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알아요?

연극 <처음 해본 이야기>를 보고

검토 완료

신소영(seeingsky)등록 2006.11.28 11:43

ⓒ 문화기획 파란

사랑은 변하지 않는 인류 보편의 화두다. 대중가요 노랫말에서부터 걸쭉한 상을 받은 문학작품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망론하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사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의 근원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사랑을 나누지 않았던들 어찌 다음 세대를 기약할 수 있겠는가.

여기 신만이 알 법한 성스럽고 초월적인 사랑을 꿈꾸는 한 여자가 있다. 그녀에게 있어 뭇 남녀간의 사랑은 화학 반응에 불과하다. 짧은 순간 서로에게 이끌림은 오래지 않아 둔해질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그녀를 보고 반했다며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를 갖고 싶은 거, 아닌가요?” 남녀가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는 일련의 데이트 과정이 성관계를 위한 전초전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그녀이기에 이들 남녀의 관계는 끝에서부터 출발한다.

사랑에 눈 먼 남자는 사랑을 믿지 않는 여자에게 사랑을 설명한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할 수 없게 한 그녀 앞에서 남자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 말뿐이었다. “당신의 엉덩이가 보고 싶었어요” 이 한마디에 여자의 마음이 흔들렸다. 보고 싶다는 고백에 눈물이 날만큼 그녀는 사랑에 목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의 감정은 화학 반응이며 자신은 감상주의에 빠져있을 뿐이라고 애써 모른 척 해보지만, 그녀의 몸은 눈물로써 진실에 반응했다.

육체적인 사랑만으로 점철된 관계 맺음이 잘못된 것 같다며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남자이지만, 남자 역시 사랑을 알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여자가 자신에게서 어떠한 것도 받지 않으려 했기에 받았다고 느낄 수 없는 성을 주었노라 항변했지만, 진정으로 여자를 사랑했더라면 마음의 문을 여는 일에 더 애를 썼어야 했기 때문이다. 성관계로부터 시작한 사랑의 줄다리기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손을 잡는 데서 막을 내린다. 이제껏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서로 다른 사랑을 바라보던 그들이 비로소 마주 보게 된 것이다.

물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지는 것처럼 사랑도 어떤 사람의 마음에 자리잡느냐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양을 띤다. 컵이냐 사발이냐에 따라 물의 모양이 달라지더라도 변함없이 물인 것처럼 사랑의 모양이 달라진다고 해서 사랑 그 자체가 변질되어선 안 된다. 오늘날 이 시대는 사랑이 넘친다.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들도 남자친구, 여자친구라며 이 다음에 커서 결혼할 사람이라고 말한다. 젊은이들은 쉴 새 없이 소개팅, 미팅을 반복하며 사랑 찾기에 나선다. 이른바 계약 연애라며 사랑놀음을 하는 이들도 있고, 돈 몇 푼에 애인 행세를 하며 쿨한 만남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가짜 사랑이 흔해질수록 사랑 본연의 맛과 멋을 아는 이들은 줄어드는 것 같다.

두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던 남자와 여자, 이제 그들은 사랑을 알까? 서로 다른 사랑을 꿈꾸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더불어 사랑하기 위한 첫 번째 대화, 연극 ‘처음 해본 이야기’를 통해 우리 가슴 속의 사랑도 조금 더 뚜렷한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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