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한테도 서비스를 다 해야 하나요? "

서비스 정신 교육 강사의 24시

검토 완료

신아연(ayounshin)등록 2006.09.29 19:52
<대한민국 모든 직종, 모든 국민을 상대로 1백 퍼센트 고객만족을 목표로 매너와 예절을 가르치는 서비스 정신 교육강사 (CS)의 24시. 적게는 5명, 많게는 3, 4백 명을 상대로 ‘사람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전하려는 이들의 생활은 긴장의 연속이다. 화법, 표정, 동작, 용모, 복장에 이르기까지 내면과 외향의 어울림에서 풍겨나는 ‘고품격 매너’를 창출하고자 밤낮으로 뛰고 있는 경력 5, 6년차 CS 강사들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


도움말 : 좋은 서비스를 창조하는 사람들 (차 승은, 박 선나, 김 희자)


<안방 마님의 심한 노출에 대한 대응은? >

“각양각색의 만국기도 아니고 왜 냄새 나는 양말짝을 차창마다 매달고 다니세요? “ “강사님이 그러라고 하셨잖아요.” 아니, 제가 언제요? “ “고린내 퐁퐁 풍기는 양말을 신고 고객의 가정을 방문하는 건 매너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하셨잖아요. 하루에 한 두 집도 아니고 여러 집을 돌려면 일하는 중간중간 공중 화장실에라도 가서 신었던 양말을 빨아서 운전 중에 차창에 걸어 말려가며 바꿔 신을 수 밖에 없어요.”

아! 이렇게 고지식 할 수가. 물류회사 택배 사원을 대상으로 고객 가정 방문 시 신을 벗어야 할 때는 양말의 위생상태에 특히 신경을 써 줄 것을 당부하면서, 할 수 있다면 깨끗한 양말로 바꿔 신는 센스도 필요하다고 말한 강의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하지만 회사의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찍힌 차를 몰면서 창문에는 양말을 휘날리고 다닌다면 회사 이미지를 망치게 되잖아요. 냄새 안나는 양말을 신어서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회사 전체의 이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게 순서일 듯 한데요.” “ 그러네요. 그 생각은 미처 못했습니다.” 그제서야 그 모범 수강생은 머리를 긁적이며 CS 강의를 들은 이후부터 하루에 5-6 켤레씩 빨아대던 ‘공포의 양말세탁’에서 벗어났다.

“근데 강사님, 일반 가정에 배달을 하다 보면요, 특히 여름철에는 안방 마님들이 노출이 심한 옷차림이나 어떤 땐 속옷바람으로 현관에 나오는 경우도 있거든요. 배운대로라면 고객과 눈을 맞추고 웃으면서 인사를 해야 하는데, 이럴 땐 그게 쉽지 않아요. 눈 둘 바를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안주인이 너무 예뻐서 자꾸 쳐다보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

강사 생활을 한 지 1년 정도 될 때 이른바 ‘초짜 시절’이면 으레 한번쯤 겪게 되는 짓궂은 상황이다. “그럴 때는 고객이 눈치 못 채는 한에서 흘금흘금 요령껏 곁눈질을 할 수밖에 없겠죠? “

겉으로는 나 역시 능청스럽게 받아 쳤지만 속으로는 ‘니가 알아서 하세요!’다. 강사를 곯려주려는 의도에 잠시 약이 오르다가도 다른 질문자에 의해 상황은 금세 진지하게 변한다.

“강사님 생각에는 저희들 물류배송 담당 사원들의 복장이 적합하다고 보십니까? 이렇게 넥타이를 매고 무거운 짐을 등에 지다 보면 잘못해서 목 뒤로 넘어간 타이가 등짐에 짓눌려 목을 조를 때도 있거든요. 그럴 땐 정말 위험합니다.” “정말 그렇겠네요. 하지만 자유로운 차림새나 흐트러진 복장으로 고객을 대하다 보면 스스로도 자기 회사에 대한 프라이드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 그런 안전사고는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애들을 상대할 때는 주전버리가 필수!>

CS 강사들의 활동영역은 거의 제한이 없다.
반장 부반장 같은 초등학교 임원 모임에 초빙되어 가는 날이면 소시지, 컵 라면, 사탕, 과자 따위의 주전 버리를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 초등생들의 주의집중을 요구하는 데는 군것질 거리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술이나 간단한 게임, 역할극 등을 준비해 가는 동료들도 있지만 아이들의 집중력은 기껏해야 1분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뭐니뭐니해도 먹을 것이 그나마 잘 통하는 편이다.

“여러분, 이 연예인 잘 아시죠? 이 사람처럼 미소 지으면 참 예쁘겠죠? 우리 모두 따라 해 볼까요? “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는 시청각적으로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순간, “ 에이, 나는 저 사람 싫어해요, 안 따라 할래요.” “ 저는 좋아해요. 그것말고 사진 더 없어요? “ 아이구 못 말려~. 초점이 영 빗나갔잖아.

사태를 수습할 틈도 없이 인사 법에 대해 가르치는 순간 또 다른 기습이 날아든다. 보통 고개를 숙일 때는 15도, 30도, 45도 각도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15도 각도는 ‘목례' 에 해당한다고 설명하자 목례란 ‘목으로 하는 인사’냐며 딴에는 진지하게 되물어온다. 삼천포로 빠지는 순간이다.



<"범죄자도 우리 고객입니까? ">

강연을 다니다 보면 처음부터 비협조적인 그룹을 만날 때가 있는데 택시 기사들을 모아놓은 곳이 특히 그렇다.
“우리 앞에 서기 전에 아르바이트로 최소 석 달 간 직접 택시 운전을 해 보고 오쇼. 그 때는 내 열중해서 들으리다.” “휴~. 택시 운전은 아니지만 버스 기사와 함께 하루 종일 동승한 적은 있다구요. 기사님들 사정을 조금은 알고 있으니 제발 제 강의 좀 들어주시와요~.”

하루 일당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모처럼 쉬는 날 쉬지도 못하고 사주의 강압(?)에 마지못해 교육을 받으러 나와야 하는 택시 기사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다 보니 승객의 안전과 서비스 정신을 고양하기 위한 교육 취지는 온데 간데 없고 고용주들의 등쌀에 이제는 벼라 별 곳엘 다 나와야 한다는 볼멘 소리부터 터져 나오는 것이다.

“어서오십시오, 어디로 모실깝쇼? “ 말이야 쉽지요. 하지만 흐느적 흐느적 제 몸도 못 가누는 취객을 상대할 때 그 말이 어디 쉽게 나오게 되는 줄 아세요? 그러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세 달만 택시 운전해 보라는 거예요.” “무슨 일이든 예외적 상황을 끌어들여서 일반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승객에 대한 택시 기사들의 보다 섬세한 배려와 친절한 자세를 몸에 배도록 하자는 것이지 취객에 대한 대응을 위한 교육이 아닙니다. 이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좀 엄한 태도로 시작해 본다. 서비스 마인드 교육이란 말에 거부감부터 드러내는 택시 기사들의 마음을 열게 하려면 공감어린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강사가 ‘자기들 편’이라는 필(?)이 꽂히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마음을 여는 것은 시간문제다. 택시 기사들 뿐 아니라 사람들과 온종일 부대끼는 업무 종사자들일수록 CS 강의나 강사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아냥 거릴 때가 많다.

특히 경찰이나 공무원을 상대로 강의할 때가 가장 진땀이 난다. 어디 한번 해 보라지, 무슨 소리를 얼마나 잘 하는지 들어나 보자 하는 태도로 처음부터 팔짱을 턱 하니 끼고 어깃장을 놓을 태세를 취할 때의 순간적인 절망감이란…

“ 업무상 상대하는 모든 민원을 ‘고객 개념’으로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경찰과 형사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첫말을 떼어본다. “고객이라고 하셨나요, 강사님? 살인강도나 절도범도 우리에게는 그럼 고객입니까? “ 아니나 다를까 기다렸다는 듯 당장 ‘딴지’를 건다. 핵심은 범죄자를 대할 때가 아니라 민원을 처리할 때도 범인 다루듯 하는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공직자들의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는 것을 본인들이 더 잘 알면서.., 으~~, 얄미워..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어디까지나 이들 역시 ‘나의 고객’. 일단 화장실로 달려가 마음을 가라앉힌 후 다시 ‘위스키’미소를 지으며 강의실로 돌아오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락부락한 경찰관이나 고집불통 공무원들일수록 한번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의외의 순수함이 정수처럼 쏟아지기 마련이다.
또 한가지는 강의실 내에서 내 편이 되어 줄 것 만 같은 한 사람을 ‘찍어서’ 집중 눈길 공략을 하는 것도 그간의 짬밥으로 터득한 요령이라면 요령이다. ‘확실한 내 편’이 생기고 나면 그때부터 강의실 분위기는 급선회한다. “강사님, 저 사람 말은 무시하고 그냥 계속하세요. 허튼 소리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 없어요.” 어느 구석에선가 이런 말이 들리기 시작하면 그 날의 강연은 대성공이다.


<'아무래도 내가 맞는 것 같은데..'>

대인관계 에티켓의 기본 중의 기본을 가르치는 명함 전달하기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상대방과 명함을 맞교환 할 때는 받은 명함을 새끼 손가락에 꽂음과 동시에 자신의 명함을 건네야 합니다.” “잠깐만요, 강사님. 전에 받았던 교육에서는 상대방 명함을 받아서 앞에 놓인 테이블에 살짝 올려놓고 제 명함을 건네라고 하던데요?”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올바른 방법입니다.” “아이고, 참, 지난 번 아무개 강사님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니까요.”
아무개 강사라면 CS의 원조격 강사이자 이 분야의 최고참이 아니던가. 이럴 땐 정말 난처하다. 시대 변화와 환경에 따라 예법과 매너도 상황에 맞게 진화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대선배의 가르침을 거스리기에는 좀..
“생각해보니 두 가지 방식 모두 괜찮을 것 같네요. 적당히 절충해도 무난합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곤란한 상황을 슬쩍 모면해 보지만 속은 영 찜찜하다. ‘아무래도 내가 맞는 것 같은데.. ’


<서비스 강사로 산다는 것>


CS 강의실마다 빨간 립스틱의 강사가 ‘모두들 위스키 하세요.’ 를 외치던 중 한 강의실 앞 줄에서부터 킥킥대기 시작하는데…, 이유는 도발적 색상의 빨강 립스틱이 발칙하게도 그 강사의 앞니를 물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립스틱이 앞니에 묻은 줄도 모르고 열강을 하던 그 이, “그렇게 해야 여러분들의 웃음이 자연스레 유발될 거라 생각했죠” 라는 옹색한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는 ‘설’이 지금도 전해진다.

서비스 정신의 ' 정석’ 이나 ‘고전’은 항공사 승무원들의 그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나 여 강사들의 뇌리에는 여 승무원들의 머리칼 한 올 흐트러짐 없이 올백으로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과 매끈하게 빠진 정장차림, 환한 웃음을 더욱 화사하게 덧입히는 새빨간 립스틱이 완벽한 서비스 정신의 상징처럼 각인되어 있다.
오늘날 그 정신은 일반 기업체는 물론이고 공무원, 교직원, 군인, 경찰, 병원 의료진 등 대한민국 전 직종과 전업무를 대상으로 ‘구현’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크게 작게 저지르는 우리들의 실수 담은 다양하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식사 및 테이블 예절 법을 전하는 시간. 강의를 다니다 보면 불규칙한 식사와 짧은 휴식 시간에 늘 쫓기기 마련이다. 그 날도 주최측이 마련해 준 장소에서 식사 예의 차릴 새 없이 ‘후다닥’ 끼니를 때우고 나니 아차 싶었다. 혹시 함께 밥을 먹은 강의 참가자들이 내 모습을 봤다면 대번에 ‘표리부동한 위선자’로 찍었을 테지. 그 뿐인 줄 알아? 흘러내린 스타킹을 올릴 때는 반드시 화장실 한 칸에 들어가서 남이 안 보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놓고 정작 내 자신은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화장실 공동공간에서 슬쩍 올릴 때도 있거든.

그런가 하면 직접 당해 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래라 저래라 입바른 소리하기 힘든 일도 정말 많다. 고부간의 갈등을 어떻게 매끈하게 풀 수 있는지를 물어오는 강의 요청 같은 경우가 특히 그렇다. 결혼도 안 한 처지에서 이러쿵저러쿵 한다 한들 먹힐 것 같지 않아서이다. 하지만 며느리 입장에서 시어머니도 ‘고객’이라는 개념만은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나 아닌 ‘상대’를 대하는 기본은 결국 ‘인격적 대우’이자 ‘인간 대접’이 기본바탕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한 동료 중에는 시가에 ‘일곱 시누이 고객’이 있지만 CS 정신을 훌륭하게 실현하고 사는 사람도 있으니까.

결국 ‘인간 대 인간’의 문제인 셈인데, 사실 어떤 면에선 우리 같은 직업이 쓸모 없어져야 제대로 된 사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따금 할 때도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손한 자세가 저절로 몸에 밴다면 구태여 교육이 필요 없을 테니까. 이에 대한 반증이랄까, 매너 컨설팅이 우리 사회에 보편화 되면서 역기능이라고 할 지, 그림자가 두드러지는 현상을 경험할 땐 어쩔 수 없이 우울해진다.

한 예로 기업주측에서 고객에 대한 직원들의 친절 교육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억지 소리나 생떼를 부리며 무례하게 구는 소비자들도 있고 심지어 기물을 부수고 종업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례도 가끔 있다. 그런 사람에게 단단히 일러두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 사람도 당신에게는 또 다른 ‘고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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