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웅장한 금산사 미륵전의 모습 ⓒ 이수앙
▲ 보물 제23호 석련대 ⓒ 이수앙
▲ 보물 제25호 오층석탑 ⓒ 이수앙
▲ 보물 제27호 육각다층석탑 ⓒ 이수앙
▲ 미륵전 외벽 하단의 낙서들 ⓒ 이수앙
▲ 낙서들이 벽화까지 뒤덮고 있다 ⓒ 이수앙
▲ 국보와 함께 전할 부러운(?) 이름들 ⓒ 이수앙
▲ 국보와 함께 전할 부러운(?) 이름들 ⓒ 이수앙
전북 김제시에 위치한 금산사(金山寺)는 백제 법왕 1년인 599년에 창건된 것으로 기록이 남아있고,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러 진표율사가 크게 중창한 사찰이다. 1400여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금산사이기에 아름다운 문화유적이 많다.
금산사는 국보 제62호인 미륵전(彌勒殿)을 비롯하여 고려시대의 석등 조성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보물 제22호 노주(露柱), 보물 제23호 석련대(石連臺), 보물 제24호 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 등을 포함하여 총 1점의 국보와 10점의 보물이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는 보찰(寶刹)이다.
그 중에서도 대가람의 중심에 서있는 3층 규모의 미륵전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인조 13년에 재건된 것이기는 하나, 법주사의 팔상전과 함께 우리나라 전통 사찰건축의 백미 중 하나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미륵전 내부에는 사대부중을 내려보고 있는 웅장하고 신비한 미륵 삼존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내부와 외부의 벽에는 아름다운 벽화로 장식되어있다.
그러나 미래에 오실 부처님인 미륵불을 모신 까닭일까, 미륵전 주변은 앞날에도 그들의 사랑이 변하지 않기를 원하는 수많은 연인들의 이름으로 도배되어있었다. 국보라는 명칭도,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양의 장소라는 명분도 이곳을 찾은 연인들의 사랑(?) 앞에는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미륵전 외벽을 빼곡히 매운 사랑의 낙서와 이름들은 하단 벽면뿐만 아니라 손이 쉽게 닿지 않을 법한 상단의 벽화들까지 뒤덮고 있었으며, 그 중 대부분은 칼이나 돌 등 날카로운 도구로 벽에 깊은 생채기를 만들어 새겨놓은 것들이었다. 즉, 낙서들을 지우기 위해서는 외벽에 새로 흙을 덧댈 수밖에 없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시간이 오래 지나 사찰과 법당을 보수하고, 재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그것이 그것들의 운명이겠지만 문화재 자체의 부실로 인한 것이 아닌 관람자들의 손에 의해 그 시간이 앞당겨지고 있는 모습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외벽의 벽화들은 어떤 방법으로 지켜낼 수 있단 말인가?
세속의 사대부중에게 사랑의 약속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일이었겠지만, 그들의 사랑으로 우리의 문화유산이 이처럼 병들어가고 있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낙서란 모름지기 아무도 모르게 하고, 그것이 오래 남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을수록 뿌듯한 법이지만, 자신들의 것이 소중하다면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하는 법당과 문화재의 아름다움도 소중함을 깨닫고 실천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미 미륵전 벽면에 새겨진 이 이름들은 앞으로도 금산사 미륵전의 역사와 함께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금산사를 찾을 동시대의 우리들과 우리의 후손들은 그 이름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어떤 마음으로 기억하게 될 것인지 씁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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