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풍 당당, 아름다운 노년

2006 '노인일자리박람회'를 찾아서

검토 완료

신선희(sin35hun)등록 2006.12.17 11:41

9시 20분. 행사장 문이 열리면서 참가자들이 입장하고 있다. ⓒ 신선희, 오정민

한 시간이나 남았음에도, 행사장 입구는 자원봉사자와 노인 구직자들로 가득했다. 좋은 일자리를 놓칠까봐 조바심이 생겨 아침부터 서둘렀다는 할머니의 미소에는 사뭇 긴장감마저 도는 듯했다.

@BRI@ 9시 20분부터 행사장 입장이 시작됐다.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행사장 규모는 기대 이상으로 컸다. 실내에는 일반 일자리부스 84개, 기획 행사부스 36개, 총 120개의 부스가 행사장을 채웠다. 특히, 일반 일자리부스로는 구·군청의 공공사업 일자리관 8개와 노인 관련 단체관 8개를 제외한 65개의 부스가 일반 기업관이 있었다. 44개 업체(공공업무 제외)가 참여했던 2005년에 보다 증가했다는 점에서, 노인 일자리사업에 대한 기업의 관심을 알 수 있었다.

주최 측은 이번 행사가 ‘축제의 장’ 이상의 직접적인 ‘구인·구직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력서 대필관, 온라인 채용관, 사진관, 복사관에 100여명의 자원 봉사자를 배치해 구직자들이 손쉽게 지원할 수 있도록 도왔고, 돋보기안경 배치 및 면접용 이발 서비스 무료 제공 등의 노력을 보였다.

개회식이 끝나고 11시쯤 되자 참가자 수가 절정에 달했다. 부스마다 참가자들로 북적였고, 이력서 대필관과 사진관, 복사관 앞에는 긴 줄이 이어졌다. 무대에선 차력쇼나 건강 체조와 같은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됐다. 한 구직자와 면담을 하고 있는 건설자재제조회사 미래테크(주)의 부스를 찾았다. 황용덕씨(73)는 13년 동안 목수 생활을 했고, 얼마 전까지는 아파트 경비 일을 했다고 한다. 황씨는 면담 중에 거듭 “내 나이도 괜찮소?”라고 질문했다. 황씨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참여기업 대부분이 지원 자격을 55~65세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60대 중반의 사람들이 많았던 작년에 비해 올해는 60대 중반이 감소하고 70대 후반의 노인이 많이 왔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낮은 기준이다. 미래테크 손동태 상무(50)는 “65세 이상 어르신들도 기력이 좋아 일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작업장

행사에 1만 5천여 명의 구직자들이 참가해, 120여개의 부스를 찾았다. ⓒ 신선희, 오정민


분위기와 건강상의 위험 때문에 업체입장에서는 65세 이하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하지만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이 강한 분이라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며 구직자들의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했다. 행사장 곳곳에서 연령제한에 기가 눌린 채 지원서를 한 장도 제출하지 못한 노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구직자들이 이력서 대필관에서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 신선희, 오정민

공군에서 군무원으로 30년 넘게 근무하고, 1년 전 정년퇴직 한 김덕재씨(60)는 여기선 ‘젊은이’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그 역시 일자리 구하긴 쉽지 않다고 한다. 겨우 일자리를 찾으면 단순노무나 2교대 아파트 경비직뿐이라고 했다. 김 씨처럼 연금을 받는 노인들은 생계보단 소일거리를 하려고 취업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 적당한 일자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8월 말까지의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대구·경북지역의 고령자 신규 일자리는 1,058개인데 비해, 구직자수는 19,665명으로 일자리 경쟁 배수가 18.6배가 된다. 이는 전국평균 15.3배를 상회하는 수치로 절대적으로 일자리가 부족한 실정을 반영한다. 또,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80% 이상이 공공근로나 단순노무직으로 편중돼 있어 취업선택의 폭 마저 아주 좁다. 갈수록 늘어가는 고학력 퇴직자들을 대비해서라도 다양한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

참가 업체 측에서 추천한 노인들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경험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업장 내 인간관계 형성이나 업무수행능력이 좋다고 한다. 이직률이 낮고

한 참가자가 이력서를 벽에 대고 작성하고 있다. ⓒ 신선희, 오정민

젊은 근로자보다 인내심이 많기 때문에 단체 생활에 잘 적응한다는 것이다. 생산성은 좀 떨어지지만, 근면하고 성실해 같은 일을 반복하는 업무에는 제격이다. 보광직물은 작년 행사에서 6명을 모집했는데, 현재까지 5명이 그대로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도중 그만 둔 1명도 가정형편상 그만 뒀지만 4개월 동안 모범적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업체 측에서는 대부분, 구직자들 스스로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능동적으로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관계자 000씨는 행사 참가자들이 불평·불만을 표현하기보다 행사의 본래 취지를 알고 보다 적극적으로 행사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행사를 시행해 숨어있는 ‘노는 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노인들이 지닌 적성과 소질을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에 참여의 길을 넓혀야 한다. 우리나라의 소중한 인력을 잃지 않도록 하루빨리 적절한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며 ‘노인일자리박람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촉구했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하는 ‘노인일자리박람회’.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이 행사를 뒤로 지속적인 사후관리가 어렵다는 것. 각 구별 시니어클럽이나 노인 복지관에서 인력을 파견해 박람회 준비를 하고 있다. 행사를 주최하고 관리할 인력이 너무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박람회가 끝난 후 채용 된 노인들을 지속 관리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또한, 이날 행사에 대해 언론들이 대부분의 참가 업체가 단순 노무직인 점을 부정적 시각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참가하는 업체의 용역은 많지만, 단순 노무직 용역업체를 뺀다면 박람회에 들어올 업체가 거의 없는 것이 실정이라고 한다.

이번 행사의 실무진인 김석원씨(35·사회복지사)는 노인 일자리사업의 성공적 발전을 위해 사회 전반적인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보수적 성격이 강한 대구에서는 취업에 성공한 이들도 출근 전날, 못 하겠다고 전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살고 있거나, 자식들에게 ‘흉 보이는 일’이 아닐까하는 염려가 주된 이유다. 하지만, 2·3개월 동안 근무한 노인 근로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일거리가 생겨 재밌고, 용돈도 마련할 수 있어 자식들 보기도 한결 편하다고 답했다. 또, 구직자들도 자신의 과거에 얽매여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사회부양을 책임지던 옛날과 지금을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눈을 낮추고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박람회 주최 측에서는 지속적인 노인채용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인터넷 인력 데이터베이스(www.dgsilver.or.kr)를 구축하고 있다. 대부분 노인들이 인터넷 사용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행사장에서는 인터넷 라운지를 마련해 이력서를 대신 작성해 주면서 지원자의 자료를 함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고 있다. 앞으로도 각 구의 시니어클럽을 통해 구인·구직 정보를 공유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김석원씨는, 현재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 복지적 측면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현재의 복지시설은 노인들의 여가 선용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일을 할 능력을 기르기 위해 취업과 관련된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적조치로 할당제가 도입되는 등 정치적 대안이 있다면 노인들을 고용하려는 업체가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람회 포스터. 노풍당당! 일하는 노인은 아름답다! ⓒ 주최측 홈페이지 참고

오후 5시가 되니 행사장은 한산해졌다. 벌써 원하는 인력을 다 채우고 철수하는 업체도 있었다. 한참 진행되던 야외행사도 거의 철수했다. 참가자들은 행사장 주변에 마련된 사진전을 구경하거나 야외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시대를 열심히 살고 또 다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그들을 보며 젊은이 못지않은 강한 삶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사회에서 더 이상 노인은 죽은 인력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젊은 근로자가 낫다는 업체들의 인식 때문에 노인 스스로가 취업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행사를 통해 그들이 제 2의 삶을 살고, 마지막 여생을 자신이 가진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사회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은 사후보완 프로그램이 미숙한 상태다. 현재 부족한 점을 보완해 그들이 취업전선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꼭 박람회와 같은 거대규모 행사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노력이 절실한 시기다. 이제 노인 일자리사업의 첫 단추나 마찬가지인 만큼 풍부한 개선책을 마련한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노풍당당! 일하는 노인은 아름답다. 황혼에 비친 그들의 흰머리가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신선희 (sin35ta@hanmail.net)
오정민 (zeta7323@hanmail.net)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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