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없음을 인정할 것

버지니아 테크 총격 참사를 바라보며

검토 완료

이성홍(cdstone)등록 2007.04.24 13:50
요즈음 들어 화제가 되는 뉴스보도들을 역부러 피하려 드는 경우가 많아 졌습니다
특히나 그것이 끔찍한 사건사고일 경우 더욱 그러한데요. 철만난 망둥어처럼 설쳐대는 뉴스매체의 빤한 공식, 되도록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글과 그림들을 앞세우고,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식의 전문가연하는 이들을 뒷세워 실상이니 진단이니 대책이니 하면서 사람들 마음을 더욱 황폐하게 만드는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하긴 요즘같으면 이른바 누리꾼들의 설왕설래도 언론보도 못지 않지요) 자꾸만 우리 살아가는 세상에 자신이 없어지고 희생자나 그 가족들에게, 또 이미 예견되어있을 앞으로의 끔찍한 희생들에 대하여 그저 맥놓고 바라보아야 하는 무력감과 희망 없음도 큰 몫을 하지 싶습니다.
이번 미국 내의 총기사건도 가해자의 개인적인 성장배경부터 사회적 심리적 병리학적 분석에서 무기소지 허용문제, 학교 측의 대응, 언론의 선정성 거기다 재미교포란 점까지 엮어서 재발 방지니 향후 대책이니 콩이야 팥이야 떠들어대지만 다 알지 않나요. 이미 33명의 목숨이 희생되었고 이런 희생은 또 일어날 것이란 것을. 더 자주, 더 끔찍하게.

어느 노작가가 테러의 가장 나쁜 점은 ‘그것이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가리지 않고 저질러지는 때문’이라고 하였지요. 자 그러니 어찌해야 할까요. 총기나 폭발물이나 살상무기에서 비교적 떨어져있는 이 땅에 살고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거나 주위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재수!’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까요.(참, 나라밖에서는 핵위협 아래 살고 있는 이 땅의 주민들을 되게 불안해 한다지요)
물론 나는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또 어떤 전문가에게서도 그럴싸한 대책을 들어보지 못했구요. 그러면서 내 나름대로 익힌 방법(그야말로 방법이고 혹 편법이랄 수 있겠네요)은 먼저 ‘희망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사람은 끼니없이 살 수는 있어도 희망없이 살 수는 없다고 하였지요. 그런가요. 힌두스탄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답니다. ‘사람은 산봉우리 때문에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돌멩이에 걸려 넘어진다’는. 내 나름대로는 저 높은 꼭대기 희망이나 바램보다 당장 자기 앞의 돌멩이를 살피며 나아가는 일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어긋지게 풀어보는데요. 이와 비슷하게 사람이 숲을 쳐다보지 못하고 나무만 바라본다고 나무라지만 그 숲이 이미 벌거숭이가 되었다든지 멀리서부터 타들어온다면 어찌해야 하나요. 막가자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우리네 삶은 소중한 것이고 지켜내야 할 그 무엇(숲은 아니더라도 내 주위의 나무)을 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거지요.

얼마전 소설가 김훈은 인터뷰글에서 ‘양심이나 자유의지, 이런 것도 우리 존재의 근원이겠지만 폭력과 악이야말로 세계의 근원적 바탕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요. 이제 우리 내면의 폭력성이나 악마성에 대한 논의는 전문가의 손을 빌 필요도 없이 ‘그렇다’는 쪽으로 쏠린 듯 합니다
‘그래서 어쩔건데?’ 당신과 내 속에 있는 그것들을 어찌해야 할까요. 거기서 다시 출발할 수 밖에요. 내 속에 있는 나쁜 것을 부정하고 은폐하려 하기보다 내 속의 다른 것들, 조금 나아보이는 것들을 되도록 자주 많이 부추기고 흔들어 깨워 스스로 좋아지리라는 긍정과 낙관의 마음을 갖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귀한 이를 만나는 것이지요. 우리 주위에는 삶을 살맛나게 하는 이들이 꽤나 많이 있어 보입니다. 물론 이들이 세상을 구원하거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에는 이 무지막지한 세상은 너무 멀리 나가있음에 분명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내가 아닌 어떤 이가 내 옆에서 웃음과 감동을 준다는 일,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는 일 참 신나는 일이지요.
마더 테레사의 말씀도 생각나네요.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만을 도울 수 있다’는. 가능하겠지요. 굳이 그것을 희망을 빌어 말하라면 우리의 희망은 이런 작은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작고 사소한 것 그 자체 아닐까 하는 거지요. 이번 총기사건 이 후 버지니아공대 교정에는 추모의 자리가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애도와 더불어 가해자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용서, 그리고 우리 서로에 대한 화해와 치유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이런 귀한 마음을 만나고 만들어가는 노력, 그나마 우리가 숨통을 트고 살아갈 수 있는 방편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잘 살아야 합니다. 몸도 마음도 준비하고 힘을 키워야겠지만 지금 당장 있는 그 자리에서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애써 귀한 이를 만나고 살 맛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무슨 뜬구름잡는 소리 같다구요. 그래요. 입에 발린 말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이 머리 속에 그려지고 표현될 때 파장을 이룬다고 합니다. 이 파장은 자기든 타인이든 곧 바로 세포에 기억되고 저장되고 확장된다고 하구요. 그러니 긍정과 낙관의 마음가짐으로 자신과 삶을 대하는 일, 또 이를 주위에 보여주는 일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어디서든 어떻게든 살아가기 마련이고 세상은 어떤 경우에도 살만한 곳임을 믿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으려 합니다. 도와주실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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