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7월21일 금요일)

검토 완료

상선아(ssaa)등록 2006.12.26 15:29
델리에서 맥그로간지까지 가는 11시간 동안 버스는 3번 섰다. 휴게소 주유소 그리고 새
벽녘 짜이가게 앞. 마지막 짜이가게 앞에서는 화장실을 찾아 헤메다 사라진 학생이 버스가 출발하려는데도 돌아오지 않아 아저씨들이 찾아 나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나는 예상외로 버스에서 꽤 많은 시간을 잤다. 잠결에 두어번 버스가 길을 잘못 들어 되
@BRI@돌아 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중에 잠을 전혀 못잤다는 사람에게 들으니 2번이 아
니라 7번이라고 한다. 헐~

해발 2000m의 가파른 산 꼭대기에 위치한 맥그로간지는 여름에도 서늘한 기후로 식민지
시대부터 유명한 피서지인데, 근래 들어서는 티벳 망명정부의 수장인 달라이라마의 거주
지로 유명하다, 차로 30분, 산길따라 걸으면 오히려 10분 밖에 안걸리는 바로 아랫마을
다람살라에 티벳 망명정부가 있고, 윗마을 맥그로간지에 달라이라마의 집이 있다.

버스가 다람살라에 도착하니 다 왔다고 모두 내리란다. 가이드북과 인터넷에 모두 볼보
버스는 중간에 갈아타지 않고 맥그로간지까지 한번에 갈수 있다고 나와 있는데, 무엇보
다 승차권에 분명히 도착지가 맥그로간지라고 인쇄되어 있는데, 맥그로간지까지 가는
사람은 여기서 다른 버스로 갈아 타는거라며 무조건 내리란다.

할수없이 내려서 다시 7Rs씩을 내고 버스를 갈아탄다. 아저씨들은 또 “많은 돈도 아닌데,
뭘 그러냐?”며 나를 달래려 하지만, 이게 어디 돈 문제인가? 나는 도저히 안괜찮은걸 남들은 모두 괜찮다니까 짜증이 더 난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최소한 버스표를 들이대고 7Rs라도 받아냈어야 하는건데, 잠이 덜깬체 화만 부륵부륵 내다가 엉겹결에 그냥 내렸다.)

성질도 나는데다 체력적 한계도 겹쳐 맥그로간지까지 올라가는 마지막 코스는 멀미가
날 정도로 정말 힘 들었으나, 버스에서 내리니 서늘한 공기와 깨끗한 거리. 델리에 비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

피곤하고 배도 고팠으므로, 일단 버스정류장 옆 식당에 들어가 짐들을 내려놓고 식사를
주문한다. 경상도아저씨가 식사 나오는데 시간이 꽤 걸릴테니 그동안 숙소를 알아보고
오시겠다며 학생을 데리고 나가신다. 일행이 있으니 이런 좋은 점이 있구나. 내 옆에 앉아 오신 전라도아저씨가 밤새 한잠도 못자서 피곤해 죽겠다신다.

나: 왜요? 전 잘잤는데..
그: 자꾸 팔이 닿아서...
나: 헐~ 자리가 붙어 있으니, 팔이 닿죠. 그게 어떻다구요?
그: 그래도 맨살이 닿응께 불편해 할까봐..
나: 반팔을 입었으니 맨살이 닿지요. 그게 어떻다구요?
그: 그래도 그게..

나도 잠결에 몇 번 팔이 닿는걸 느꼈지만 ‘그러려니~’하고 그냥 잤다. 내가 둔한건가?
이 아저씨가 지나치게 예민한건가? 저런사람들이 어떻게 결혼해서 애들은 낳고 사는지?

주문한 음식이 나와 다 식도록 방 알아보러 간 사람들이 안와서 걱정을 하고 있는데, 경상
도아저씨가 혼자 들어 오신다. 다행히 괜찮은 숙소가 있어서, 아직 속이 않좋아 아침을 거
르겠다던 학생을 먼저 쉬게 하고 오셨다고 한다.

아저씨들이랑 학생이 함께 묵을 큰 방은 400Rs, 나혼자 묵을 작은 방은 300Rs. 내 방 가격을 좀 깍아 보느라 시간이 걸렸는데 소득이 없었다고 미안해 하신다. 그냥 오시지. 이 피곤한 상황에서 일단 들어가 쉴수 있는 방을 구해준 것만으도 고마운데.. ‘미국에서 10년 산 영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말기로 한다.

다행히 방은 내 마음에 쏙 든다. 벽을 거의 다 차지하는 커다란 창문이 3면에 있어서 방이 아주 환하고, 창마다 하얀 망사커튼까지 걸려 있다. 욕실과 침구도 그만하면 깨끗하고, 벽에 걸려있는 젊은 티벳 여인의 초상화도 매우 마음에 든다.

반면 아저씨들 방은 내 방보다 조금 크기는 하나 어둡고, 보조침대까지 들여 놓은데다 세
남자가 제각기 던져 놓은 짐으로 벌써 발디딜데가 없다. 학생과 아저씨들이 쾌적한 내 환경을 부러워하며 300Rs나 내고 혼자 방을 쓰는 부르조아라고 놀린다. 6000원 정도의 방에 머물면서 부르조아 소리를 듣는다.

일찌감치 자리보존하고 눕는 학생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약을 찾아 먹이고, 아저씨들과 나는 각자 그간 밀린 빨래부터 처리하기로 한다. 틈만나면 땀에 젖은옷을 갈아 입어서 이틀
동안 밀린 빨래가 벌써 만만치 않다.

‘이걸 언제 다 빠나?’하고 한숨을 내쉬고 있으니, 경상도아저씨가 자신은 빨래를 발로 밟아 빠는데, 그래도 괜찮으면 겉옷은 넘기라신다. 잠시 고민하다가 못이기는체 수건까지 넘기고 손으로 속옷만 조물락조물락 빨아 넌다. 그쪽에서 먼저 제안한거고 아저씨가 발로 빠는게 내가 손으로 빠는것보다 깨끗할게 분명하지만, 어째 좀 뒤통시가 좀 뜨겁다.

빨래는 나보다 잘해도 준비성은 형편없는 아저씨들이 빨랫줄이 없어 고민하다가 빨랫줄을 매고 여유롭게 빨래를 넌 내 방을 보고 부러워 한다. 프라스틱 포장 끈을 둘둘 말아온 빨랫줄을 반으로 갈라 주면서, 빨래를 넘기며 무너진 체면을 복구하다. 배낭여행자에게 기본적인 아이템인 빨랫줄을 챙겨온걸로 아저씨들이 나를 무슨 전문 여행가라도 되는듯 우러러 본다. 아저씨들이 가지고 오신 가이드북에도 다 나오는데, 역시 안읽고 오셨군.

베란다와 방에 빨래를 잔뜩 널어놓고 느긋하게 담배를 즐기고 있는데, 전라도아저씨가 라
면을 끓여 먹자신다. 아..귀찮게시리. 라면은 뭔 라면? 짐이 무거워서 빨리 먹어 없애야겠
다시며, 들어오다 아래층에 주방이 있는걸 봤으니 같이 내려가 ‘말만’ 해달라신다. 경상도
아저씨가 전혀 내려갈 생각을 안하시므로 할수없이 내가 내려간다. 분명 돈을 달랠텐데, 이럴땐 얼마나 줘야 하나?

주방에 있는 청년에게 돈을 낼테니 잠시 주방을 쓸수있냐니까 선선히 그러란다. 얼마를
줘야할지 몰라 20Rs를 주면서 “Is it enough?”하니까, 흡족한 얼굴로 “Enough!!”하며 돈을 채간다. 이런..실수했군. 10Rs만 줘도 되는건데..

주방은 별로 깨끗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가스레인지를 비롯한 다양한 주방기구가 잘
갖춰져 있다. ‘음식은 나눠 먹어야 맛’인 우리 풍속에 따라 주방청년과 청소아줌마에게
라면을 덜어주고, 매너있는 민족답게 그냥 두라는 설겆이까지 깨끗하게 하고(아저씨들께
하시라고 하고..) 커피까지 타 마신후, 아침도 안먹고 라면도 못먹는 학생은 쉬게 놔두고
아저씨들과 거리구경에 나선다.

아침나절 한적했던 거리가 가게들이 문을 열고 행인들이 돌아다니면서 북적북적 활기가
넘친다. 티벳인촌답게 전통의상을 입은 티벳인들과 승려들이 많이 눈에 띄고, 히피풍의
서양인들도 많다. 언제 뭘타고 왔는지 여기도 거리마다 한국학생들이 넘친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지도를 보고 티벳 박물관과 달라이라마 거처을 찾아가는데, 학생이
없으니 내가 고생한다. 박물관과 거처, 둘다 참으로 소박하다. 망.명.정.부.라는 단어의
실체가 다가온다. 평범한 2층집인 달라이라마 거처는 철대문 안쪽에 총을 든 군인들을
보지 못했으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총을 들고 있어도 표정들이 워낙 순하고 편해 보여
‘그거 가짜총이지?’하고 농을 건넸더, 진짜 총이고 총알도 들어 있단다. 중국의 암살위협
때문에 늘 경계를 서야 한다고 하는데, 표정은 그리 심각해보이지 않는다.

달라이라마가 일반 관광객을 대상으로도 법회를 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다음번 법회는
언제냐고 물어보니, 노인이 지금 건강상의 문제로 델리에 가 계셔서 당분간 법회가
열리지 않는단다. 더위를 피해서 온거지 달라이라마를 만나러 온건 아니지만 약간 섭섭
하다. 윤회에 근거해 대여섯살 된 애를 왕으로 추대해 받드는 티벳불교에는 전혀 관심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감화받았다는 그의 맑은 미소와 눈빛은 한번 직접 보고 싶은데..

별로 물건을 팔고자 하는 의욕이 없는것 같은 박물관구내 기념품점에서 조카들에게 보낼
그림엽서를 몇장 사고, 달라이라마가 지은 Death라는 제목의 작은 책을 살까말까 한참
고민하다 그냥 내려 놓는다. 일단 매일 영어로 된 가이드북을 읽고 소화하기도 벅차고,
달라이라마든 교황이든 아직 살아있는 자가 과연 죽음에 대해 무엇을 알까? 그냥 살다가
다가오면 받아들이자. 너무 겁내지 말고, 추하지 않게....

박물관을 나와, 왔던 방향과 반대로 걸어 나오니 아침에 버스를 내린 장소가 나오고,
이제서 버스정류장을 중심으로 둥글게 이루어진 동네의 윤곽이 머릿속에 잡힌다.
상인들의 행색도 깨끗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들도 깨끗하고 맛있어 보여, 10Rs에
다섯개짜리 만두를 사먹어보고(맛있다!!) 학생을 위해 한국여행자 사이에 유명한 맥그로
간지 묵을 두봉지 산다. 우리나라 것과 성분과 맛이 거의 같다니 그래도 이게 소화가
잘되겠지 싶다. 여기 어딘가에 있다는 한국식당에 가서 죽이라도 쒀달래서 먹이면
좋으련만, 지도를 보고 찾아갈 엄두가 안난다. 아저씨들은 돋보기를 안가지고 나와서
아무것도 안보이신다. 헐~,

숙소로 돌아오니 그새 좀 원기를 회복한 학생이 다행히 묵을 맛있게 잘 먹는다. 저녁은
어디가서 뭘 사먹을까? 즐거운 마음으로 가이드북을 뒤적이고 있는데, 아저씨들이 오는
길에 고기 파는데를 봤다며, 양고기를 사다 요리를 해먹자 신다. 아..골 아프다. 요리는
뭔 요리? 재료도 없는데 어떻게 요리를 하냐니까, 고추장과 소주를 넣으면 냄새 전혀
안나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수 있다며, 본인들이 다 알아서 할테니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해도 된단다. 손가락이야 원래도 까닭 안할 생각이었지만,참 번잡스럽게도 한다.

난 모르니 알아서 하시라고 공동경비에서 고기 살 돈을 내 드리니, 장년의 두남자가
엄마에게 허락받고 놀이터 나가는 꼬마들처럼 조아라~ 하며 신나서 시장을 보러 나간다.
이럴때 보면 ‘남자는 나이 들어도 애~’라는 말이 맞다.

잠시후 요리는 전라도아저씨 담당인듯 또 나보고 내려가서 ‘말만’ 해달라신다. 아..왜?
경상도아저씨는 꼼짝도 안하고, 나만 계속 3층을 오르내리며 ‘말만’ 해야 하는가?

주방청년에게 주방을 한번 더 쓰자고 하니 웃으면서 이번엔 무슨 요리를 할꺼냔다.
글쎄~ 무슨 요리가 나올지 나도 모르니 “I don't know~” 20Rs를 쥐어주고 올라온다.

잠시후 난 절대 상관 안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야채 다듬는거라도 좀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아서 내려가보니, 혼자 고기 손질을 하시던 전라도아저씨께서 뜬금없이 “이거 갖구
안된댜. 돈 더 내랴~“ 하신다. 오전에도 분명히 20Rs 였는데, 이제 와서 웬 딴소리?
그런데 이 아저씨가 영어를 알아듣나? 뭘 잘못 알고 계신거겠지..하고 신경도 안쓰고
양파껍질을 까는데, 청년이 들어 오더니 돈을 더 달란다.

나: 아까도 20Rs였는데 무슨 소리야?,
그: 아까는 물만 끓이면 됬지만, 고기요리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까스가 많이 들어.
나: 가스가 더들면 얼마나 더 든다고 그래?
그: 여기는 고지대라 가스비가 되게 비싸.
나: 그럼 아까는 왜 20Rs만 받고, 아무말 안했어?
그: 니가 아까 무슨요리인지 모른다고 했잖아. 고기 볶는다고 왜 말 안했어?
나: (그게 그렇게 되나? 내가 속인걸로..) 그래 얼마를 내란거야? .
그: 100Rs
나: (기가 막혀서) 뭐라고? 너 지금 그게 말이 되냐? 그럴러면 나가서 사먹겠다.
그: 그럼 나가서 사먹어.
나: 뭐라고? 벌써 고기 사와서 다 잘랐는데, 어떻게 하라는거야?
그: 난 몰라. 그건 니네 문제지.
나: 너 자꾸 이러면 우리 내일 당장 방 뺀다.
그: 맘대로 해. 우린 여관에 세들어 있는 식당이야. 여관과는 아무 상관없어.
나: (열이 파샥파샥 오른다. 승질 같아서는 당장 고기 갖다 버리고, 한푼도 주지 말고
올라가고 싶은데....) 그래. 알았어. 50Rs로 하자.
그: 안돼.100Rs
나: (이젠 자존심 싸움이다. 한푼이라도 깍지 않곤 못 물러선다) 80Rs
그: 그래.

이런 젠장~ 돈을 가질러 다시 층계를 올라가자니 점점 더 화가 난다. 이미 요리가 시작
되서 우리가 물러서지 못할걸 뻔히 알고 달려드는 치사하고 나쁜 티벳놈! 괜히 자꾸 뭘
해먹는다고 귀찮게 구는 아저씨들! 20Rs, 500원도 안되는 돈을 깍자고 얼굴까지 시뻘게
지면서 십여분을 옥신각신 해댄 나.. 모두 싫다.

방에 돌아와 경상도아저씨와 학생에게 이야기를 하니, 둘다 분기탱천하며 내일 당장
방을 빼자고 한다. 여관과 식당의 주인이 다르던말던...알바 없다.

분을 좀 삭히고, 돈을 가지고 내려갔는데, 주방에서 난데없이 웃음소리가 넘쳐나온다.
의아해가며 들어가니 전라도아저씨는 야채를 자르고, 방금전 나를 돌아버리게 만들었던
티벳놈은 가스레인지앞에서 고기를 볶느라 바쁘다. 둘다 신이 나서 희희낙낙~ 아저씨가
'빨리빨리~'하면 녀석도 신이 나서 따라한다. '빠리빠리~' 기가 막혀서.. 방금 나랑 그렇
게 안색을 붉혀가며 싸워놓고 그새 저렇게 재밌어 하며 요리를 돕는건 뭐냐? 아저씨는
또 뭔가? 고기 볶을 사람이 필요하면 아무나 부르지, 싸우는거 다 봐놓고 뭐가 좋다고
저놈과 저렇게 웃고 떠들며 요리를 하고 있담?

황당하기는 하지만 말이 전혀 안통하는 두사람이 워낙 즐겁게 요리를 하고 있는데,
혼자 마귀할멈처럼 인상쓰고 서 있기도 뭐해서 후다닥~ 돈을 건네주고 올라온다.

올라와서 생각하니 ‘내가 뭔가 오해한걸까?’하는 생각에 든다. 저사람이 부른 금액이
정당했던게 아닐까? 워낙 지대가 높으니까 가스비가 비쌀지도 모르지. 아까 라면끓일
물 넣을 때도 가스절약해야 한다면 자기네 보온병에서 뜨거운 물을 부어 주었잖아.
다른걸 떠나서 저도 사람인데 금방 우리한테 사기치고 저렇게 천진하게 웃으며 도와
줄수야 있겠어? 방 구하러 돌아다니기도 귀찮은데 그냥 있어? 어짜피 여관과 식당과
상관도 없대잖아...

그렇게 험난한 과정을 거쳐 후라이팬 채로 올라온 양고기요리는 예상외로 훌륭하다.
어느덧 창밖이 어둑해지고 때맞춰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며 술맛을 돋구는 시간. 그새
거실겸용이 되버린 내 방에서 드디어 침대를 박차고 나온 학생과 함께 고추장과 양파
생강 소주가 들어간 양고기볶음과 소주를 곁들인 저녁식사겸 술판이 벌어진다.

탁자 위에는 양고기와 소주 외에 델리에서부터 버스에 실려와 물러터진 과일과 멸치
땅콩 고추장 과자 등 나름대로 푸짐하게 한상 차려져 있다. 아저씨들의 배낭에서는
라면과 소주 이외에 멸치4kg 고추장4통 땅콩3Kg 일회용물수건 200개 다수의 커피
믹스와 녹차티백 등이 나왔다. 이건 여행자의 배낭이 아니라 가히 성공적인 보급투쟁
마치고 복귀하는 빨치산의 등봇짐이다

50대 아저씨들, 40대 아줌마, 20대 청년이 함께 하는 술자리의 주화제는 ‘나이’
아줌마 아저씨가 이구동성으로 ‘젊은거 부럽지 않다. 다시 젊어지게 해준다고 해도 사양
한다’고 말들은 하지만, 젊음이 그 아직 많이 남아있는 가능성이 어찌 부럽지 않으랴?

막 40고개를 넘어 이제 본격적인 노화현상이 진행될 나는 나이에 따라 나타나는 변화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해서 나보다 10년 앞서 늙어가고 있는 아저씨들께 40
넘어 나타나는 구체적인 증상들에 대해 물어보니, 두분 다 ‘나는 젊을 때랑 달라진게 아무
것도 없다. 아직도 팔팔하다~’며 봉창을 뚜드린다. 누가 마음이나 기분을 물었나? 증상을 물었지? "그럼 아저씨들은 스무살때도 돋보기 없으면 글씨가 안보였나?‘고 이죽거리려다
관둔다. 나이듬을 부정하는게 나이듬의 증거다.

학생에게 우리같은 늙은이들 쫒아 다니며 심부름만 하지 말고 또래친구들(예쁜 여학생들)
하고 팀짜서 다니라고 했더니. 우리팀이 아주 맘에 든다며, 당분간 같이 다니자고 한다.
아버지를 일찍 잃고 어머니와 둘이서만 살았다는 학생은 아저씨들에게서 일종의 부성을
느끼는듯 하다.

여자들이 ‘아줌마~’ 소리 들을 때와 유사한 정서를 남자들도 ‘아저씨’ 소리에서 느낀다는
사실도 알게 됬다. 술이 조금 들어가니 경상도아저씨가 내가 처음부터 다짜고짜 ‘아저씨!’
라고 불러서 기분이 상했다고 하신다.

나: 아니 그럼 아저씨를 아저씨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요?
그: 보통 이름이나 직함을 부르잖아요.
나: 아저씨 이름도 모르고 직업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그런것까지 알아야 하나요?
그: 뭐..그건 아니지만...
나: 저도 아줌마잖아요. (그러고보니 그때까지 내게 감히 아무도 아줌마라고 부르지 못했다. 이 나이에 결혼 안했다고, 아줌마가 아닌가?) 저는 이제 누가 아가씨라고 부르면 욕같이 느껴져요. 받아들일건 받아들여야죠.
그: (마지못해) 그래요.그럼 보통명사로 아줌마, 아저씨 합시다.

아줌마,아저씨가 보통명사로 쓰일때와 고유명사로 쓰일 때의 차이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이렇게해서 팀내 공식호칭이 아저씨 아줌마 학생으로 통일된다. 서로 이름도 묻지않고..
그러고보면 이름도 직업도 안 물으면서, 첫날부터 서로 나이는 정확하게 묻고 밝혔던걸
보면 한국인에게 나이와 그를 통한 위계질서의 형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긴 하는것 같다.

밤은 깊어가고 비는 계속 주룩주룩 내린다. 술들이 기분좋을만큼 적당히 올랐으므로 숙소
문제를 1.우리가 오해했을지도 모르고 2. 여관과 식당은 별개고 3. 방도 맘에 들고 4.무엇
보다 숙소 다시 구하고, 짐옮기는게 귀찮으므로..그냥 있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해산~
인도내 연간강우량 1위라는 맥그로간지에 주룩주룩 밤비소리를 들으며 단잠에 빠진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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