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유희를 위한 100가지 사고실험

[서평]유쾌한 딜레마 여행/줄리언 바지니/한겨레출판

검토 완료

김선희(waldenpond)등록 2007.05.06 15:25
이 책에는 ‘잡아먹히고 싶은 돼지’를 포함해 100가지 사고실험이 수록되어 있다.
원서 제목 도 <‘잡아먹히고 싶은 돼지’와 99가지 다른 사고실험들>.
‘잡아먹히고 싶은 돼지’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40년 동안 채식을 고수해온 어떤 이가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소시지와 베이컨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아 있다. 이 돼지는 보통 돼지가 아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말을 할 줄 알고, 더 나아가 ‘잡아먹히기를 원하도록 만들어진’ 돼지이다. 따라서 스스로 도살장에 ‘서둘러 달려가’ 먹기 좋은 소시지와 베이컨이 되어 식탁에 놓여 있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돼지를 무시하는 행동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의 질문은 이렇다.
[당신이 채식주의자이고,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고기를 먹는 것이 채식주의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 될까?]

이렇듯, 이 책은 “플라톤부터 스필버그까지, 그들이 펼치는 철학 대모험이다. 이 세상의 철학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고실험 100가지로써, 철학, 영화, 소설 등 다양한 텍스트에서 끄집어낸 시나리오와 지은이가 만든 가상의 시나리오를 이용해 가치판단을 내리기 힘든 철학적 숙제를 독자들에게 던진다.”

그 다음 상황설정. ‘거북이 경주’ 이야기를 살펴보자.
아테네에서 인간 아킬레스와 거북이 사이에 달리기 경주가 열리고 있다. 해설자는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100미터 앞에서 출발하게 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기에, 아킬레스가 결코 거북이를 이길 수 없다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수학적으로 볼 때,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추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해설자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추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설자는 이렇게 말한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저건 불가능한 일인데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의 질문은 이렇다.
[해설자의 논증은 “언제나 아무리 짧아도 거북이가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일정한 거리의 공간이 있고, 아무리 짧아도 아킬레스가 거북이에게 다가가는 데 걸리는 일정한 시간이 있다는 관념”에 바탕을 두고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추월할 수 없음을 입증하는 듯하지만, 우리는 경험상 아킬레스가 이기리란 것을 안다. 해설자의 논증과 우리의 경험 두 가지 모두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왜 이런 역설이 나타날까?]

‘지식인에게 물어봐’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소개해보겠다.
상황 설정.
인터넷과 백과사전에 연결된 초고속 무선 칩이 있다. 그리고 그 칩을 가지고 있는 한 여자가 있다. 그녀가 기억해내고 싶은 게 있으면, 그 칩이 정보를 뒤져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그녀는 상대방과 대화를 나눈다. 이제 그녀는 사무실에서 가장 아는 게 많은 사람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의 질문은 이렇다.
[칩이 머릿속에 떠올려준 것들을 마치 자신이 읽고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그녀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자신의 뇌에 저장된 정보에 접근하는 것과, 다른 곳이지만 곧바로 연결할 수 있는 다른 어떤 곳에 저장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오랫동안 ‘철학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전파하는 일’을 해온 저자가 철학적 역설을 알기 쉽게 풀어쓴 책이다. 책의 서술 방식은 앞의 3가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어떤 상황을 던져주고 거기에 대해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사고력과 논리력을 키워주는” 사고실험을 하게 된다.

유쾌한 ‘딜레마’ 여행.
딜레마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
저자는 사고실험의 상을 근사하게 차려놓았다.
그러나 과연 독자들은 딜레마에서 빠져나와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의도대로 독자들은 지적 유희를 누릴 수 있을까?
더 깊은 딜레마에 빠지는 불쾌한 경험을 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사족.
이야기의 첫머리에는 source(출처)를 밝혀두고 있는데, 여기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 예를 들어, ‘시간차와 정체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부분은 source에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거기서 소개되고 있는 상황 자체가 마치 <리바이어던>에 나오는 내용인 것 같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이 책에서 source는 저자가 어떤 상황을 설정함에 있어,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빌려온 책이나 영화 등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