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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완역본이 발간된 것은 서양철학 도입 100여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일이다. 국내 고대 그리스철학 전공자들의 5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로 나온 첫 완역본의 발간이 가지는 의의는 크다. 새로운 완역본은 기존의 영어판의 중역과 비전문가들의 오역 등의 문제를 해소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철학이 갖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우리말로 풀어 옮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난해한 것으로만 여겨져 왔던 철학의 세계를 대중들이 보다 정확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완역본이 이제야 등장한 것은 또한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철학을 비롯하여 인문학의 깊이 있는 연구는 고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 위에서 이뤄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여년 만에야 가장 기초적인 고전이 번역되었다. 이는 우리의 척박한 학문적 토양을 보여준다. 그리고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중시하는 오늘의 사회 풍토를 웅변한다. 예를 들어 한 해 동안 원전 몇 쪽만 읽고 논문 10편을 내는 학자가 있다. 그리고 한 해 동안 원전 1권을 번역하는 데 주력하는 학자가 있다. 이 경우 논문 10편을 쓴 학자의 업적이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고전의 번역은 학문의 토대를 쌓는 일이다. 또한 남의 사상을 우리의 사상으로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때문에 번역의 가치는 논문과 동일하게 다뤄져야 한다. 특히 고전 번역의 경우에는 논문보다도 더욱 무게를 둬야 한다. 학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원에서도 고전 번역을 박사학위 논문의 집필과 똑같은 비중으로 다뤄야 한다.
고전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 또한 중요한 문제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출간된 다음 이를 보도한 기사들은 거의가 문화면의 단신이었다. 저서 자체에 대한 소개는 <한겨레>에서밖에 다뤄지지 않았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다룬 나머지 기사들은 거의가 논술과 관련된 기사들이었다. 대중들의 고전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대학입학을 위한 논술교재 정도로 여기는 태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논술이 추구하는 목적은 대학입학의 당락을 가르는 것만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자는 것이 논술의 처음 취지다. 그리고 고전 읽기는 자유로운 사고의 첫 걸음이다. 동서고금을 넘나들어 인간이 벌였던 사색과 탐구를 접하면서 아이들은 다르게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볼 수 있게 되며, 다름을 인정하는 열린 자세와 창의성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모두 미래의 우리 사회를 살아갈 이들이 갖춰야 할 소양들이다. 때문에 고전 읽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다. 제대로 된 고전 읽기가 이뤄질 때 우리의 아이들은 비로소 세계를 향해 열린 완성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우리 사회 역시 오늘날보다 더욱 깊이 있는 양식과 지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B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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