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전문대학원, 설립단계부터 기우뚱, 갸우뚱

불협화음으로 시작되는 한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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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회(kjunhoy)등록 2007.05.1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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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공약사항으로 긴 산고 끝에 이루어지는 한의학전문대학원(이하 ‘<한의전>’으로 표기)이 설립단계부터 기우뚱거리고 있다. 작년 11월까지 총6개 대학이 치열하게 경합하였던 전문대학원 설립은 결국 부산대로 낙점되었으나, 이후 교육부와 부산대는 설립과 관련하여 <한의전>의 또 다른 실질적 주체인 한의계의 의견을 배제하고 수긍할 수 없는 행보를 계속함으로서, 한의계가 심각한 우려와 개선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불협화음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협화음은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그 첫째는 설립이 너무 촉박하게 추진되어 졸속의 우려가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한의전>설립에 있어 실체적 내용물인 한의학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 한의학 전문대학원 설립 상황

이번 <한의전>의 설립은 국고560억원(교육부 295억, 복지부 265억)지원을 포함한 총 935억원의 재정이 투자되는 정부차원의 국립대 지원프로그램이다. 그동안 국립한의대설립은 한의계가 숙원사업으로 꾸준히 추진해온 사안인데, 참여정부가 공약사항으로 받아들여 한의학 전문대학원 형태로 설립키로 한 것이다.

정부입장에서도 세계적으로 전통대체의학이 부상하고 있는 현 조류를 감안하여, 오랜 전통을 가진 우리의 한의학을 국가적으로 정비하여, 궁극적으로는 세계경쟁력이 있는 의료산업모델로 까지 발전시켜나가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동안 <한의전> 설치를 위하여 정부에서는 2006년부터 교육인적자원부내에 <한의전 설치지원위원회>(위원장 교육부 차관)와 <한의전 실무지원단>을 구성하여 추진해왔고, <한의전>설치대학이 결정된 작년11월 이후에는 ‘<한의전 추진기획단>’과 ‘<한의전 추진지원위원회>’가 부산대내에 설치,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무리 없어 보이던 총론적 구상단계와는 달리 구체적 추진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 본말이 전도된 교육과정 정책연구진구성

불협화음의 시작은 올해 초 <부산대>가 <한의전>의 표준교육과정 개발을 위해 별도로 구성한 정책연구진(총11명중 한의대교수 2명, 양방의대교수7명, 약대교수1명, 교육과정전문가1명)에 참여하는 한의대 교수는 20%내외(2명)인데 반해, 이의 3.5배에 해당하는 70%(7명)정도의 양방 의대교수를 배치함으로서, 그 의도에 대하여 한의계측으로부터 심각한 의문점을 제기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 전개에 대하여 한 한의계 인사는 “의과대학 소속인 김 인세 부산대 총장이 <한의전>유치문제로 양방의료계 내에서 심각한 징계논의에 직면하는 등에서 심적 부담을 느끼고, <한의전>설립에서 이런 무리한 행보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고 한의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 동양의학전공에게 서양의학적 소양 요구가 웬 말

게다가 이런 분위기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올해 3월 11일, <부산대>측은 <한의전>의 입시에서 본래 자신들이 앞장서 개발하기로 하였던 <한의전>입학자격시험(잠정적으로 O.M.E.E.T(Oriental Medicine Education Eligibility Test)로 명명됨)의 개발을 포기하고, 대신 현재 양방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전형에 사용하는 M.E.E.T시험으로 대체한다는 수정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는데, 급기야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의전>의 실체적 내용물인 한의학의 몰이해에서 나온 용납할 수 없는 조처라는 입장’을 담은 5/15일자 보도자료를 내놓게 된 것이다.

사실, O.M.E.E.T개발에서 실질적으로 재정과 기구를 지원해야 했던 교육부 또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의전>입시에서 O.M.E.E.T를 M.E.E.T로 대신하는 조처에 대하여, 교육부에서 <한전원> 설립을 총괄하는 곽 창신 대학혁신추진단장은 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한의전의 설립허가가 촉박하게 된 관계로 이를 용인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일개 <한전원>입시만을 위하여 한의학적 특성을 반영하는 자격시험문항으로 구성된 O.M.E.E.T를 개발하는 것은, 너무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관계로 M.E.E.T.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사후관리에 손놓은 교육부

그런데 이러한 교육부의 논리는 정책에 앞뒤가 맞지 않는 전형적인 예로 보인다. 참여정부 가 출범하면서, 노대통령은 분명 국립한의대의 설립추진을 분명히 해왔었고, 그것이 2006년 중반부터 <한의전>으로 구체화되어 적극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2006년 11월, 최종 설립교육기관(2008년 3월 개원 목표)이 결정되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교육부는 <한전원> 설립에 필수적인 사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부산대의 말만 믿고 손을 놓고 있다가,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현 상황에 몰리어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무리한 결론을 내리는 부산대를 또다시 두둔하고 나선 것이다.

참고로, 이전에 있었던 양방 <의학전문대학원> 추진과정에서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언론의 질타를 받아왔던 교육부이다. 2년 반에 걸쳐 개발된 M.E.E.T.의 출제와 관리에서 지적되었던 준비부족과 촉박한 시행 등의 많은 문제점 지적을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잊어버렸다는 것은 아직도 일부 공무원사이에서 만연한 무사안일주의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한의학정책연구원 소재진 박사는 “무려 560억원이라는 거대한 국고를 지원하는 총 935억원짜리 프로젝트가, 12억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는 O.M.E.E.T문항개발에 재정난 운운하는 것은 넌센스다. 사실 재정문제를 떠나서 더욱 중요한 것은 정체성이다. 겉치레 형식은 많은 돈을 들여 갖추면서, 실제적 내용물을 채우는 것에는 인색한 정부 관리들의 인식은 염려스럽다”는 점을 강조했다.



- 국적불명이 된 <한의전>소프트웨어

그런데, 부산대가 2007년 3월 19일에 발표한 추진현황에 따르면, ‘2007년 4월에만도 미국 포틀랜드대학을 비롯한 일본, 중국, 대만의 대학 및 기관들을 방문하여 교류협정 체결, 공동연구, 공동교육, 공동진료을 방안 논의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를 두고 한의학 정책연구원 변철식 원장은 “<한의전>의 실체도 아직 없는 상황에서 O.M.E.E.T.개발과 같은 시급한 사안은 뒷전인 채, 국고나 낭비하고 다니는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어 “서양의학이 환원적으로 접근하는 ‘분석과 논리’를 생명으로 한다면, 동양의학은 직관으로 접근하는 ‘전체성과 관계론’의 학문이다. O.M.E.E.T.는 한방의사로서의 자격을 심사하고자 당연히 도입해야 하는 것인데, 이를 M.E.E.T.로 대체함으로써 동양의학을 전공할 학생들의 자질판단에서 서양과학적 잣대를 들이대는 웃지 못할 촌극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게다가 현재 부산대가 표준교육과정 개발을 위해 구성한 정책연구진조차 압도적으로 양방 의사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니, 앞으로 <한의전>의 교육내용이나 졸업생들의 정체성에 대해 총체적 부실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국립한의대 추진위원장을 지냈던 김 정곤 현 서울시 한의협회장은 “뜻있는 한의계 원로들은 이번 <한의전>설립에 즈음하여, 일제치하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던 한의학의 전통과 기상을 명실상부한 제도권의학으로 발전시키고, 우리의 귀중한 자산인 전통의학의 세계화를 위해 앞장서줄 것을 기대한다”며 다만, “한의학의 세계화, 과학화는 기존 서양 과학적 패러다임에만 익숙한 젊은 연구자들이, 먼저 동서의학간의 패러다임 차이를 올바로 인식하고, 우리 전통의학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일에 힘쓴 연후에 가능한 것으로서, 결코 본말(本末)을 혼동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 한의계의 문제점

그렇다고 한의계가 이번 혼란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한전원>의 설립주체 결정에서부터 자격시험의 성격을 결정하는 소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엄연히 대표자를 파견하여왔던 바이다. 한의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정책논의과정에서 철저한 준비와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점들을 적시하고 강력하게 제기하지 못한 책임도 일부 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한의계를 대표하여 <한전원> 입문검사 및 교육과정 개발 연구에 공동연구위원으로 참석하였던 경원대학교 P교수는 필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소위원회에서 <한전원>입시자격고사로서 O.M.E.E.T.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대신, M.E.E.T.로 대체하는 것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면서 ‘시일의 촉박성’을 내세우는 부산대 측의 논리에 사실상 이의를 달지 않았음을 시인했다.

이를 두고 한의계 일각에서는, ‘한의학 관련 정부정책회의나 공공토론에서 한의계 대표자격으로 참석하는 일부교수나 학자들이 제대로 된 전문가적 의견개진에서 무능력을 보이거나, 또는 철저한 동양철학적 설득논리가 필요한 정책분야에서 다른 분야의 참여위원들과 구분되는 나름의 대안제시능력이 부재하여, 단순 거수기로 전락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며 개탄하고 있다.

참여정부에서처럼 참여가 중시되는 현대 민주주의 통치체제하에서는, 한의협 자신의 설득력있는 논리전개와 적극적 문제제기가 없이, 그저 정부 측에게 올바른 전통의학정책이 수립되기만을 고대한다는 것은,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있는 어리석음에 다름이 아님을 깨달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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