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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내가 맡고 있는 이주여성 반에는 저기 남미에서 온 여성이 두 명 있다. 토착민 혈통이 아닌 스페인계 혈통이라 둘 모두 금발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라들이 선호하는 예쁜 얼굴들이다.
이들은 요즈음 성행하는 결혼중개업소를 통해 부부가 된 사람들이 아니라 유학차, 사업차, 그쪽 나라에 들렀던 남편들 때문에 부부의 인연을 맺고 한국에 와 살고 있는, 요즈음 그 흔한 이주여성하고는 좀 다른 케이스이다.
아이들 셋을 외국인 학교에 보내고 있으니, 가정형편도 우리가 상상하는 보통 이주여성의 생활보다는 수준이 훨씬 높다.
이 두 사람은 한국과 인연을 맺은 지 10년이상 지났지만,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한다. 겨우 한글을 글자그대로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백인들이라 사는 데 별 지장 없었을 텐데...
한 사람은 영어를 꽤 잘하는지 우리나라 영어학원에서 강사로 일을 한다고 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모국어 외에는 할 줄 아는 말이 없다.
아마도 아이가 커가니, 그리고 그 아이들이 한국에서 자라고 있으니 어떤 단절같은 것을 느꼈으리라. 그래서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겠지. 우리의 해외이민자들과 비슷하지 않을까싶다.
금발의 백인이 우리나라에서 한국말을 몇 마디 하면, 오히려 무시를 받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영어하는 백인에게 겁먹는 우리네 사람들 덕분에, 오히려 한국어를 하지 말아야 우리 위에 군림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백인의 한국어 공부를 가로막는 것이 또 있다.
수업을 끝마치고 복도를 지나갈 때, 이들에게 꼭 말을 거는 옆 강의실의 노친네들이 있다. 각종 실버강좌를 듣는 이 바깥 노인네들은, 우리 반 금발의 수강생들만 봤다하면,
"하이, 헬로. 웨어 아유 프럼?"
을 외치며 영어 배우기의 적극성을 과시한다.
세 번 봤는데, 세 번 볼 때마다 묻는다.
말했듯이 이들 중 한 명은 영어를 안 한다.(못한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고 정도의 영어는 알아듣지 않을까 싶어서다.)
오히려 필리핀에서 온 새댁 4명의 영어실력이 훨씬 출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네들은 그 노친네들의 시선을 받지 못한다.
백인이라면 무조건 영어를 할 줄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엘리베이터에서 눈 마주쳐도 눈인사 한 번 안하는 무뚝뚝한 사람들이 어쩜 그렇게 백인 앞에서는 다리에 힘이 풀어지는지...
이런 말을 했더니 누군가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한 때, 등짝에 '아임 낫 어메리칸'이란 프린트의 티셔츠가 유럽인들에게 불티나게 팔린 적이 있다고...
영어로 말 걸어오는 한국사람들 때문에 한 유럽인이 고안해 냈다는 셔츠라고 한다.
우리 안의 문화사대주의까지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그냥 백인들이 한국어 공부좀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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