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던 목동의 변신, "나는 다만 달릴 뿐이다"

[내가 만난 아프리카 ⑤]에티오피아의 영웅 아베베, 그의 무덤을 찾다

등록 2006.12.21 09:06수정 2006.12.2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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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비를 맞으며 성 조지 교회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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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초상화가 밖으로 비치는 성 조지 교회 벽에서 ⓒ 김성호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안장되어 있는 삼위일체 교회를 둘러본 뒤 점심을 전통음식인 인제라로 때우고 진한 에티오피아산 커피를 마시니 노곤해진다. 오전에 빠듯하게 돌아다니다 보니 피곤한 것이다. 그렇다고 첫날부터 여유를 부릴 수는 없다. 식당에서 가까운 성 조지교회와 근처 메르카토 재래시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성 조지 교회에 들어서니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에티오피아는 6월부터 비가 오는 우기가 시작되는 데, 아직까지는 그렇게 많은 비가 오지는 않는다. 우산 없이도 비를 맞으면서 구경할 수 있을 정도이다. 8각형 모양의 성 조지 교회는 삼위일체 교회만큼 웅장하지는 않았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와 전임 조디투 여황제의 대관식이 열렸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대관식 장면이 동쪽 벽에 그려져 있고,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의 그림과 최후의 심판 등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처럼 실내벽화로 유명한 곳이다.

'맨발의 영웅' 아베베는 살아있다

@BRI@성 조지 교회에 이어 근처 메르카토 재래시장을 대충 둘러봤다. 비만 내리지 않았으면 더 오래 시장통을 샅샅이 누비려고 했으나 다음 기회로 미루고, 내가 오늘 가장 가고 싶었던 곳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바로 '맨발의 영웅'으로 유명한 세계적 마라톤 선수 아베베 비킬라가 묻혀 있는 공동묘지이다.

마침 내가 탄 택시의 운전사가 아베베의 공동묘지를 안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3시 30분을 넘고 있었다. 아디스아바바도 오후 접어들어 차량이 늘어나면서 여기저기서 교통체증이 나타났다. 1시간 정도 걸려서 시내 외곽에 위치한 아베베가 묻혀 있는 곳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공동묘지 입구는 비가 와서 인지 곳곳에 물들이 고여 있고, 땅은 질퍽질퍽하였다. 공동묘지의 이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바로 성 요셉 교회 공동묘지이다. 공동묘지 가운데로는 흙길 그대로 인도가 뚫려 있고, 양옆으로는 돌로 된 비석과 묘지들이 쭉 들어차 있었다. 공동묘지 뒤쪽으로는 초라한 집들이 둘러싸고 있다. 비록 시내 외곽이지만, 유럽식으로 마을과 붙어 있는 묘지이다.

공동묘지 맨 안쪽 끄트머리 한 가운데에 아베베가 묻혀 있었다. 10평 정도 크기의 둥그런 그의 묘지에는 잡초들이 무성히 자라났다. 왼쪽에는 커다란 나무 한그루만이 그의 묘지를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뒤로는 흰점과 검은 점이 얼룩진 긴 뿔의 황소 한 마리가 무심히 지나가고 있다.

철제 울타리로 쳐진 그의 무덤 안에는 올림픽 마라톤에서 두 번 우승한 그를 기념해 2개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가 우승 테이프를 끊을 때의 장면을 그대로 재현 놓은 동상이다. 오른쪽 동상은 1960년 이탈리아 로마 올림픽 당시 우승할 때의 모습대로 가슴에 11번의 번호를 달고 두 손의 손가락을 펼쳐 든 채 맨발로 결승선에 들어오는 장면이, 왼쪽 동상에는 1964년 일본 도쿄 올림픽에서 두 손을 힘차게 내저으며 운동화를 신고 들어오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아베베를 바로 여기서 만나다니.

동상 옆에는 암하릭어와 영어로 그의 일생에 대한 간단한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안내문이 지구의를 반으로 나눈 모양의 둥근 거울 철제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지구의 서로 다른 두 대륙인 유럽의 로마와 아시아의 도쿄에서 우승한 것을 상징한 것으로 보인다. 지구의를 나눈 둥근 거울 모양의 안내문에는 아베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영웅 여기에 묻혀 있다.
대위 아베베 비킬라
1933년 자토 데브레 비르한에서 출생
1973년 아디스아바바에서 사망
올림픽 마라톤 2회 우승자
1960년 로마
1964년 도쿄
그의 업적은 전 세계 스포츠정신의 귀감이 되다."


아베베와 손기정은 마라톤을 통해 독립과 해방을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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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려 질퍽질퍽한 아베베의 공동 묘지 입구 ⓒ 김성호

지난 1960년 이탈리아 로마 올림픽 경기장. 올림픽의 꽃이라는 마라톤 경기를 지켜보던 전 세계인들은 깜짝 놀랐다.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아프리카 대륙의 에티오피아 선수가 1위로 경기장에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운동화도 신지 않고 맨발로 뛰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스포츠 정신의 상징이자 '맨발의 영웅'으로 알려진 인물, 바로 아베베 비킬라였다. 맨발로 뛰는 것이 편해 운동화를 신지 않았다는 그.

에티오피아는 물론 아프리카 전체가 열광한 것은 당연했다. 로마 올림픽이 열린 1960년은, 마침 아프리카 국가들이 앞다투어 서구제국주의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던 '아프리카의 해'였다. 에티오피아의 꿈만이 아닌 아프리카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는 바로 지난 1935년 에티오피아를 침공해 1941년까지 지배했던 나라였다. 식민지 지배국가의 중심부에서 과거 피식민지의 젊은 군인이 무엇을 생각하면서 뛰었겠는가.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해 일제의 고통에 시달리던 우리 민족에게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었던 손기정 선수의 마음과 똑같았을 것이다. 비록 나라 잃은 약소민족의 젊은이로서 가슴에는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손기정의 심장 속에도 젊은이 특유의 자유와 독립, 해방에 대한 펄펄 끓는 열정이 숨 쉬고 있었을 테니까.

아베베는 올림픽 주경기장에 들어서기 직전, 로마 중심에 있는 원형경기장 콜로세움 맞은편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건물 앞을 달릴 때 높이 솟아 있는 거대한 돌기둥인 오벨리스크를 보았다. 오벨리스크를 본 아베베의 가슴은 뛰었고, 그는 쏜살같이 앞으로 뛰어나가 달렸다. 바로 이탈리아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에티오피아를 점령하던 1937년 에티오피아의 옛 왕국 도시인 악숨에서 약탈해 갔던 문화재였다.

당시 언론들은 "에티오피아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모든 이탈리아군이 필요했지만, 로마를 점령하는 데는 한명의 에티오피아군으로 가능했다"고 말했다. 당시 황제 근위대의 하사관이었던 '에티오피아 군인' 아베베의 로마 올림픽 우승을 비유한 것이었다. 세계기록을 경신하며 우승한 그는 말했다.

"나는 내 조국 에티오피아가 항상 단호하고 영웅적으로 시련을 이겨냈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소치는 목동에서 마라톤 영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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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베의 무덤 위에 세워진 마라톤 우승 당시의 장면을 새긴 2개의 동상 ⓒ 김성호

아베베가 태어난 곳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약 1백30km 떨어진 자토라는 마을. 에티오피아의 시골소년들이 그렇듯 그도 소치는 목동으로 보냈다. 20세 때 황제의 근위병이 되었고, 결혼해 4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였다. 근위대 생활을 하던 그는 아디스아바바 시내 길거리에서 우연히 등에 '에티오피아'라고 쓰인 국가 대표 운동복을 입고 퍼레이드 하는 육상선수들을 본 뒤 마라톤 선수가 되기로 결심한다. 국가대표 선수 운동복이 그를 마라톤 선수로 이끈 것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그는 또다시 세계를 놀라게 한다. 경기를 6주 앞두고 충수염이 발병해 맹장수술을 받은 최악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세계기록을 경신하면서 2시간 12분 11초의 기록으로 우승한 것이다. 올림픽 마라톤 사상 최초로 2연패를 한 선수가 되었다. 우승 소감을 묻자 그는 짧게 말했다.

"나는 다만, 달릴 뿐이다"

마라톤 선수가 할 수 있는 가장 짧지만, 가장 강력한 말이다.

1966년 10월 30일 서울과 인천을 왕복하는 코스에서 열린 동아마라톤 대회에도 출전해 우승했던 그에게 마라톤 선수로서의 생명을 앗아가는 사고가 발생한다. 1969년 3월 훈련을 마치고 황제가 선물한 차를 타고 귀가하다 빗길에 미끄러지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목이 부러지고 척추가 손상되는 하반신 마비로 다시는 뛸 수도 걸을 수도 없게 된 것.

아베베의 놀라운 용기는 이때 다시 살아났다. 1970년 휠체어를 탄 채 노르웨이에서 열린 장애인 올림픽 대회 25km 눈썰매 크로스컨트리 경기에 참가해 금메달을 따냈다. 일반 올림픽과 장애인 올림픽대회에서 동시에 금메달을 딴 최초의 선수였다. 불굴의 도전 정신과 투지에 세계는 또 한번 놀랐다.

장애에도 불구하고 투혼의 스포츠 정신을 발휘하던 그는 1973년 41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 후유증인 뇌종양으로 세상을 뜨고 만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와 수많은 국민들의 애도 속에 그는 바로 이곳 성 요셉 교회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아베베의 묘지 옆에는 아베베에 이어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마모 웰데도 누워있었다. 스포츠의 전설적인 영웅 아베베가 묻혀 있는 공동묘지 앞에 여행객으로 나는 지금 그를 마주보고 있다.

한참 동안 그의 동상 앞에 서 있었다. 생생히 살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마치 내 앞에서 아베베가 달리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맨발의 아베베가 거친 숨을 내쉬며 뛰어가는 잔영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어린 시절부터 아베베는 나의 영웅이었다. 아베베는 나에게 올림픽과 스포츠의 동의어였다. 어떤 스포츠 스타도 아직까지 나의 마음속에서 아베베를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영웅을 남겨두고 다시 돌아서야 했다. 얼마나 긴 세월과 먼 거리를 돌아서 아시아의 한 배낭여행객이 이곳 아프리카 에티오피아까지 왔는데, 한 시간 남짓 만에 다시 돌아가야 하다니…. 진한 아쉬움이 여행객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한다. 공동묘지를 나오는 데 거친 숨소리가 들리면서 마라톤 선수가 내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릴 적 아베베에 대한 사랑이 아직도 내 가슴속에 훨훨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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