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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창간기념기획으로 멀리 미국까지 가서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는
이문열씨를 만나고 왔네요. 역부러 은거하는 이를 들쑤셔놓고 ‘오랜 침묵을
깨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스스로 하방(下放)이라 하면서 여전히
녹슬지 않은 언변을 토해내는 걸 보면 침묵이나 은거란 아무나 하는 거 아니지요.
(인터뷰를 한 배 모 기자는 창비 가을호에도 ‘진보의 위기와 비판적 지식인의
진로’라는 글이 보이던데 비판적 지식인의 모습이라기에는 참 딱하네요)
각설하고 표젯말이 “변화하는 세계를 보라. 지금 세계를 주도하는 세력은
‘진보 우파’다. 한 번 진보라 해서 영원히 진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진보가
좌파의 전유물도 아니다“ 인데요. 좋게 말해서 이 나라의 대표적 보수논객으로
손꼽히는 이씨가 이제는 진보까지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세계를 주도하는 세력이 진보 우파라 하였는데 그 예로 컴퓨터 등 정보혁명을
들고 있네요. 첨단의 무한한 부가가치를 보장하고 있는 산업이니 당연히 눈에
불을 켜고 많은 이들이 경쟁에 뛰어들테고 그러니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제품개발에 혈안이 될 수 밖에 없겠는데 그게 사회적이든 정치적이든
진보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그렇게 본다면 IT강국이라는 이 나라는 엄청난 진보진영의
득세국가이겠으며 더 이상 보수 진보 논쟁이 필요없겠지요.
그렇게 팽팽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신자유주의 물결은 더욱 거세게 몰아칠테고 이를
위하여 또 이에 거슬리는 모든 것들이 부정되고 제거되는 것이 변화하는 세계의
내용이며, ‘더 많이, 더 확고하게 가지기 위한 창의적이고 무자비한 몸부림’ 이거 혹시
힘센 자, 가진 자들의 본질 아니던가요. (그걸 보수라고 하기에도 억울하지만)
그리고 무슨 군대 구호처럼 ‘한 번 진보는 영원한 진보가 아니다’고 하였는데 당연히
진보가 그 사회에 자리를 잡으면 보수가 되는 것이 이치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보수가
아니 자기 것을 지키느라 버티는 수구가 진보가 될 수는 없지요. 또 좌파의 의미도
이러한 사회체제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흐름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래서 진보나 좌파를 같은 선상에 보아주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이씨가 말하는 좌파는 곧 바로 사회주의 특히 북한정권과 연관지어져 있지요.
좌파와 우파도 남한은 우파정권, 북한은 좌파정권으로 구분짓는데 당시의 시대논리로
보면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의 대부분이 좌파운동이었으며, 또 새로운 이념을 앞세운
새로운 질서를 원하면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자연스레 결합된 것이라 볼 때,
당연한 것이지요.
그런데 아직도 좌파는 북한과 줄긋기를 하는 걸 보면 해방이후 지금까지 전가의 보도로
써먹는 레드 콤플렉스의 흉측스러운 혐의를 벗기 어렵겠네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좌파나 진보는 하나의 흐름이고 길 위에 있는 것이지요. 북한의 여러 가지 문제는 오히려
수구적이고 일인 권력의 변칙적 모습이라는데 있는 것이지 그것이 좌파의 본질이거나
내용일 수는 없지요. 이씨의 주장대로 한 번 좌파는 영원한 좌파가 아닌 셈인데
어떻게 아직도 그 때의 우파의 몫, 좌파의 몫이 그대로 정해져 있을 수 있나요.
전작권 환수 논란이나 사학법 개정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의 주권이 자주권에서
출발한다면 그것을 우리가 갖겠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주장이지요. 물론 이것도
민족이나 통일문제처럼 너무도 당연한 주장으로 꼼짝 못하게 밀어붙이는 포퓰리즘으로
또 밀어붙이겠지만 지난 50여년이 넘게 나라예산의 많은 부분을 국방비에 퍼붓고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나서고 거기다 군인출신 대통령이 줄줄이 나왔음에도
지금까지 뭘하고 있었나요.
사학법 개정, 말로만 사학이지 교육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학교를 마치 제 것인양
말그대로 학생을 볼모로 세간의 파렴치들보다 못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 사학을
뜯어고치자는데 거기에 무슨 이념이 들어가고 다른 속내가 필요합니까.
말은 맞는 말인데 도통 노정권을 믿을 수가 없다구요. 무능하고 부패한 거기다 설익은
이념으로 좌충우돌하는 현재의 정부라고요. 부패까지는 몰라도 참 무능한 정부이지요.
그래서 그 결과는. 조잡한 한국판 문화혁명이라고요. 모르긴 몰라도 철저하게 가진 자,
힘있는 자들에게 농락당하면서 이른바 수구세력의 희희낙락 놀이판을 만들어 주지
않았나요. 어쩌면 엎드려 절해야 할 만큼 고맙고 어여쁜 정권 아닌가요. (스스로를
하방이라고 평하면서 유유자적하는 이씨는 문화혁명을 즐기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러면서 혹시나 노파심은 버리지 않네요. 지난 두 번의 대통령선거에서 뜻밖의
패배를 맛 본 수구세력의 대변인답게 한나라당에 개량되고 개선된 모습을 촉구하면서
그 동안 군사독재정권의 전매특허로 속알머리를 빼먹던 북풍과 지역감정을 역으로
조심하라고 이르기 까지 하네요. ‘뉴라이트’에 대해서도 혹시라도 ‘뉴’가 붙어
라이트의 정체성을 잃어버릴까 염려하고 있구요.
어쨌든 이 궁리 저 궁리에도 왕성한 집필욕까지 보이고 있다는 이씨의 하방이
올해 정도면 끝난다고 합니다. 약간의 바램이라면 부디 뉴욕에서 베스트셀러가
나올 때까지 오래 머무르면서 한 번 씩 배알하러 가는 손님 맞으며 이따금씩만
침묵을 깨시길. 부디 그리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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