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가족이 번식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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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복(jkbjou)등록 2007.01.13 14:19
조기 유학생이 많아지면서 언젠가부터 '기러기 아빠'라는 말이 생겨나더니 요즘은 '기러기 엄마'라는 말도 생겨났다. 어린 자녀를 외국에 유학 보내면서 엄마나 아빠 중에 한 사람만 따라 가고 나머지 한 사람은 고국에 남아서 외롭게 살아가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우리사회에 그렇게 나타나는 '기러기' 현상은 여러 가지 사회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기러기 아빠'에 이어 '기러기 엄마'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한국사회에도 남성 중심의 경제활동 구조가 해체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측면이 있다. 옛날에는 남자가 밖에 나가서 돈을 벌고 여자는 집에서 살림하며 자녀를 돌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통념은 깨어지고 있다. 부부 가운데 여자가 남자보다 돈을 더 잘 버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으며 집안 살림과 자녀 돌봄을 기꺼이 또는 어쩔 수 없어서 남자가 담당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기러기 가족'의 사정은 매우 다양하고, '기러기 엄마'가 모두 경제적 능력이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일정수의 경우에는 여자의 경제적 조건에 의존하는 것이 사실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BRI@그리고 한국사회에 '기러기 가족'이 흔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의 가족 개념이 매우 독특하게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가 해체되며 핵가족화해 온 흐름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흐름에서만 본다면 기러기 가족은 극단적 핵화의 한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부부 사이에도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부부가 상호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장기간 별거한다는 것은 인류사회의 보편적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또한, 미성년의 자녀와 부모가 별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특히 미성년기에 친밀한 접촉과 동거를 중시하고 성년기에 공간적 독립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서양의 가족에 비하여 보면 매우 상반되는 양상을 나타낸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이 공간적 핵화의 양상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는 오히려 혈족 관계의 보호의식에서 비롯한다는 점이 매우 이율배반적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자녀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교육이라는 한 측면에 집중되면서 다른 측면이 희생되어 발생하는 핵분열 현상이라는 점이다.

한 가지 더 이야기 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말해 오듯이 무엇보다도 한국사회의 교육열과 교육모순이 맞물려 기러기 가족을 탄생시킨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교육은 아직도 학벌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교육이 궁극적으로 좋은 대학 들어가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입시를 향한 과정'으로 점철된다. 이런 환경에 적절히 적응하지 못한 학생은 해외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고자 조기유학을 떠난다. 또한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외국어 능력이나 외국학교 수학 경력이 사회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구성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외국 유학을 떠난다.

2006년에 정부가 발표한 초·중·고 유학 출국학생 통계를 보면, 2004년 3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유학을 목적으로 출국한 초·중·고교생은 1만6446명인데, 이 수치는 부모의 직장·연수 등을 이유로 외국에 나가는 파견동행과 국외이주는 뺀 것으로서 순수하게 유학을 1차 목적으로 출국한 숫자이다. 그러니 목적을 위장했거나 다른 사정으로 나간 김에 유학을 하는 학생들의 숫자를 계산하면 상당한 숫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2007년에 나올 통계는 훨씬더 더 불어 날 것이다. 통계의 분석에 따르면 초등생 유학이 중·고생에 비해 급증하고 유학 국가도 미국 위주에서 캐나다, 뉴질랜드, 동남아 등으로 다양화한다.

이런 흐름을 목도하면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기러기 가족'을 감수하면서 결행하는 조기유학이 제대로 알고 보면 실보다 허가 더 많다는 점이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너무 많다.

어떤 현실적인 문제를 이유로 들더라도 부부가 장기간 떨어져서 생활하고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성장기의 자녀와 장기간 떨어져서 생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유학을 통해 얻는 것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가족 공동체의 가치와 쉽게 맞바꿀 수 없는 것이다. 꼭 유학이 필요하다면, 성년기가 되어 대학 무렵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 미성년기부터 외국에서 성장하며 공부하는 것이 흔히 말하는 인생의 '성공'에도 생각보다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소수의 '성공한' 사례를 일반화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그런 성공 사례는 국내파에서 더 많이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외국파 가운데 극소수 세간의 조명을 받는 성공한 인물들의 경우를 대다수 외국파 인물들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다수의 조기유학생들은 국내에서 학교를 다닌 것보다 불행한 결과를 얻기 쉽다. 학업, 인격 형성, 가족 의식, 한국사회 적응 등의 측면을 고려할 때 부정적 결과를 얻을 확률이 훨씬 더 높고, 실제로 사례를 조사해 보면 쉽게 확인된다.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한국교육이 문제다', '외국교육은 천국이다', '한국 학생들이 불쌍하다' 따위의 말을 쏟아내다 보니 정말로 한국교육은 지옥이고 외국교육은 모두 천국인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교육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외국교육이 모두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교육선진국들도 문제는 많다. 상대적으로 한국 교육의 문제가 더 많고 교육선진국의 문제가 덜 많다는 것 뿐이다. 그런 차이가 많은 희생과 모험을 감수하면서 조기유학을 떠나야 할 만큼 의미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유럽과 미국에 몇년씩 체류하면서 현장을 접해 본 필자는 구체적으로 외국 교육의 많은 문제점들을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 때문에 가족이 흩어져 사는 것이 어떤 문제들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 내는지 생생하게 목격하였다. 그래서 여러 번의 기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기러기 가족이 되는 것은 결코 생각도 해 보지 않았다.

어린이의 교육은 어떤 지식을 얻거나 학력을 획득하는 일만으로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합리적인 가족관계, 정서적인 이웃과 친구 관계, 공동체나 국가의 구성원 관계와 의식 등등 종합적인 과정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한국의 교육이 많은 모순을 갖고 있다고 하여 어린 자녀들을 외국으로 내보내는 것보다는 조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모순을 개혁해 나가는 데에 힘을 모으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의로운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의 교육을 제대로 개혁하는 일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조기유학을 통해 그것을 우회하는 일은 더 많은 희생과 모험을 치러야 한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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