뒤로하고 점점 쇠퇴의 길을 걸었던 구자국.

고선지 장군과 두보의 시 한 편

당나라는 서역 지방의 공략을 위해 이곳 구자국에 안서도호부를 설치한다. 그리고 그 안서도호부에는 고구려 유민의 2세인 고선지 장군이 등장한다. 군인이었던 아버지 고사계를 따라 이곳 쿠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고선지는 서역 지방을 중국의 영토로 만드는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쿠처 길가의 허름한 식당. 쌓아놓은 음식 재료에도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다. ⓒ 최성수



그는 토번(지금의 티벳)과 사라센의 동맹으로 당나라가 견제를 받게 되자 1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토번 점령에 나선다. 서기 747년의 일이다. 파미르 고원을 넘는 이 원정은 서역 지방에 산재해 있던 72개국의 항복을 이끌어 내는 등, 사라센의 동쪽 진출을 막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고선지의 성공이 사라센을 막아 낸 데 있었다면, 그의 실패 역시 사라센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에게 처참한 패배를 안겨준 탈라스 전투 역시 사라센 여러 나라들의 반격이었으니 말이다. 탈라스 전투의 패배는 고선지에게는 패배였지만, 이 전투를 통해 중국의 제지술이 유럽 쪽으로 전파되는 등, 중국 문명과 사라센 문명의 문화, 상업적 교류는 더욱 밀접해 졌다고 한다. 서로 다른 세계들의 교류의 씨가 고선지를 통해 뿌려진 것이다.

고선지 장군의 숨결이 배어 있을 쿠처, 그러나 쿠처의 어디에도 고선지의 유적이나 유물은 없다. 그저 고선지를 기억하는 우리 같은 여행자들의 기억 속에만 장군은 살아있을 뿐이다. 마치 시간 속에 제 몸을 하나하나 부서트리고 있는 저 구자 고성처럼, 고선지 장군도 어쩌면 사막의 햇살, 혹은 흙먼지 바람 속에 스러져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사막은 모든 것을 무화(無化)시키는 곳이다.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는 사막의 시간 속에서, 유물이니 유적이니 하며 인간이 만들어 낸 형식적 형체들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고선지 장군은 자신을 기억하는 우리 같은 여행자들을 덧없다고 웃어버리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두보가 지은 <고도호총마행(高都護驄馬行)-안서도호부 고선지의 말을 노래함)>이라는 시만이 지금도 고선지 장군의 옛 삶을 되살려 줄 뿐이다.

고선지 장군의 푸른 말
높은 이름 싣고 돌아오네.
오랜 세월 전쟁터에서 맞설 이 없었으니,
말과 사람 하나 되어 큰 공 세웠네.
주인의 은혜 입어 돌아오는 길,
아득한 모래땅에서 달려오네.
마구간에 엎드려 은혜를 받지 않고
싸움터에서 내달릴 생각을 하는 용맹함이여.
짧은 발목, 높은 굽 쇠를 디디듯
교하(交河)에서 몇 번이나 얼음을 밟아 깨었으랴.
오화문(五花紋:매화꽃 문양의 말의 반점) 흩어져 구름처럼 몸에 가득하고
만리를 달리면 땀에서 피 섞여 흐르네.
장안의 젊은이여 감히 이 말 타려 하지 마시게.
번개를 스치며 달리는 것 모두 알 텐데.
푸른 실로 머리 묶고 고 장군 위해 늙어갈 뿐이니
언제 다시 횡문(橫門:장안성 북쪽, 실크로드의 옛 길)으로 달려보려나.
(安西都護胡靑驄/聲價欻然來向東/此馬臨陣久無敵/與人一心成大功/
功成惠養隨所致/飄飄遠自流沙至/雄姿未受伏櫪恩/猛氣猶思戰場利/
腕促蹄高如蹄鐵/交河幾蹴層氷裂/五花散作雲滿身/萬里方看汗流血/
長安壯兒不敢騎/走過掣電傾城知/靑絲絡頭爲君老/何由卻出橫門道)

내성과 외성으로 튼튼하게 지어졌었다는 구자 고성에는 이제 사막의 먼지만이 켜켜이 내려앉아 있다. ⓒ 최성수



사람은 없고, 그 자취도 없고, 오직 시만이 남아 옛날을 기억하게 한다. 나는 자꾸 두보의 시의 한 어휘, ‘아득한 모래 땅(流沙)를 떠올린다. 흐르는 모래가 있는 곳, 그 유사가 바로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이 사막의 길, 그 모래 먼지와 한겨울의 에일 듯한 바람과 막막한 시절을 넘어 고선지 장군은 말을 몰았으리라. 교하 고성의 얼음을 깨며, 자신이 갈 길을 바라보다 한 숨 쉬었을 그 고선지 장군을 떠올린다. 그러자 창밖으로 보이는 쿠처의 풍경이 마치 먼 세상에 두고 온 내 이웃 마을같이 푸근하게 느껴진다.

버스는 그런 내 상념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열 종대의 백양나무를 지난다. 길가로 허름한 가게에 한 보자기만큼이나 될까 한 물건을 쌓아놓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양고기를 탁탁 자르더니 팬에 넣고 볶아내는 가게도 있고, 막 구워낸 란(위그르의 빵, 화덕에 굽는다)을 늘어놓은 가게도 있다. 길에는 길고 긴 트럭이 지나고, 그 옆을 할아버지가 당나귀 마차를 끌며 지난다. 현재와 과거가 마구 뒤섞여 있는 것 같다.

가이드가 된 늦둥이의 목소리는 사막으로 흩어지고

백양나무 가로수가 끝나고 나자 이내 또 막막한 사막이다. 내 상념의 끝을 함께 여행을 떠난 늦둥이가 잡아챈다.

백양나무 가로수 길가에 서서 쿠처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버스가 아니라 아득하게 지나간 옛 구자국에 대한 그리움일 지도 모른다. ⓒ 최성수



“아빠, 내가 고선지 장군 이야기 해도 돼요?”
여행을 떠나기 전, 실크로드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은 녀석은, 함께 여행하는 아빠의 친구들에게 제가 아는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 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버스 안의 마이크를 녀석에게 쥐어 준다.

녀석은 입 가까이에 마이크를 가져다 댄 채 제가 아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곳 쿠처는 고선지 장군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래요. 고선지 장군은 고려의 유민이었거든요. 아버지 고사계가 이 쿠처에서 군인을 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답니다. 어려서는 동네 친구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대요. ‘이 못난 고구려 놈아.’ 하고 아이들이 놀려댔지만, 고선지 장군은 그런 놀림을 이겨내고 이 실크로드를 호령하는 장군이 되었지요. 많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지만, 탈라스 전투에서 패한 뒤 당나라의 서울인 장안에서 살았대요. 그런데 안록산이 난을 일으키자 황제는 또 고선지 장군을 불러 난을 막으라고 명령했답니다.”

녀석은 책에서 본 이야기를 잘도 기억하고 있다가 주절주절 털어놓습니다. 안록산과 싸움을 벌이던 고선지 장군은 싸움에서 밀리게 되자 군량미를 풀어 군사들에게 배불리 먹이고, 남는 것은 적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불태워 버렸다. 그런데 고선지를 미워하던 그의 변령성이 이 사실을 왜곡해 싸우기 싫어 일부러 패배했으며, 귀한 군량미를 남용했다고 황제에게 고했다. 이 일로 고선지 장군은 참수형을 당하게 된다. 목이 베이기 직전, 고선지 장군은 형장에 나온 부하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믿는다면 잘못이 없다고 세 번 소리치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잘못이 없다’고 세 번 외친다. 그 소리를 들으며 고선지 장군은 목이 잘려 죽게 된다.

삼륜차와 자전거는 오아시스 마을 쿠처의 먼지 낀 길을 과거로 가는 것처럼 달려간다. ⓒ 최성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고선지 장군의 이야기를 읊어대는 늦둥이 나이쯤에, 고선지 장군은 이 곳 쿠처에 살았을 지도 모른다. 고선지 장군이 처형단한 것이 755년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천 이백 년 전이다. 천년도 더 되는 그 아득한 세월을, 고선지 장군 이야기는 이 타클라마칸 사막을 떠돌다, 우리 늦둥이의 이야기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모든 이야기는 이야기꾼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법이다. 고선지 장군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이곳 쿠처에서, 그 나이 또래의 우리 아이를 통해 장군이 이야기로 환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나는 잠시 했다. 그런 착각이 가능한 것은 이곳이 더 기댈 것 하나 없이 막막한 사막이고, 사막에서 살아있는 것은 바람과 햇살뿐이기 때문이다.
사막의 쨍쨍한 햇살과 건조한 바람은 때로 사람의 생각을 하얗게 지워버린다. 지워진 생각 속에는 전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이 환상처럼 조합되기도 하는 법이다.

키질 천불동을 향해 달리는 버스 차창으로는 결코 변할 것 같지 않은 무채색의 사막 풍경이 이어지고, 나는 그 풍경들 속에서 그저 멍하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텅 빈 내 머릿속의 사막으로 고선지 장군이 스쳐 지나간다. 그 환영 또한 한 줄기 햇살이거나 혹은 바람인지도 모른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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