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국제영화제를 알리는 영화의 거리 ⓒ 한상언
축제란 흥분과 동의어이다. 축제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동공이 커지고 어깨가 들썩여지며 목소리가 커진다. 이러한 증상은 축제에 몸을 던졌던 고대 그리스인에서부터 내려온 것일 테다.
전주영화제를 향해 달려가는 차 안에서, 동행한 선배와 나는 평소보다 들뜬 모습이었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남자들끼리 뭔 말이 그리 많은지 신나는 말들이 오가는 사이에 차는 목적지 전주에 도착했다. 그 사이 오마이뉴스의 상근기자인 최은경 기자의 은근한 압박성 전화도 받았다.
개막식이 열리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노란색 점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과 빨간색 점퍼를 입은 영화제 스텝들이 손님 맞을 준비로 한창이었다. 예정시간보다 훨씬 일찍 개막식 장소에 도착한 우리는 오솔길마냥 마당을 가로질러 깔린 레드카펫 옆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부산영화제처럼 번잡하거나 소란하지 않은 전주영화제는, 객석에 앉아 영화를 보듯, 등나무 벤치에 앉아 느긋한 마음으로 레드카펫 위를 걷는 스타들의 모습을 관람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전주영화제만의 매력이리라.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인물은 영화배우 문성근이다. 형제처럼 비슷하게 생긴 정지영 감독과 함께였다.(정지영 감독은 <남부군>, <하얀전쟁> 등을 연출하였다.) 개막식이 시작되기 전인데도 이들의 발걸음은 종종걸음이다. 레드카펫 주변을 서성이던 그들은 지인을 만났는지 멈춰 서서 이야기한다.
▲ 5월 1일 개봉하는 <이대근, 이댁은>의 홍보를 겸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영화배우 이대근. 그는 <뽕>, <변강쇠>로 대표되는 80년대 섹시 아이콘이었다. ⓒ JIFF
어둑해지면서 제법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아이디를 받아들고 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2층 발코니에서 포토 존에 선 스타들을 지켜보았다. 개막식 사회를 맡은 김명민과 박솔미가 포즈를 취했다. 그 뒤로 여러 스타들이 포토 존에 섰지만 유독 반가운 얼굴들은 80년대의 섹시 아이콘인 이대근 아저씨와 이영하 아저씨이다.
이 분들은 애로물이 범람했던 80년대 전성기를 보낸 배우들이다.(60대 전후의 이들을 아저씨라 부르는 것이 왠지 친근감이 간다.) 이대근은 <뽕>, <변강쇠> 등의 역사물에서 힘세고 야성적인 남성적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고 이영하는 <벌레먹은 장미>,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와 같은 현대물에서 모성애를 자극하는 유약하고 도시적인 모습으로 인기를 끌었다. 재미있는 건 금보라가 출연한 <늑대의 호기심이 비둘기를 훔쳤다>에서는 이 둘이 함께 출연했다는 점이다.(이들의 상대역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인 정윤희, 안소영, 오수비, 이미숙 등이다)
개막식이 시작됐다. 전주에서 활동하시는 안소민 기자님과 연락이 되어 인사를 나눴다. 전주에 산다는 이유로 안소민 기자님께 기사에 대한 부담감을 떠넘겼다.
식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팬들의 환호가 가득했던 로비를 둘러봤다. 팬들이 사라져버린 그곳에, 자원봉사자들은 스타가 된 양 포토 존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여기 저기 구석에는 노트북을 끼고 작성하는 기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 개막식이 열리는 동안 레드 카펫위에 앉아 쉬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 한상언
마당의 스타들이 밟고 지나온 레드카펫위에는 쭈그려 앉은 자원봉사자들이 오늘의 추억을 옆의 동료와 되새기고 있었다. 어찌 보면 영화제의 주인공은 10대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자원봉사자에 선택된 이들이 아닌가 한다.
개막식이 끝났다. 자원봉사자들은 레드카펫을 걷었고 안전펜스도 치웠다. 개막작인 <오프로드>의 상영이 시작되기 전 늦은 저녁을 챙겨먹으러 선배와 나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빠져나와 시내로 향했다. 낡은 내비게이션의 오작동으로 전주 시내를 헤매고 다녔지만 저녁은 맛있었다. 숙소를 정하고, 내일 볼 영화를 고르며 한창 수다를 떨었다. 남자들끼리 뭔 말들이 많은지 새벽 3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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