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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의 “10 minuets”에선 작업에 있어 10분의 시간이 갖는 효과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영화 속 10분 1년도 지나쳐” 그렇다. 영화 속 10분을 현실의 시간으로 바뀔 때 10분이란 숫자는 인물의 심리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 가능한 탄력성, 유연성을 지닌다. (우리 사회에서 시간의 무한한 변형 가능성을 찾으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시간의 변형은 흔히 일어나니까.) 우리가 흔히 쓰는 관용어구로 “~~한지 엊그제 같은데”는 어떤 상황의 영향에도 굴하지 않고 단지 꾸준히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엊그제’란 말로 간단히 압축시키며 여기서 우린 시간의 놀라운 탄력성을 확인 할 수 있다. 이 관용어는 그 범위를 정하기 어려울 만큼 광범위한 시간의 폭을 담을 수 있다. 학창시절 졸업의 상황을 가정해 본다면 작게는 3년, 길게는 6년을 ‘엊그제’란 단어에 뭉뚱그려 넣을 수 있다. 현실에서 시간의 유연성은 이처럼 묵묵히 흘렀던 과거의 시간이 사람들의 기억, 회상에 따라 과감히 축약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럼 시간이 제 시간의 길이를 넘어 늘어나는 반대의 경우를 보자. 드라마가 끝을 향해 갈 때면 으레 시간의 경과에 따른 등장인물의 변화가 등장한다. 그 때 드라마는 “몇 년 후” 또는 “몇 개월 뒤”와 같은 자막으로 묵묵히 흘러가는 시간을 한 뭉치로 왈칵 보내버린다. 놀라운 변화다. 그 자막이 뜨는 순간은 채 1분이 안 되지만, 그 사이 드라마의 시간은 자막이 주문한 시간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시청자에게 변화를 보여준다. 시간의 유연성을 뒷받침하려고 메이크업은 배우의 얼굴에 세월을 주입한다. 극의 전개와 마무리를 위한 드라마의 시간 늘리기는 구성을 위한 장치임을 감안하는 시청자의 수용으로 정당성을 확보한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시간의 늘어짐이 있다. 수술실 앞에서 환자의 안녕을 기도하는 보호자의 1분은 간절함과 초조함에 영향을 받아 10시간, 10년으로 늘어져 느릿하게 흘러간다. 어떤 상황에서 시간의 흐름을 견디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사람들은 시간이 원래의 길이와 다르게 한 없이 늘어지는 것처럼 느끼곤 한다. (ex : 출산을 기다리는 부모의 10달, 제대를 손꼽아 보는 일병의 2년, 방학을 기다리는 학생의 5달 ……)
사람들의 인생은 늘 비슷해 다른 날과 구별할 수 없는 반복되는 하루, 권태를 불러오는 잔잔한 일상, 치열하고 지루한 노력의 날들, 이런 시간이 모여 촘촘히 쌓아올린 지층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한결같은 시간의 흐름은 인물이 놓인 상황에 따라(현실, 드라마, 영화 ……), 그 사람의 심정에 따라 유연성을 발휘한다. 가끔 충실한 하루하루가 가져올 미래의 변화를 성급히 맞고 싶을 때 드라마의 시간 뛰어넘기는 경원과 염원의 대상이다. 자막하나로 원하는 시간을 빨리 돌리는 드라마는 변화와 그에 따른 노력의 시간보다 빠른 결과를 제공한다. ‘드라마니까’ 하고 수용하는 시청자는 내심 그 변화가 현실에서 일어났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같은 이유로 드라마의 시간 뛰어넘기는 대리만족의 현상이 되기도 한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은 얼른 지나갔으면 하고, 기쁨과 환희의 시간은 느릿하게 흘렀으면 하고 비는 것이 사람들의 솔직하고, 소박한 바람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고,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을 늘리고, 줄이는 마음의 위안보다는 충실하게 보낸 시간은 후회를 줄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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