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 부는 서각작가 전부경씨를 만나다.

사람을 위해 예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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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미(bomi0211)등록 2006.12.27 17:11

서각작가 전부경씨의 작업실에서 ⓒ 최보미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서각 전시회장에서 서각작가 소광 전부경(47)씨를 만났다. 긴 생머리를 뒤로 넘겨 질끈 묶고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이 그가 예술가임을 한껏 더 부각시킨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서각 대회마다 심사위원과 운영위원를 역임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서각협회 강원도 지회장인 전씨는 UN, NGO-IAEWP 세계평화교육자 지도자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널리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대부분의 작가들도 전씨의 제자들로 이루어졌다. 전씨는 강원도 내에서는 홍보도 하고 서각을 가르치기도 한다. 전씨는 철원에서 서각작가와 선생님인 동시에 서각 홍보대사로도 활동 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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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째 철원에 살고 있으니 이젠 철원사람이죠.

전씨는 제 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철원에서 활발한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각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면 언제든 그의 작업실로 환영이다. 전씨는 문화원에 강연을 나가면서 많은 제자들을 양성시켰고, 그 제자들과 함께 작품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 덕에 철원에는 서각전이 매년 열린다. 전씨는 문화생활에 목말라 있던 철원군민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철원의 문화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철원에 전시회가 열려서 가봤더니 사진전이고 미술전이고 전시회 기간 동안 사람이 200명도 채 다녀가지 않더군요. 전시회는 사람들에게 보여 지기 위해서 하는 건데 이건 아니다 싶었죠”

전씨는 3년 전 철원에 처음 서각 전시회를 열었을 때 해동검도 검우회 회원들의 무술 퍼포먼스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 전시회는 멋지게 차려입고 특별한 사람들만 가야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있는 철원군민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서이다. 무술을 보러 온 사람들도 서각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서각 작품을 보러 온 사람들도 무술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한마디로 무(武)와 예(藝)의 조합을 보여 준 것이다. 약 2000여명이 다녀간 성공적인 전시회로 마칠 수 있었고, 전시회가 그저 낯설기만 한 철원군민들에게 전시회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에요.

“명예퇴직을 한 어느 노인이 서각을 배우고 싶다며 내 작업실로 찾아왔어요. 한동안 서각에 심취해서 잘 나오시다가 갑자기 며칠을 안 나오시더라고요. 한 달 즈음 지나서 그 노인의 아들이 찾아왔어요. 아버님이 명퇴를 하고 나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뒤늦게 선생님을 만나 서각을 배워서 후손들에게 무언가를 남겨 줄 수 있는 게 생겨서 너무 행복했다며 나에게 이 말을 꼭 전해 달라고 하시며 돌아가셨대요.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한쪽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어요”

전씨는 이래서 서각 하는 맛이 난다고 말했다. 사람이 살면서 후대에 남길 무언가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서각의 매력이라고 한다. 흔적을 남기는 예술이라고 표현하는 그에서 자신이 택한 길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색소폰은 내 마음의 여유”

전시회 후 색소폰을 연주하는 전부경씨 ⓒ 최보미


한 때 음악의 길을 가려고 했던 전씨의 색소폰 연주 또한 훌륭하다. 서각을 시작하면서부터 서각이 그의 삶의 주가 되어버렸지만 색소폰을 아예 손 놓아 버린 것은 아니다. 전씨는 서각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색소폰을 배우고 싶다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선뜻 나서서 가르쳐준다. 전씨는 서각을 하면서 가슴이 답답할 때면 언제든 색소폰을 잡아든다. 그는 경기도의 작은 라이브 카페에서 색소폰 연주를 하기도 한다. 그에게 색소폰 연주는 마음의 여유이자 안식처이다.

전씨의 색소폰을 연주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삭막한 사회에 찌들어 있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인터뷰 내내 “예술인은 말을 잘 못해요. 작품으로 표현하죠"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순수 예술인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서각작가 전부경씨는 다가서기 어려운 특별한 예술가이기 보다는 사람을 위해 예술을 하는 그야말로 사람냄새 폴폴 나는 강원도 작은 시골마을의 큰 예술인이었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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