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손으로 써 내려간 사랑,그리고 희망-

- 시는 제 생활에서 한떨기 꽃같은 존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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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yjk6377)등록 2006.10.23 13:36
꽃을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중엔 악인이 없다는 말도 있다.
고양시청앞 농협 건물 그 자리에서만 20여년 구두를 닥아 왔다는 송병무씨.
60이 다된 나이에 별스럽진 못해도 자신만의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시”쓰는 일을 선택 했다는 그는 자신의 시를 이렇게 소개했다.
힘들고 고단한 생활 속에서
빛으로 오는 희망이 없었다면
저는 모든 것을
자포자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잃어버렸던 새 희망을 되찾아준
삶의 중심인 아내를
죽는 날까지 기억하고
희망을 나누며
두고두고 아껴
종이 되어 귀를 막겠습니다 ('내 사랑' 중)에서
자신의 삶을 그렸듯이 사람사는게 다 그렇지만 수월치 않게 살아 온 자신의 삶이 무에 그리 대단하겠느냐는 소심한 생각에 용기를 내다가도 스스로 발목을 잡히기도 했지만 그래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목을 치밀고 올라오는 건 어쩔수 없었단다.
한번은 화장실에서 주체할수 없이 떠오르는 시상을 정리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을 땐 이미 사라지려는 시상의 꼬리를 잡기 위해 안타까웠던 일을 경험하며 역시 글은 떠오르는데로 써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때부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을 하다가도 생각을 하다가도 무언가 떠오르면 그대로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부평초같이 살아온 자신의 삶에 돗을 달고 싶어 다시 신앙을 시작하면서 조그만 개척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종이한장 으로 된 주보용지 뒷면에 빈 공간에 자신의 생각을 써 내려갔는데 그것이 우연히 목사님 눈에 띄여 글을 한번 써 보면 좋겠다는 말에 용기를 내었다고.
20여년 이 일을 해오며 많은 일이 있었지만 5-6년전 글을 쓰기 시작하며 겪었던 일들은 지금도 세상을 다시 배울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
그가 느낀 건 사람들의 마음이 무척이나 가난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글을 쓴다는 사실에도 사람마다 제각기 반응이 달랐다고. 열명중 일곱여덟은 당신보다 더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도 많은데 뭐 당신까지 글을 쓴다고 나서냐는 비난과 경시 심지어 멸시까지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중에 한두명은 그래도 용기를 가지고 해보라며 대단하다는 격려까지 아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배운 것이 남에 대한 배려의 마음과 넉넉한 마음이 얼마나 힘이 되고 그것이 사회를 밝게 이끌어가는 힘이 되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많이 망설이기도 했지만 어차피 선택한 실에 최선을 다해보고 싶은 생각에 용기는 내었지만 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많이 배운 것도 아니다 보니 자신감을 잃을 때도 있었다. 남들이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면 오히려 더 오기가 생기기도 했고 그것이 또 힘을 낼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의 첫 번째 시집 제목이 ‘틀에 갇힌 사람들’이다.
그가 하루종일 사각의 틀에 갖혀 지내듯 사람들은 제각기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간다고 하지만 나름대로 모두 무언가의 틀에 갖혀 산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침 6시면 의정부 집을 출발하여 이곳 일터에 도착하는 시간이 오전 8시, 그때부터 송병무씨는 한평 남짓한 사각의 틀에 갖혀 하루 종일 일을 한다.
오전 내내 계속되는 구두와의 전쟁을 치르고 나면 점심을 먹을 시간을 놓칠 때도 허다하다. 그렇지만 그는 이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두 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엔 행여나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직업도 숨겼다고 한다. 아직 직업의 차등이 현저한 사회를 피부로 느끼며 살아왔기에 어린 아들들이 받을지도 모르는 천대나 차별이 두려워서 였다. 밤 10시가 넘어 귀가하면 하루종일 일하느라 미처 손도 씻지 못하고 귀가하는 날엔 목욕탕 문을 잠가놓고 더운물에 정성스럽게 검게 더러워진 손을 씻어내며 아이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모두 잠든 한밤중에 하루종일 구두를 닦은 천을 직접 푹푹 삶는 일을 하면서도 아이들에겐 가죽을 취급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숨겨왔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날엔가 큰 아들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아버지 손이 왜 그러세요?” 하기에 아버지가 일이 바빠 가죽을 만지다 미처 씻지 못햇다고 하니 “아버지 다 알아요. 일부러 애스시지 않으셔도 되요. 저희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하는 큰아들 말에 콧날이 시큰해져옴을 느꼈다고. 아이들이 다 알고도 오히려 자존심 강한 아버지를 배려하느라 모르는 척 해준 속깊은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자신이 열심히 살아 온만큼 아이들 교육 하나는 제대로 시켰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의 시에는 생활의 애환을 이겨낸 사람에게서만 풍겨 나올수 있는 고단하지만 메시지가 있는 삶의 향기가 묻어난다.
남은 인생도 사람과 사람의 교류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쓰고 싶다며 앞으로는 자신이 보고 느끼고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수필로 써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다.
어릴적부터 일기를 써오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온 것이 지금의 바탕이 되어준 것 같다고 한다. 또하나 욕심이 있다면 지금 속해 있는 ‘덕양지부 구두협회’에서 하고 있는 독거노인돕기나 소년소녀 가장돕기등에 좀더 많은 정성을 들이고 싶은데 자신같이 이름없는 시인의 시집을 누가 사겠냐며 웃는다. 그 시집이 어느정도 팔리면 모두 불우이웃 돕기에 쓸 작정이다. 자신의 그런 뜻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 자신의 구둣가게 한켠에 쌓여 있는 시집들이 많은 이들에게 익혀지기를 바램하는 그는 오늘도 검은 손으로 희망을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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