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신비와 최악의 가난이 충돌하는 아디스아바바

[내가 만난 아프리카 ⑥] 동북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메르카토 시장에 가다

06.12.26 09:28최종업데이트06.12.26 16:30
원고료로 응원
@IMG1@아베베의 공동묘지에서 나오자 입구에 여전히 나를 태우고 온 택시운전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묵는 여행객 숙소로 돌아온 뒤 저녁을 먹으러 근처 에티오피아 전통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리 크지 않은 식당에는 현지인들과 일부 외국 여행객들이 인제라(injera)라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누구나 한결같이 맨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이채롭다. 1인분을 시키니 작은 접시에 인제라라는 부침개 같은 빵이 깔려 있고, 고기와 야채, 감자 등이 얹혀 나왔다. 화장실 앞에 세면대가 있어 먼저 손을 씻고 인제라 빵을 손으로 조금 뜯어 고기와 야채, 감자 등을 넣은 뒤 말아서 먹었다. 약간 시큼하면서도 깊은 인제라의 맛이 내 입맛에 꼭 맞아 다행이었다. 가루 반죽 빵에 불고기 등을 싸서 먹는 맛이어서 점심에 이어 두 번째로 먹는 데 벌써 익숙해져 있었다. @BRI@여행에서 음식은 사실 건강과 직결되는 법. 그 나라의 음식이 입에 맞는다는 것은 이미 즐거운 여행의 절반은 이룬 셈이다. 가격도 보통 에티오피아 화폐 10비르(1200원)로 그리 비싸지 않아 가난한 배낭 여행객에게도 부담 없는 음식이다. 일반적으로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을 수 있도록 화장실 앞에 세면대가 별도로 있거나, 아니면 물통을 가져와 손을 씻도록 해 위생도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 인제라는 이처럼 우리의 부침개나 둥근 팬케익 같은 빵에다 와트(wat)라 불리는 고기와 야채 등의 샐러드나 소스를 넣은 뒤 말아서 먹는 에티오피아인들의 주식이다. 에티오피아 뿐 아니라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지부티 등 이른바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지역의 전통음식이다. 아프리카의 뿔이란 이름은 이들 동북부지역의 생김새가 코뿔소의 뿔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소말리아에서는 인제라를 라호흐(lahoh)라고 부른다. 인제라는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수수의 일종인 테프(teff)라는 곡물을 갈아서 만든 가루를 반죽해 구워서 만든다. 인제라가 밀가루가 아니어서 인지 소화도 잘 되고 내 입맛에는 안성마춤이었다. 낮에 먹은 식당에서는 인제라가 휴지처럼 둘둘 말려서 접시 위에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먹을 때는 인제라를 조금씩 뜯은 다음 고기나 야채 등 샐러드를 적당히 싸서 먹는 것은 똑같다. 저녁을 먹고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삐거덕거리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니 여전히 입안에 인제라의 매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감돌면서 오늘 하루 아디스아바바의 일상이 파노라마 장면처럼 지나간다. 인류의 어머니 루시의 화석과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안장되어 있는 삼위일체 교회, 아베베의 무덤이 떠오르면서 한편으로는 북적거리는 메르카토 재래시장의 삶의 현장과 거리에서 만난 가난의 어두운 장면들도 떠올랐다. 여행에서는 안타깝지만,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어두움과 뒷골목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중 하나인 에티오피아에서의 명암은 극명하다. 삶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메르카토 재래시장 @IMG2@아베베의 무덤으로 가기 전 대충 둘러본 메르카토 재래시장은 동아프리카 최대의 시장답게 푹 절이고 간이 배인 짭짜름한 삶의 냄새가 확 풍겨왔다. 사람과 차량, 그리고 노새 등 동물들까지 섞여서 한마디로 도깨비 시장이다. 우리나라의 남대문시장은 저리 가라할 정도로 어디서 사람들이 그리 많이 모였는지. 사람들의 땀 냄새부터 야채 썩는 악취, 코를 찌르면서도 얼얼한 진한 향신료 냄새, 노새 등 동물들에서 나는 특이한 냄새가 뒤섞인 아프리카 재래시장은 마침 내리는 부슬비까지 겹치면서 질펀하다. 1백년 전 형성된 이 시장에는 야채와 곡물, 향신료에서부터 의류, 신발, 주전자, 냄비 등 일상용품과 칼, 창, 그리고 소와 노새 등 동물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팔고 있었다. 시장통을 걸어가면서 구경할 때마다 가게점원들이 들어오라는 손짓으로 부른다. 일상용품 시장을 지나 향신료를 파는 시장통으로 가는 중간에 노새시장이 있었다. 1백 마리는 족히 되는 노새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서 있다. 주인의 손에 이끌려 와 팔리는 신세가 된 노새를 보니 애처로운 느낌마저 든다. 사람도 오래된 친구를 떠나 새로운 사람을 사귀려면 낯선 데, 노새라고 새 주인과 바로 친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비를 피하기 위해 주차된 고물 자동차 밑으로 파고 들어가 앉아 있는 노새도 보인다. 어떤 노새는 등 양옆으로 무거운 쌀부대 같은 것을 두 개나 짊어지고 가는 데, 뒤뚱뒤뚱 거릴 정도로 걷는 모습이 힘들어 보였다. 공산주의 기념탑이 그대로 있는 사회 시내 곳곳에 여전히 세워져 있는 사회주의 정권 당시의 기념물들은 여행객들을 의아스럽게 만든다. 복잡하고 미묘한 정치적 상황을 보여주는 상징들이다. 에리트레아와 소말리아 등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에도 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고, 멩기스투 전 대통령이 이끄는 사회주의 정권이 반군세력에 의해 1991년 권력에서 쫓겨났음에도 여전히 사회주의 색채가 남아 있는 것이다. 국립박물관 안에는 역대 통치자로 멩기스투의 초상화가 그대로 걸려 있고, 시내에는 낫과 망치가 그려진 공산주의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북한이 세워준 붉은 별 하나가 맨 꼭대기에 있는 주체탑도 시내에 가장 높은 건물로 그대로 우뚝 서 있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부자들만 좋아한다"고 말했던 택시운전사는 "현재 멜레스 제나위 수상도 인기 없다"며 "멩기스투 전 대통령은 여전히 일반 사람들이 많이 좋아한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택시운전사들이 정치에 민감하고 망설임 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다 보니 평소에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승객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할 뿐 아니라 경제적 상황에 가장 직접적이고 빨리 영향을 받는 직업의 특수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베베의 무덤까지 나를 태우고 갔다 왔던 키플레 시르가라는 이름의 이 택시운전사는 32살로 현재 9살 난 아들 한 명이 있다고 했다. 셀라시에 황제 폐위 이후 멩기스투 사회주의 정권 아래서 태어나 교육을 받은 세대라서 그럴까. 극심한 빈부격차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택시운전사의 말에서 빈곤층 사이에 여전히 셀라시에 황제에 대한 적개심과 멩기스투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친서방 성향의 현 멜레스 제나위 총리 정권에 의해 쫓겨난데다 사회주의 집권기간 동안 셀라시에 황제가 저지른 똑같은 정적 살해와 인권탄압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멩기스투 전 대통령. 그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것은 바로 빈민층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정치적 기류 때문이다. 사회주의 정권이 아직도 빈민층에 인기를 끄는 것은 소수민족인 쿠로족의 빈민출신인 멩기스투에 대한 동질감뿐 아니라 토지개혁을 통해 수 천년 동안 내려온 대지주 지배의 전통적인 봉건체제를 해체시킨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절대적 가난과 빈부격차는 에티오피아의 정치지형까지도 복잡하고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가난의 현장은 바로 아디스아바바 거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일부 상류층은 고급승용차에 핸드폰을 들고 다니면서 서구사회와 별다른 차이 없는 생활을 하지만, 수많은 국민들이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노숙자들이 거리 곳곳에 드러누워 자고 있고, 다 헤진 옷을 입고 "1비르, 1비르"하면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코흘리개 어린이들이 거리로 나서 1회용 휴지를 사라고 여행객을 졸졸 따라다닌다. 한 나라의 수도가 이러니 농촌지역의 상황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택시가 시내 거리에서 신호등으로 서게 되면 다리 한쪽을 잃고 목발을 한 장애인이 다가와 차창을 두드리면 잔돈을 달라고 요구한다. 장애인 아이를 등에 업은 여인도 택시에 타고 있는 나를 보고 다가와 껌을 사달라고 부탁한다. 한두 번이 아니니 매번 돈을 줄 수도, 물건을 사줄 수도 없다. 여행객으로서는 당혹스런 장면이다. 택시운전사도 당황스러워 하는 나를 보면서 "모르는 척 관심을 두지 마라"고 충고를 해준다. 약도 충분하지 못하다보니 치료를 받지 못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시내곳곳에서 많이 보게 된다. 다리에 곰팡이가 끼고, 퉁퉁 부어 있는 것이 마치 풍선같이 부풀어 오른 발을 질질 끌고 가는 사람도 있다. 남아공을 거쳐 에티오피아 항공기를 타고 아디스아바바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눈이 빨갛게 충혈 된 환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내 옆자리의 젊은 남자도 빨간 실핏줄이 눈동자 옆의 흰자위를 갈기갈기 찢듯이 훑고 지나가 벌겋게 부풀어 있었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연신 안약을 넣고 있었다. 아디스아바바시내의 공기는 차마 눈뜨고 못 볼 정도이다. 차량도 너무 많은 데다 그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들이 콱콱 숨을 막히게 한다. 코가 막히고 눈이 따가울 정도의 악성매연이다. 매연을 거르는 여과장치인 필터가 없는 차량들이 그대로 도로에 시꺼먼 연기를 내뿜기 때문이다. 차량들도 대부분 20~30년을 훨씬 뛰어넘는 고물차량들이다. 어떻게 저런 차들이 굴러갈까 의심이 들 정도다. 내가 탄 택시도 ‘니바(Niva)’라는 이름의 러시아 차량인데 29년이나 됐다고 한다. 수시로 엔진이 꺼지고 다시 시동을 걸어야 출발한다. 영업용 차량이 이렇다. 골동품 수준의 차량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다. 가끔씩 내리는 스콜같은 비가 오히려 매연을 씻겨 낸다. 비가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숨이 조금 트이는 것 같았다. 시내를 누비는 차량 가운데는 일본의 도요타 제품이 많고, 우리 기아 차량도 가끔 눈에 띄었다. 시내에는 '한국타이어(Hankook Tire)'라는 영어 간판도 적잖이 볼 수 있고, '금호타이어(Kumho Tire)' 간판도 있다. 당연히 우리나라 타이어 회사이다. 차량이 많은데 도로상태가 나쁘다 보니 바퀴가 자주 터져 어느 나라보다도 타이어 수요가 많은 것이다. 가난하지만, 위압적이지 않은 사람들 @IMG3@@IMG4@시내에서 마주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는 뭔가가 신비로움이 있다. 백인도 아니면서, 또 전형적인 흑인도 아니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묘한 결합이다. 실제로도 현재의 에티오피아인은 백인계 함족과 아랍계 셈족의 후예들이 원주민인 흑인과 혼혈을 이루면서 아프리카에서도 독특한 생김새와 문화를 형성했다. 생김새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피부도 검기보다는 황갈색에 가깝다. 20세기초까지 에티오피아는 아비시니아로 불렸는데, 아비시니아라는 말 자체가 아랍어로 혼혈인이라는 뜻이다. 훤칠한 키의 미인들이 거리에서 눈에 많이 띈다. 아디스아바바는 인류역사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는가 하면, 세계 최악의 가난의 현실이 충돌하는 현장이다. 오랜 내전과 가뭄, 높은 인구증가율 등으로 2004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110달러에 불과한 에티오피아에서는 이처럼 가난이 삶을 파괴하는 가슴 아픈 장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위압적이지 않다. 바로 여행객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에티오피아의 매력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김성호의 <내가 만난 아프리카>

추천 연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