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술을 통해 얻고자 하는 가치

창원시청이 작가 최정화의 작품을 철거한 배경과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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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경(mikyc)등록 2007.03.28 20:08
소위 문화 만능의 시대다. 거리에는 파리와 뉴욕의 패션이 넘치고 수없이 많은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 세계의 작품이 소개된다. 조선 오백년의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청계천 입구에는 그 유명한 클래스 올덴버그의 소란지 달팽이가 우뚝 서있는...
우리는 이런 문화 향유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와 동시대에 창원에서 일어난 사건 하나를 살펴보자.

창원시는 봄철 축제 기간에 설치작가 최정화에게 설치작품을 의뢰했다. 최정화는 창원시청과 협의하에 미리 설치내용을 설명하고 작업허가를 받은 다음 작업을 시작하였다. 작업을 시작한 19일 심한 바람으로 처음 의도한 늘어뜨린 작업을 하기가 힘들어 지자 최정화는 작업의 변경을 결정하고 이 사실을 21일 현장에서 기획사를 통해 시청에 알리고 나머지 작업들을 진행했다. 그 작업은 며칠간 계속 되었다. 작업의 설치가 거의 완성되어가던 24일 창원시는 시민들의 민원을 핑게로 최정화의 작업을 오후 한시경 철거해 버렸다. 최정화에게 그 사실은 통보되지 않았다. 창원시에서 철거 직후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내용을 보면 최정화의 작업이 원래 진행하기로 한 내용과 달랐다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그에게 떠넘기고 있다.

예술가의 설치작품이란 그 작가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늘어지기로 한 선의 상태가 팽팽해 졌다고 작가의 정신이 바뀐 것인가? 사실 창원시청은 자신들의 글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스스로 기준하는 예술의 잣대가 있고 그 잣대에 맞으면 예술인거고 안맞으면 예술이 아니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관료들의 눈으로 보면 예술이란 당신들의 여흥을 북돋는 악세사리에 불과한 것인가?

창원시청은 최정화가 사용한 천이 동대문시장에서 파는 흔한 천임을 지적하고 시민들이 성황당 같으니 철거하라고 한다는 표현을 썼다. 최정화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강렬한 이미지로 전환하는 작업을 하는 작가다. 인터넷에서 최정화 석자만 찍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작업에 대해 창원시가 미리 몰랐을리 만무하다. 그리고 성황당이 뭐가 어떻다는 것인가. 성황당은 우리나라의 가장 뿌리깊게 이어져 오는 신앙의 근원이다. 역사이전부터 우리가 무엇을 기원할 때 찾아가던 성황당이 한국인의 축제에 왜 안어울린다는 것인가. 영국의 스톤헨지는 앞선 문화의 상징이고 우리의 성황당은 구시대의 잔재인가?

이런 문화적 사대주의는 공무원들만 갖고 있는 생각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지난 시절에 살았던 생존의 법칙 즉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생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까닭에 뭔가 튀는 것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는 것 조차도 두려워한다. 그래서 예술가에게 조차 우아하고 보기 편안한, 웬지 유럽에서 본 것 같은 예술을 암암리에 강요하는 것이 바로 군사독재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의 예술관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얘기할 것이다. 예술이 보기 좋은게 왜 나쁘냐고. 작가는 남의 눈에 좋아보이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는 시대를 읽고 그 시대를 해석하여 자신의 관점으로 시각화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서로 다른 많은 작가들의 다양한 시각이 어우러진 사회에서 우리의 문화는 비로소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작품이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 사람들은 예술을 채점하기 위해 보는 것이 아니다. 좋고 나쁨이 아니라 어떻다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작품을 감상하는 일이다. 뭔가를 봐야, 그 것도 그 때까지 보던 것과 다른 것을 봐야 새롭게 느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창원시청이 최정화의 설치작품을 유치했다는 사실은 대단히 앞선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그 것이 일부 공무원의 시대에 뒤떨어진 문화사대주의적 판단으로 시민들이 보는 경험을 해보기도 전에 철거당했다는 사실은 일보 앞섰다가 이보 후퇴한 꼴이 아닌가.

창원시의 공무원들은 시민들의 민원을 핑게대지 말아야 한다. 그런 논리라면 서울에서 내가 청계천 입구에 있는 올덴버그의 소라껍데기가 마음에 안든다고 하면 서울시가 그 것을 치워야 할 것 아닌가. 그럼 청계천의 있는 작품은 미국의 유명 작가 작품이니까 안되고 창원의 최정화 작품은 우리나라 작가니까 마음대로 처리해도 된다는 건가. 청계천에 있는 작품이 그 존재 이유와 가치가 있는 것처럼 창원의 최정화의 작품도 역시 창원시민에게 보여줘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어느 쪽이 옳은 것이 아니라 다 필요하고 다 의미있음을 아는 일. 그 것이 바로 문화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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