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몸으로 뛰어든 '좌충우돌' 현지 관광

[내가 만난 아프리카 ⑦] 청나일 폭포를 찾아서

등록 2006.12.27 17:01수정 2006.12.2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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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른 아침 날씨에 해가 떠오르는 타나 호수 ⓒ 김성호


아름다운 호수 도시 바하르다르에 도착하다

@BRI@오늘은 새벽 5시에 일어나 부산을 떨어야 했다. 아디스아바바 북쪽에 있는 에티오피아의 이른바 4대 고대 역사유적지를 찾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시대와 위치를 거꾸로 거스르면서 17세기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수도원으로 유명한 바하르다르부터 시작해 역시 17세기 수도로 성곽의 도시인 곤다르, 12세기 수도로 지하 암벽교회로 알려진 랄리벨라, 1세기 수도로 시바의 여왕의 전설이 숨겨진 악숨으로 올라가면서 차례로 여행한 뒤 닷새 후에나 다시 아디스아바바로 돌아온다.

물론, 여행에서는 가능한 시대적 변천을 따라 내려오면서 역사의 발자취를 음미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비행기 사정상 거꾸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하루 전날 나는 4대 유적지를 모두 둘러보고 닷새 후에 아디스아바바로 돌아오는 패키지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에티오피아는 워낙 도로 사정이 나쁘고 대중교통도 열악해 4대 유적지를 육로로 여행할 경우에는 한달 정도 걸리고, 더욱이 6월은 우기여서 도로가 막히면 언제 뚫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아침 7시 비행기를 타니 한 시간이 채 안 걸려 바하르다르 공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공항에서 도시로 들어오는 도로 양옆에는 커다란 야자수들이 나란히 서 있어 여행객에게 시원한 느낌을 준다. 10여분 정도 달려 도착한 타나 호수 옆의 방갈로식 숙소는 호수가 바로 내려다보일 뿐 아니라 정원도 넓고 깨끗하다. 우리네 작은 읍내도시 같은 바하르다르는 청나일 폭포와 타나 호수, 수도원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재미있는 것은 나를 태우고 온 국내선 항공기가 커다란 프로펠러 2개 달린 쌍발 엔진 비행기라는 것. 비행기 이름은 52인승 Fokker 50. 처음 타보는 프로펠러 비행기는 기류에 따라 심하게 흔들리는 단점은 있으나 에티오피아가 아니고서는 어디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현지인 버스를 타고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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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태우고 간 프로펠러 2개 달린 쌍발 엔진 비행기 ⓒ 김성호

나는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바로 청나일 폭포로 향했다. 하루를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청나일 폭포와 타나 호수, 수도원을 모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직원이 200비르(2만3000원)를 내면 투어차량을 제공해주겠다고 하는 것을 거절했다. 가격도 비쌌지만, 아프리카에서는 가능한 걷거나 현지인들이 타는 일반 버스를 이용해 여행할 참이었기 때문이다. 카메라만 넣은 작은 가방을 메고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데 한 젊은 남자가 다가와 친절하게 말을 붙인다.

"버스 정류장을 가느냐?"
"청나일 폭포 가는 버스를 타려고 가는 길이다."
"내가 버스 정류장을 잘 아니까, 나를 따라와라."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젊은 남자를 따라갔다. 그렇지 않아도 지도를 보고 길을 찾고 있는 데다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일반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어서 걱정이 앞서기도 했었다.

버스정류장에 들어서니 혼란스럽기가 이를 데 없다. 고물 버스들에서 내뿜는 시커먼 매연하며, 출발을 알리는 버스의 경적소리, 자기 버스에 타라고 승객의 팔을 질질 끌고 가는 호객꾼들까지 뒤섞여 난리통이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버스정류장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홀로 여행하는 외국인으로서는 버스정류장 입구에서부터 위압감을 느낀다.

청나일 폭포가는 버스에 오르자 이미 많은 현지인들이 타고 있었다. 이 버스 역시 겉보기에도 차량의 도색이 벗겨져 얼룩덜룩해 이미 폐차 직전의 차량임을 알 수 있고, 시동을 건 차량의 배기 통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아까 길을 안내해줬던 젊은 남자가 버스에 올라오더니 "내가 버스정류장을 안내해줬으니 돈을 달라"며 손을 내민다. 버스정류장까지 나를 안내해줘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어이가 없었으나 어떻든 친절을 베푼 것은 사실이니까 보답은 해야 하는 법. 결국 2비르(250원)를 줘야 했다. 친절 속에 가시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20대 후반의 또다른 젊은 남자가 차에 올라 내 옆에 앉더니 "청나일 폭포 가는 길이 어려워서 외국 여행객 혼자서 가기에는 힘들고 위험하다"며 은근히 겁을 준다. 자신을 가이드로 데려가라는 얘기이다.

내가 "가난한 배낭여행객이어서 돈이 없다"고 하자 그제야 포기하고 차에서 내린다. 내 옆자리에는 한참 뒤에 70대 노인과 젖먹이 아기를 업은 30대 여자가 앉았다. 바로 출발한다던 차는 좌석뿐 아니라 입석까지 승객들을 꽉 채운 뒤 30분이나 지나서 정류장을 떠났다.

40인승 버스에 70명을 태운 고물 시외버스에 외국인이라고는 나 혼자이다. 현지인들은 머리를 짧게 깍은 동양인이 혼자 타자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자기들끼리 "차이나(중국인), 차이나(중국인)"라고 수군거린다.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너무 무모하게 현지인들이 타는 시외버스를 이용해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갈수록 커졌다. 버스요금 25비르를 포기하고 여기서 내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스친다.

아프리카에서의 현지 대중교통을 이용한 첫 여행은 이렇게 무모하게 시작됐다.

맨발로 다니는 에티오피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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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바라본 청나일 폭포의 모습 ⓒ 김성호

시내에서 10여분을 달려 시골길로 접어들자 완전히 딴 세상이다. 우선 도로 자체가 비포장의 흙먼지 날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도로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맨발이다. 신발을 신은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뉴스에서나 보던 굶주린 아프리카 사람들의 현장이다.

맨발로 다니다보니 발등에 흉터 투성이의 상처들도 보이고, 복숭아 뼈에 시커먼 딱지가 붙은 발이며, 발가락이 기형적으로 휘어진 사람들도 눈에 띈다. 바하르다르 시내만 하더라도 맨발로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버스로 10분 거리를 경계로 삶의 질은 마치 천당과 지옥만큼이나 천양지차이다.

소떼들이 도로 가운데를 걸어가는 바람에 버스가 수시로 서야 했다. 소 떼들이 도로 양옆으로 비켜설 때까지 차가 갈 수 없는 것이다. 바하르다르 외곽에서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소떼를 몰기 위한 막대기를 하나씩 어깨에 둘러메거나 손에 들고 다닌다. 여자들은 누구나 머리에 보자기로 싼 물건 등을 이고 있다.

아디스아바바나 바하르다르 시내와는 다른 에티오피아 시골의 전형을 보게 된다. 가난하지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열심히 일하는 시골마을 풍경이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고 했듯이, 어느 나라나 가난한 시골에서는 노는 사람이 없는 법이다.

덜컹덜컹 거리고 흙먼지를 날리며 남쪽으로 달리던 버스는 45분 정도 지나 청나일 폭포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 이름은 바로 '물 연기'라는 뜻의 티스 이사트. 여기서 내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산 뒤 폭포 밑에까지 걸어가는 데는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여기저기서 호객꾼들이 자기가 가이드를 하겠다며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내가 호객꾼에 둘러싸여 잠시 당황해 하며 멈칫 서 있는 데 뒤에서 누군가 영어로 "청나일 폭포를 가느냐"고 묻는다. 내가 뒤돌아서 보며 "그렇다"고 하자 자신들도 청나일 폭포를 간다며 같이 가자고 한다. 예기치 않은 구세주를 만난 셈이다.

수호천사 남매와 함께 '청나일' 폭포를 구경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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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흙물이 흘러내리는 청나일 폭포의 장면 ⓒ 김성호

전형적인 에티오피아 얼굴을 한 나의 수호천사는 남매였다. 내가 다음날 여행할 곤다르 지역에서 왔다는 오빠는 외과의사이고, 여동생은 대학생이라고 했다. 이들 남매를 만남으로써 버스를 타고 오면서 걱정했던 청나일 폭포 구경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훨훨 날려보낼 수 있었다. 현지 지리를 잘 아는 남매는 일반 여행객들의 관광코스가 아닌 샛길로 나를 데려갔다.

매표소에서 왼쪽으로 들판을 건너 걸어가자 얼마 되지 않아 청나일강(Bule Nile River)이 나왔다. 중간에 만난 또다른 에티오피아 젊은 연인과 함께 우리 5명은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 다음 다시 걸어서 청나일 폭포에 도착했다. 관광객들이 가는 동쪽 코스로는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우리는 폭포 위쪽을 가로지르는 지름길로 오다보니 15분만에 다다를 수 있었다. 청나일강에는 하마와 악어가 살고 있기도 한 데 내가 건너는 곳에서는 볼 수 없어 아쉬웠다.

폭포에 다다르자 하얀 연기 같은 물보라가 솟아오르는 모양이 보이고, 폭포의 물소리 떨어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폭포가 떨어지는 낭떠러지에서 50m 거리에서도 물방울이 날려든다. 폭포 아래로 가자 세찬 물소리와 함께 날리는 물방울이 옷을 흠뻑 적실 정도로 날아와 붙는다. 파란 색깔의 강물이라는 청나일강의 이름과 달리 누런 흙탕물 같은 강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6월부터 시작된 우기여서 빗물이 강변의 흙을 쓸어 내리면서 흐르기 때문이란다.

여전히 세찬 물줄기를 내려 뿜는 청나일 폭포는 생각보다는 규모가 크지 않아 실망감이 적지 않았다. 잠비아와 짐바브웨 국경사이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에 이어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폭포라는 기대감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애초 폭포의 높이는 45m이고, 폭이 400m가 넘었다고 하나 지금은 폭이 1/3로 줄어들어 100m 정도 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폭포의 웅장함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나마 우기여서 이 정도라도 폭포가 떨어지는 것이 다행이란다. 비가 오지 않는 건기에는 아예 한 두 개의 물줄기만이 졸졸 흐른다는 것이다.

폭포 상류에 여러 개의 수력발전소를 위한 댐을 건설하면서 타나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수량이 급속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남매들도 하나같이 "옛날에는 폭포가 대단했는데, 지금은 댐으로 인해 확 줄어들었다"고 아쉬워했다.

청나일 폭포는 '티스 이사트(물 연기)' 또는 '티스 아바이(연기나는 나일)'라고 불릴 정도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멋진 폭포중의 하나였다. 실제로 에티오피아 1비르 지폐에 그려진 옛날의 장면은 그 폭뿐만 아니라 주변의 열대우림숲도 그 웅장함을 대변해 주고 있다. 지폐에 도안으로 쓰일 정도로 웅장하고 자랑스럽던 청나일 폭포의 위용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처럼 수력발전소는 폭포의 위용뿐 아니라 주변의 작은 열대우림숲 마저 파괴해 버렸을 정도로 심각한 환경파괴와 생태계 훼손을 가져왔다. 인류 역사에서 되풀이되는 환경보존과 개발의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청나일 폭포는 전 세계 여행객들에게 되던져주고 있었다. 유엔개발계획(UNDP)과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 차원에서 세계적 자연유산인 청나일 폭포를 되살리기 위해 전력을 공급해주는 국제적 운동을 벌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을 벗어나면서도 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에 대한 고민은 어디에나 똑같다. 국제적 폭포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린 청나일 폭포는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월드컵 축구에 열광하는 에티오피아 젊은이들

폭포를 구경한 뒤 남매와 함께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왔으나 차가 떠나려면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단다. 근처 허름한 가게에 들어가 음료수를 마시며 앉아 있는 데 20대의 젊은 남자 대여섯 명이 들어왔다. 이들에게도 외국여행객은 신기한 대상이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 "코리아"라고 하자 "노우스 코리아(북한)냐, 사우스 코리아(남한)"냐고 묻는다. 사우스 코리아라고 하자 바로 "찌썽 팍(박지성)"이라고 축구 얘기를 한다.

독일 월드컵이 막 시작되던 때여서 에티오피아도 축구 열기로 들떠 있던 때였다. 한 젊은이는 박지성 선수가 영국의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소속이라는 것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또 다른 젊은이는 이영표 선수와 소속팀인 토튼햄까지 말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기도 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축구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조금 더 아는 사람이 한껏 폼을 잡는 듯했다. 여행 내내 월드컵은 아프리카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있었다. 그동안 말이 없이 조용해 지켜보던 앳된 얼굴의 다른 젊은이가 하는 말이 압권이다.

"월드컵 하는 데 축구구경 안하고, 왜 아프리카까지 여행을 왔느냐?"
"나도 모르겠다."

갑작스러우면서도 황당한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순간 망막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그렇듯 아프리카 젊은이들에게도 월드컵 이상 재미있는 구경은 없는 듯 했다. 그러니 월드컵 구경은 안하고 아시아에서 멀리 아프리카까지 여행하러온 나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남매의 오빠도 "축구는 세계 언어"라며 에티오피아에서의 축구 열기를 전했다. 축구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버스가 출발한다고 해서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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