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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월에 걸친 한미 FTA 협상 타결을 3시간여 앞둔 2일 오전,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국회를 찾았다.
스위스 의원 연맹 소속으로 한국과의 친선 교류 목적으로 자비를 들여 우리나라를 방문한 스위스 국회의원들이다.
의원들이 입장한 국회 본청의 양쪽에는 천정배 의원과 임종인 의원의 단식 텐트가 서 있고 본관에는 김근태 의원이 초췌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이들도 언론보도를 통해 한미 FTA와 관련한 한국 사회의 진통을 알고 있는 듯, 이상득 국회부의장과의 면담에서 한국과 미국의 관계와 FTA 협상에 반대하는 시위대들에 대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영세 중립국 스위스는 유럽에서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미국과의 FTA를 추진한 나라다. 유럽연합에 속하지 않은 유럽 국가로서 유럽연합이 미국과 FTA를 맺을 경우에 대비해 유리한 고지를 마련하자는 의도로 미국과의 협상을 서둘렀다.
한국과 스위스는 대미 FTA 협상 과정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스위스의 대외 무역 의존도는 우리(70%)보다 높은 77%이다. 한국에게 미국은 중국 다음의 최대 수출시장이듯이 스위스에겐 독일 다음의 두 번째로 큰 수출시장이다. 미국과의 FTA 체결로 인해 시계 산업과 기계 산업 수출에서 연간 약 1억 프랑(약 780억원)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 스위스처럼 우리는 섬유와 자동차 수출을 기대하고 있다. 더불어 미국과의 상호 투자가 활발해 FAT 체결후엔 스위스에 대한 미국의 투자 유발 효과도 기대된 상태였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 한국과 미국의 FTA 체결 협상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2006. 2. 1 프랑스는 미국과의 협상을 중단했다.
한.스위스 의원 친선협회 대표 단장인 스위스 국민당 소속의 Dr. 레이만을 국회에서 만났다.
- 왜 스위스는 미국과의 FTA 협상을 중단했나?
=한국과 똑같은 문제를 스위스도 겪었는데 값싼 미국 농산물을 스위스에 수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위스도 의회에서 미국과의 FTA를 결렬시켰다.
-한국 정부는 유전자조작식품(GMO)가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지만, 협상 막판에 그런 가능성도 나타나고 있다. 스위스에서도 중요한 문제였다던데?
=스위스에서 큰 문제였고...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해서 완전히 반대한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주의깊게 추진했었다.
- 스위스는 미국과의 FTA 협상을 어떻게 부결시켰나.
=국민투표는 안 했다. 국민투표 통과 없이 진행했던 이유는 모든 국민들이 우리 4개 정당을 다 지지했다. FTA 협상에 대해서는 의원들 결정에 맡겨놨고 4개 정당이 결렬시켰다.
-스위스와 미국이 FTA를 성사시켰으면 큰 무역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인구의 4%밖에 안되는 농민들을 보호하려고 했다던데?
=농업이 단지 식량을 생산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나라를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소수의 농민일지라도 보호가 필요했다.
-한국은 국회 앞에서 의원들이 단식을 하는 등 한미 FTA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크다.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겠나?
=스위스는 중립국가기 때문에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각 국가마다 각자의 길을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스위스의 대미 FTA 협상 결렬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것은 농산물의 원산지 증명 문제였다. 스위스는 법으로 농산물에 생산지, 생산방법, 가공처리과정 등을 반드시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성장촉진제를 먹인 육류라 유전자 조작에 의한 식물의 유통은 금지되어 있는데, 이를 거부한 미국에 대해 스위스 의회는 국내법을 어겨가면서까지 협상을 진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스위스 농업은 전체 산업의 약 1.8%다. 인구도 4-5%로 매우 적은 퍼센테이지다. 하지만 농업을 산업으로 인식하는 시각은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 스위스 연방헌법 104조에 의하면 농업은 안전한 먹거리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자연적인 삶의 터전을 보전하며 농지를 가꾸고 국토에서의 분산적 거주에 기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농업과 국민의 먹을거리에 대한 스위스 의회의 뚜렷한 인식과 그들을 믿고 지지해준 국민들의 의지가 미국과의 FTA 협상을 중단시킨 배경이 됐다.
농업을 희생시키고 광우병에 오염될 가능성이 큰 뼈있는 쇠고기를 수입하며 유전자 조작 식품까지 들어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이 시점에 스위스 의원들의 뚝심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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