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뉴델리공항은 (생각보다) 크고 깨끗하다. 인천공항같은 빤지르함은 없지만, 지금
김포공항 정도의 낡고 소박한 공간이 초행의 이방인에게 별 위압감 없이 편안하게(만만
하게?) 다가온다. 에어컨은 가동중인것 같은데 실내공기는 꽤 후덕지근하고 텁텁하다.
@BRI@일단 무작정 남들 가는대로 따라 걸으니 Immigration 창구가 나온다. 자정넘은 시간이건
만 웬 사람이 이리도 많은가? 무지막지하게 늘어선 줄에 비해 입국절차는 꽤 신속하게
진행된다. 퍽 피곤해 보이는 담당자는 의례적인 미소나 ‘Welcome to India’라는 인삿말도
없이 입국도장만 쾅~찍어준다. (그래. 도장만 찍어주면 됬지.. 뭐)
문제는 Baggage. 컨베이어 벨트는 쉴새없이 돌아가고, 같은 비행기를 타고온 사람들은
하나.둘 짐을 찾아 나가는데 내 짐은 안 보인다. 픽업해줄 사람이 기다릴 일도 걱정이고
무엇보다 담배 고프다. 비행기로 남의 짐 옮겨 주는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피곤한
상태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를 계속 지켜보고 있자니 ‘세상에 꽁짜는 없다’는 말이 새삼 절감이 된다. 한 시간여 만에 짐을 찾아 입국장으로 나선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쓰인 종이를 한장씩 들고 서있다. '이 많은 사람들중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찾나?'하는 걱정과는 달리 곧 픽업해주기로 한 식당 이름이 쓰인
종이를 들고 있는 한국 청년이 눈에 들어온다. 무척이나 반가운 내 마음과는 달리 덤덤한
표정으로 이름만 확인하더니, 한무리의 한국 젊은이들이 서있는 곳을 가리키며 같이 서서 기다리란다. 아직 더 나오실 분이 있다고. (당연히) 내가 꼴지로 나왔을꺼라 생각했는데,
누가 또? 그리고 얼마나 더?
목이 말라 매점에 들어가 생수 한병을 사려니 20Rs를 달란다. 가이드북이나 인터넷정보에 의하면 1L에 10Rs 내외라던데, 이건 500ml도 안되는 작은 병이지 않은가? 소문대로 공항
에서부터 바가지를 씌우려 덤비는구나. '이 사람들이 나를 바보로 아나?'하는 생각이 들어
생수병을 그냥 내려 놓고, 공항건물 밖으로 나와 담배나 한대 피운다.
듣던대로 출구 바로 앞에 Pre-Paid Taxi 창구가 있고, 껌껌하게 생긴 수많은 인도남자들
이 다가와 뭐라뭐라 말을 걸어온다. 이 상황에서 혼자 택시를 잡아 타고 깜깜한 낯선 도시로 들어가 숙소를 찾는건 아무래도 무리였겠다. 좀 번잡스러워도 픽업신청을 하길 잘했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연배가 좀 들어보이는 아저씨 2명이 합류해서 남녀대학생 5명팀, 아저씨 2명팀, 그리고 혼자온 아줌마인 나.. 모두 8명. 이제 다 나왔단다. 무료픽업을
통한 물품조달이 생각보다 대규모로 이루어짐에 놀란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라면과 소주를 사왔는지 바닥에 박스가 수북히 쌓여있다.
12시 조금 넘어 착륙했는데 새벽2시가 넘어서야 공항건물을 빠져 나온다. 줄지어 카트를
밀고 구름다리 비슷한걸 통과하니 컴컴한 주차장이 나온다. 미리 준비시킨듯한 차 3대에
3명씩 나눠 타도록 지정해주는데, 나는 아저씨들과 같이 타랜다.(늙은이들은 늙은이들 끼리? 경로당 차??)
인도인 기사들이 차에서 내려 짐칸에 짐을 싣기 시작하는데, 조심성없이 턱턱 던진다.
새 노트북이 그리 다뤄지는게 걸려서 마중나온 한국 청년에게 “이건 좀 따로 챙기죠”했더니 “괜찮아요. 그냥 같이 싣게 두세요” 한다. 무성의한 대답이 거슬리지만 자기네 물건을
자기가 그렇게 다루겠다는데 내가 더 할 말이 뭐 있나?
덥고 피곤하고 졸리다. 3시간 반의 시차가 있으니 한국시간으로 벌써 새벽 5시반이 넘었
다. 졸릴만 하다. 공항에서 나와 몇걸음이나 걸었다고 옷은 벌써 땀에 젖어든다. 한밤중
더위가 이 정도니 낮에는 얼마나 더울지 상상이 안된다.(아니.. 된다.)
그만 내 짐을 챙겨 앞자리에 타려는데, 짐을 싣던 인도인기사가 기겁을 하고 달려 온다.
왜 그러지? 아까 분명히 나보고 이 차 타랬는데? 아저씨들도 벌써 뒷자리에 타고 있잖아?
이런?? 조수석으로 생각하고 문을 연 자리에 운전대가 떠억 버티고 있다. 인도는 도로체
계가 우리나라와 반대던가? 차를 비잉~ 돌아 반대쪽 문을 열려니 비로서 다른 나라에 왔
다는 실감이 든다.
뒷자리에 탄 아저씨들이 자기네끼리 '왕이 있는 나라는 운전석이 모두 오른쪽'이는 이야
기를 나눈다. '영국 호주 일본..' 예까지 들면서.. 그런가? 인도에 지금 왕이 있나? 아닐
텐데..모르겠다~ 한명은 심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고(긍께잉~), 한명은 경상도 억양이다. 내일이면 각자의 길로 흩어질 여행자들이기에 정식인사를 생략하고 목례만 나눈다.
에어컨은 물론 싸이드미러도 없는 딱딱한 고물차가 차선,신호 모두 무시하고 깜깜한 델리
시내를 쌩쌩 달려간다. 밤이라 통행량이 많지 않은 반면 길위를 달리는 차들은 대부분 무
언가를 잔뜩 실은 대형 화물트럭인데, 그들도 차선,신호 무시하고 무지막지하게 달리기는
마찬가지. 불안해서 안전벨트를 찾으니 (물론?) 없다. 꼬질한 행색의 나이든 기사는 매우
피곤해보인다.
겁이 난다기 보다 기가 막혀 실실 웃음이 나온다. 경상도아저씨가 기사에게 양해를 구하
고 담배를 피우시기에 뒷자리의 흡연이 끝나기를 기다려 나도 한대 빼어 문다. 아~ 이
여행을 온게 잘한 일인가??
40분 넘게 걸려 차가 여행자의 거리, 빠하르간지에 도착한다. 인적없는 깜깜한 거리에
소와 개들이 유령처럼 돌아 다니고 있다. 생각했던것 보다 지저분하고 음침하다. 무섭다.
(빠하르간지: 델리 기차역 바로 앞에 위치한 지저분하기로 소문이 난 동네로, 교통이
편리하고 저렴한 숙소와 각종 여행관련 편의시설들이 밀집해 있어 대부분의 여행자가
여기에서 인도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차3대가 모두 도착해서 짐을 내리고, 짐 숫자가 맞는지 확인하란다. 아니...이럴수가??
노트북이 안보인다. 설마~하고 수북히 쌓인 박스 더미와 차 트렁크와 좌석까지 일일이
찾아 보았으나 끝끝내 노트북 가방이 안보인다.
이게 말이 되나? 잃어 버리려면 라면이나 한박스 잃어버리지, 저 많은 라면과 소주박스를 합한것 보다 비싼, 거기다 내 책임인 노트북이 하필 없어지다니? 분명히 비행기에서 갖고
내렸고, 공항에서부터 여기까지 아무데도 안들리고 곧장 왔는데 도대체 어디서 흘린걸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내가 탔던 차의 기사가 '그런 물건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한다. 아뿔싸!! 주차장이 어두워
서 기사가 카트 아랫쪽에 있던 검은 가방을 못보고 아예 안실은 모양이다. 그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공항주차장에 놓고 왔으니 찾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 마중나왔던 청년은 나한테는 차마 뭐라고 못하고 기사한테만 눈을 아래위로 부라리며 뭐라고 하는데, 그게 어디 그
사람만의 잘못인가?
더이상 거기서 우왕좌왕해봤자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청년이 '늦었으니 그만 들어가 쉬시라'며 방 열쇠를 나눠준다. 그래도 차마 그냥 들어갈수가 없어서 '공항에 가볼
까요?'했더니 '가봐야 그게 아직 거기 있겠어요? 제가 전화는 해볼께요' 한다. 맞는 말이다. 그게 아직 거기 있을리가 있나? 사실 너무 덥고 피곤해서 찾지못할꺼 뻔히 알면서 다시 그 먼길을 다녀 오는것도 끔찍했던터라, 일단 못이기는체 방으로 들어온다.
환타스틱하게 좋지도, 인크레더블하게 나쁘지도 않은 방. 그래도 샤워기와 좌변기가 있는 개인욕실이 딸려 있고, 천정에 대형선풍기도 돌아가고, 시트에 얼룩도 없으니 빠하르간지
에서는 신경써서 구한 숙소라는걸 알겠는데, 그러저러한거 다 눈에 안들어온다. 샤워하고 짐을 정리하는 내내 머릿속에는 한가지 생각만 맴돈다. 어떻게 해야하나?
마음 독하게 먹고 쎄게 나가면 내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것도 아니다. '나는 분명히 부탁
받은 물건을 인도까지 안전히 가져왔고, 공항에서 따로 챙기라고 주의까지 줬으니 그후에
생긴 문제는 당신들 책임아니냐? 난 모르겠다'하고 내일 아침 내 갈곳으로 가면 그만이다.
내게 필요했던건 공항픽업이었으니, 남은 1박 숙소와 식사1끼 대접은 안받아도 그만이다.
하지만 그래놓고 내가 마음 편히 이 여행을 마칠수 있을까? 이사람들도 외국생활하는데
필요해서 산 물건일텐데, 꼭 내 책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책임이 없다고도 할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에게 모든 손해를 뒤집어 씌우고 나만 살겠다고 내빼면...되나?
굳이 책임을 묻자면 그 인도인 기사에게 물을수 있겠으나, 행색으로 볼때 그가 컴퓨터값을 물어줄수는 없을것 같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결국 식당측과 내가 손해를 나누는게 무
난한 해결책인데, 그럼 내가 얼마를 물어주면 될까? 그건 그렇고 요새 노트북이 얼마나 하나? 백만원은 넘을꺼고 150만원? 200만원? 200만원이라고 치면, 내가 반은 물어 줘야 하나? 아..잠이 안온다. 4시..5시..문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문을 여니 아까 그 청년이 서있다.
나: 어떻게 해요? 못찾았죠?
그: 아뇨. 찾았어요.
나: ??????... 어떻게요??
그: 공항 매니저 사무실에 있대요.
나: 누가 줏어다 줬군요. 인도사람들 나쁘다더니, 좋은 사람도 많군요.
그: 그게 아니고요. 얼마전에 뭄바이에서 테러가 있었잖아요. 그것 때문에 요새 인도가
비상인데, 까맣고 무거운 가방이 공항주차장에 있으니 폭탄인줄 알고 겁나서 아무도
못열어보고, 공항경찰에 연락을 한 모양이예요.
나: ?????...운이 좋네요. 어째튼 정말 다행이예요.
그: 네. 그런데 탑승자가 직접 여권이랑 탑승권 갖고 같이 공항에 나오셔야 찾을수있대요.
죄송하지만 택시를 불렀으니, 조금 있다 같이 가주셔야 겠어요.
나: 아. 그래요. 그게 뭐 어려워요. 금방 준비할테니 조금만 기다려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잃어버린 상황도 황당하지만, 찾은 상황는 더 기가 막힌다.
도대체 사람들이 얼마나 테러 공포에 시달리면 이런 일이 생기나? 뭄바이테러 이후 여행
일정 조정을 심각히 고려한 적도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그 테러의 덕(?)을 보다니..
테러에 고맙다고 할수도 없고.. 물건 찾았다고 무작정 좋아만할 상황도 아닌것 같고...
택시가 6시반에 도착하니 조금 더 주무시라며 청년이 방을 나간후 시계를 보니 5시반,
어짜피 잠은 애진작에 달아난지라 옷을 갈아입고 숙소밖으로 나가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
있다. 후덕지근하고 뿌우연 빠하르간지의 아침공기를 뚫고 조심스레 몇걸음 걸어본다.
아직 사람의 움직임이 없는 질척한 골목길에 어디선가 나타난 소떼가 또 어디론가 걸어
가고 있지만, 더이상 이 거리가 낯설지도 두렵지도 않다. 테러위협이야 어쨌튼 . 일단
해가 떴고, 무엇보다 노트북을 찾았으니..
잠시후 차를 몰고 나타난 사람은 어젯밤보다 더욱 피곤한 행색인 어제 그 택시기사.
지난밤 청년이 낯살이나 든 그를 몰아 붙일때 편들어 주지 못한것도 미안하고 헤어진지
3시간 남짓 지났는데 그새 잠을 잤을까 싶어서 '잠은 좀 잤냐?'고 말을 건네니 '한숨도
못 잤는데 공항에 다녀오자 마자 아그라까지 예약손님을 모시고 다녀와야 해서 큰일'이
라면서도 '그래도 컴퓨터를 찾았으니 모든게 No Problem이고 OK~'라며 밝게 웃는다.
그는 No problem인지 몰라도, 나는 Little Problem이고, 뉘인지 모를 그 아그라 왕복손님은 Much Problem일것 같은데..(아그라: 타지마할이 있는 도시로 차로 4시간 정도 소요)
차가 달리니 열린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빠하르간지를 벗어나니 고층
건물과 녹지도 많고 꽤 큰 도시의 면모가 느껴진다. 버스타고 출근하는 사람들, 릭샤타고
학교가는 아이들.. 비록 아침부터 일없이 길가에 나와 멍하니 앉아 있는 남자들과 도로사이 풀밭에서 거적을 자고 있는 사람들, 요란한 장식을 메고 맨발로 걸어가고 있는 오렌지색 옷을 입은 사람들 등 간간히 낯선 풍경도 눈에 들어오나, 아침을 맞는 대도시의 모습은
서울이나 델리나 크게 다를게 없다.
공항에 도착하니 흰두어가 서툰 청년을 대신해서 기사가 일을 처리한다. 일단 우리를 이끌고 매니저 사무실이란데로 들어가더니 제복을 입은 배나온 남자에게 뭐라뭐라 설명을 한다. 남자가 책상에서 노트북 가방을 꺼낸다. 맞다! 저거다!! 그런데 '이제 찾았다'싶은 우리 마음과는 달리, 듣는 사람의 태도가 여엉 삐딱하고 그럴수록 기사는 더욱 고개를 조아리며 목소리가 간절해진다. 그러고보니 비행기에 갖고 타서 그게 내 물건임을 증명할 수하물표도 없고, 공항에서 전해받은 물건이라 내용물에 대해서도 자세히 모른다.
다 찾은 물건을 눈 앞에서 놓치게 되는건 아닌가?하고 초조해 하고 있는데, 안쪽에서 배가 더 나온 남자가 나오더니 내게 영어로 간단히 몇마디 묻고 가져가랜다. 너무나 간단하게
처리되서 어안이 벙벙해 하고 있는데, 기사를 쥐잡듯 하던 배 덜나온 남자는 그의 결정에
대해 가타부타 말할 입장이 아닌듯 눈만 멀뚱거리며 내게 노트북 가방을 건네준다.(A..C.. 어디가던 꼭 별 실권없는 놈들이 괜히 까탈을 떨고 개폼을 잡는단말야..) 어째튼 노트북을 메고 공항건물 밖으로 나오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 처음부터 이토록 행운이 따르니, 이번
여행이 아주 성공적일것 같은 예감과 의욕이 마구마구 든다.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의 거리는 본격적인 하루의 일상이 시작되어 소음과 활기가 넘쳐나고, 택시 안은 컴퓨터를 찾아 신이 난 두 남자(한국청년과 인도기사)의 수다로 시끄럽다. 주로 청년이 창밖의 풍경을 보며 '저건 뭐냐?'고 물어보고 기사가 대답을 하는데, 청년의 영어가 매우 Broken임에 비해, 기사는 막힘없는 문장을 구사한다.
오렌지색 옷을 입은 맨발의 사람들은 종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갠지스강까지 걸어가는
중이고, 인도의 독립기념일은 우리나라와 같은 8월15일인데 바로 옆 파키스탄은 하루 차
이인 8월14일이라는 등..거의 가이드 수준인 기사의 설명을 재밌게 들으며 가고 있는데,
청년이 우리나라도 일본식민지였다가 8월15일에 독립했다고 하자, 기사가 깜짝 놀라며
"Japan?? Not England??"하고 소리를 지른다. 300년 넘게 영국식민지였던 인도에 '세상
의 모든 식민지는 영국일 것'이라는 오해가 아직 남아있는게 우습되, 우습지 않다.
택시비라도 내가 내려고 청년에게 공항까지 왕복택시비를 물으니 400Rs정도 란다. 보통
1$=45Rs로 계산하기에 10$ 를 주면서 택시비 하라니까 청년이 기겁을 하면서 안된단다.
그러면 자기가 사장한테 혼난다고, 그냥 식당에 와서 많이 팔아 달란다. 델리에 머물 날도 몇칠 안되고, 혼자 먹으면 얼마나 먹으며, 외국에서 굳이 한국음식 찾아 먹을 생각도 없는데 내가 매상을 올려주면 얼마나 올려줄수 있다고? 어째튼 외국에 나와 한국사람끼리
얼굴 붉히지 않고 헤어지게 되서 다행이다. 일단 꺼낸 돈을 다시 넣기도 뭐해 기사에게
팁으로 주려다가 마음을 고쳐 먹는다. 이제 막 여행 시작인데, 벌써부터 기분 내키는대로
쓰면 안되다. 아낄수있는건 아끼자
차가 빠하르간지에 도착하니 8시반. 델리시내가 모두 애진작에 잠에서 께어 하루를 시작
했건만 여행자의 거리, 빠하르간지는 아직 잠들어있다. 긴장이 풀려서 갑자기 허기와 졸음이 몰려 오는데, 문 연 식당이 안보인다. 한국식당도 9시는 되야 직원들이 출근하고 9시반은 되야 식사가 가능하단다. 무척 피곤하지만 그냥 들어가면 배가 고파 잠도 안올것 같으므로, 환전하고 집에 도착 전화라도 걸면서 식당 문 열 시간을 기다리기로 한다.
멀리 Exchange라고 쓴 간판이 보여 가보니 여기도 아직 문을 안열었다. 난감해하며 서있는데 지나가던 (꼬지지한) 인도인이 뭐라뭐라 하면서 손짓을 한다. 자기를 따라오라는 뜻
같은데, 누군줄 알고 내가 자기를 따라 가겠나? 그래도 하두 열심히 이야기하고, 인적은
없다해도 이미 훤한 아침인데 뭔일 있겠나? 싶어 몇걸음 따라가보니, 불켜진 환전소가 막
문을 열고 있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사례라도 하려고 돌아보니 그는 이미 제 갈길을
가기에 바쁘다. 경계심이 지나쳐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려는 사람까지도 의심부터 하고
보는 나를 본다. 조심은 해야겠지만, 마음을 좀 풀어야 겠다. 계속 이런 상태로 다니는건
너무 피곤하다. 세상에 어디든 좋은사람 나쁜사람 섞여있고, 사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
환율은 수수료 떼고 100$=4,630Rs. 은행환율보다 꽤 좋다. 외국인은 기차표 살때 환전영수증이 필요하다는 구절이 생각나 환전영수증을 요구하니, 좀 귀찮아하며 여권을 달래 이름을 적더니 컴퓨터로 뽑아준다. 여기도 영수증 없는 거래를 선호하나?
다음은 집에 도착 전화 걸기.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컴퓨터에서 통화시간과 이용료가 인쇄된 계산서가 나온다. 인도에 와서 매번 컴퓨터로 인쇄된 영수증을 받는게 의외이기는 하지만, 요금 시비를 할 필요가 없으니 편하다. 그리고 사실 요금 시비가 필요없을 정도로 싸다. 할 얘기 다했는데, 300Rs(약 600원). 어떤 시스템을 쓰기에 국제전화요금이 시외전화보다 더 싼가? 피차 잘 들리던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환전과 전화걸기가 끝나 아직 9시도 안됬으므로 이번에는 델리역에 가서 기차시간표를 사기로 한다. 길 하나 건너면 있는 델리역이지만, 그나마 익숙한 빠하르간지를 벗어나려니 좀 긴장이 된다. 게다가 델리역 어디서 파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구체적인 일정을 잡으려면 기차시간표가 꼭 필요하므로 언제 사도 사야할 물건이니 생각
난 김에 그냥 다녀 오자. 역광장에 들어서니 예상했던것 처럼 순식간에 한무리의 택시와
릭샤 운전사들이 달려들어 손짓발짓 섞어가며 뭐라뭐라 한다. 들어볼것도 없이 No Thanks!! 다행히 더이상 귀찮게는 안한다. 단호하게 의사표현을 하면 되나보다.
도로 하나 사이지만 빠하르간지와는 달리 델리역에는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다들 내 말은 들어볼 생각도 안하고 무조건 외국인전용 예매창구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가라며 허공에 손가락질을 해댄다. 기차표를 사려는게 아니라, 기차시간표를 사려는건데..
드디어 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Number17!" 한다. 그의 말에 따라 17번 창구에 가보니
기차시간표를 팔기는 파는데, 좀 두터운 팜플렛 정도로 생각했던 물건이 무려 300페이지에 달하는 A4용지 크기 책이다. 게다가 페이지마다 자잘한 숫자와 영어가 뽀글거린다.
제목하여 'Trains at a glance' 한눈에 보이는 기차여행 정도의 뜻이겠는데, 한눈에 봐도
골이 아프고, 여러번 봐도 뭐가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짜투리 시간을 보람되게 보냈다는데 의의를 두고, 가차시간표 연구(?)는 나중에
하면 되니까, 일단 허기를 면하러 1식제공의 한국식당으로 간다. 더위 때문인지 나이 때문인지 평소와 다르게 매콤한 김치찌게가 너무너무 먹고 싶다
식당에는 어젯밤에 같이 택시를 타고온 아저씨들이 먼저 와 계시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컴퓨터는요?'하고 물어 오신다. 당연히 '못찾았어요'라는 응답을 예상했다가 '찾았어요'라는 대답을 듣자 '엥??? 어떻게요???' 하며 아저씨들의 눈과 목소리가 몇시간 전의 나와 같이 커진다. '그게 이케저케되서요..' 아저씨들이 흥미진진하게 내 설명을 듣는 도중에
주문한 음식이 나와서 자연스레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같이 한다.
경상도아저씨 51세, 전라도아저씨 50세. 둘다 인도는 초행이고 한달간 인도여행후 네팔로 건너가 트레킹 예정. 이얘기 저얘기 나누다보니 아저씨들이 여행중에 드시려고 배낭에 라면 한상자와 팩소주 한상자를 넣고 왔노라고 자랑을 하신다. 외국에 나와서 굳이 한국음식을 찾을 생각이 없고, 팬티를 세장 넣을까? 네장 넣을까?를 고민하며 짐을 싸는 나로써는
정말 황당하기 이를데 없다. '그게 과연 자랑인가?' 싶은데 본인들은 아주 자랑스러워하며
필요한게 있으면 나눠 줄테니 말만 하란다. 내 짐도 귀찮은데 내가 왜 남의 짐을 받나?
식사를 마치고 먼저 자리를 뜨려는데, 아저씨들이 '오늘 뭐 할꺼냐?'고 물어 오신다. 간밤에 전혀 못자서 일단 잠을 좀 자고, 오후에 전철타고 티베탄꼴로니에 가서 숙소를 알아볼
생각이라고 하니, 본인들도 같이 가도 되겠느냐고 하신다. 굳이 안된다고 할 이유가 없어
시간 약속을 하고 방으로 돌아온다.(티베탄꼴로니: 델리 외곽에 있는 티벳인 거주지로 빠
하르간지와 같이 저렴한 숙소들이 밀집해 있는데, 가격도 더 저렴하고 주변환경이 훨씬
깨끗한 걸로 알려져있다)
다시 한번 Trains at Glance를 펴 본다, 허기를 달랬으니, 총기가 회복되서 독해가 가능하리라는 소망과는 달리 여전히 독해불능이다. 인도사람들이 19단인가 99단을 외운다더니..
그런 사람들이나 이걸 한눈에 보고 이해하지...경부선 호남선 정도만 구별하면 되고. 9단까지 외운걸로 평생 우려먹고 사는 나같은 사람으로서야..이거..원.. 이해 안되는 인쇄물을
접했을 때 얻어지는 부수효과는...곧 잠이 온다는 것이다.쿨쿨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