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누추한 곳에서 피어난 눈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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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순(vm2243)등록 2007.06.15 16:02

삶의 가장 누추한 것으로부터 마침내 그의 꿈을 이루고 마는 감동적인 인간승리가 서진규라는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대단한 시선으로 쳐다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무슨 일에 도전하기에 앞서 항상 세 가지 리스트를 작성했다.

첫째,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둘째,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셋째,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 세가지 문제에 답할 수 있다면 현재의 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희망에 도전하는 나를 알고 있다면 그 희망은 이미 절반에 이른 셈’이라고 그는 말한다.

약하디 약한 작은 몸매의 한 동양인이 미군의 일개 사병으로부터 소령으로 진급하기까지, 그리고 다섯 개의 대학을 십사년 동안 옮겨 다니면서 졸업을 하고 다시 하버드 대학원(국제외교사 동아시아 언어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준비하기까지 군인으로서 학자로서 어머니로서 그는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살아온 경악할 만한 의지의 주인공이었다.

경남 동래의 한 작은 어촌인 월내에서 가난한 엿장수의 둘째 딸로서 태어난 그는 가시나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도 천덕꾸러기로 자라야 했다. 그런 그가 하나의 도피책으로 선택한 서울 유학인 풍문여고를 졸업했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가발 공장의 여직공으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골프 연습장의 식당 종업원 노릇을 하면서도 영어 학원에를 다니면서 영어를 꾸준하게 공부해 두었다. 가난한 집안 환경을 벗어나고자 다음으로 모색한 것이 미국으로 가자고 하는 결심이었다. 희망이 없는 답답한 현실을 박차고 나가기 위하여 하나의 출구로써 선택한 것이 미국의 한 가정에 식모살이를 가야 하는 조건이었다. 너무 너무 살기가 어려우면 죽어버리면 안되겠나 하는 각오를 가지고 23살인 그녀가 미국 땅을 향했지만 주위에서는 모두들 무모한 짓이라 극구 만류했다.

다행히도 사람들의 도움으로 뉴욕의 브롱스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또 한국인이 경영하던 아리랑 식당 등을 거치면서 돈을 모은 그녀는 그 돈으로 회계학으로 유명한 버루크 대학에 입학을 한다.

그렇지만 형편없는 영어 실력으로는 영어 시간과 영작문 시간을 이겨내지 못한 탓에 담당 교수를 찾아가 눈물 잔치까지 벌리는 소동을 벌린다. 그 교수님은 그러한 그녀를 배려하여 시험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을 뿐더러 영어 사전까지도 보면서 시험을 치라고 배려해 준다. 수학은 어릴 때부터 잘한 탓에 그 과목에만 집중 매달리자 99.9라는 높은 점수까지 받게 된다.

생활력이 강하고 억센 여자에게는 남자들로부터 받는 사랑과 지원이 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그는 스물 다섯에 결혼을 했지만 그 결혼은 그녀를 더 힘들게 한 요인이 되었다.
그 남편에게서 딸 성아와 성욱이라는 아들을 두었지만 끝내 화합할 수 없는 둘의 관계였다. 그래서 불행한 결혼 생활의 도피책으로 미군으로 자원한 것이 스물여덟이었다. 가정에서 격리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택한 결정이 후일 그녀에게 성공을 던져주는 커다란 전환기였음을 아무도 몰랐다.


처음에 여군 훈련소에서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기압을 받기 일쑤였었고 군복과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벌을 받기도 했었다. 육체적인 고통도 고통이지만 교관들이 내리는 벌이 더 부당하게 느껴져서 반발하고 싶었던 때도 많았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면 못할게 뭐 있느냐는 오기로 모든 것을 이기면서 끝내는 최우수 훈련병으로 졸업하는 영예를 안게 된다.


조 일병이라는 미국 군인의 신분으로 한국에 오게 된 그녀는 시댁에 맡겨둔 딸 성아와 첫 대면을 하게 된다. 주한 미군 사령부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녀는 남편이 바라는 아들 성욱을 낳게 된다. 그리고 다시 접어 두었던 대학 공부를 시작 하면서 메릴랜드 대학 분교에 등록을 하게 되었고 일반 장교가 되는 길도 모색하게 된다. 포토 베닝에 있는 보병 훈련은 낙하산 훈련과 특수 훈련의 본거지로 유명 했다. 14주 과정이었는데 그녀가 ‘최고령’ 후보생 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과정들을 잘 이겨낸다.


그녀가 장교 훈련과정에 들어가기 위하여 한국을 떠날 때 남편과 결국 이혼하는 결정을 내린다. 딸 성아가 여섯 살, 아들 성욱이가 네 살이었다. 사병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던 자랑스런 소위 계급장을 손에 거머쥐고서 마침내 소령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그녀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미육군 본부의 정치 군사고문 겸 일본 자위대를 담당하는 연락 장교라는 중책까지 맡게 된 것이다. 영어에 대한 열등감과 미국에 대한 피해 의식으로 움추려 있는 일본인들에게 동양의 한 작은 여인이 덩치 큰 미군들을 상대로 당당하게 겨뤄 나가는 모습은 커다란 놀라움으로 비쳐졌다.


그러다가 중령 진급을 앞두고 그녀는 큰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버드 박사 과정과 두가지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온갖 역경을 헤치며 꿈을 하나하나 성취해 온 군인의 자리를 떠나 전역을 해야만 하는 기로에 섰지만 그녀는 학자의 길을 다시금 결정하고 만다. 그녀 곁에서 늘 같이 했던 딸 성아도 하버드의 정치 외교학과 학생에다가 우수한 R.O.T.C 생도이고 영어와 일어에도 능통한 처녀로 자라게 된 것도 어머니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은 그녀의 사랑 덕분이었을 것이다.

황혼으로 가는 나이에 들어서 있는 그녀가 비로소 살아온 삶을 조용히 돌아보면서 “언제나 꿈과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길이 나타난다.”라고 당당하게 말 할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남과 다를 수 있었다는 것은 그때 그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의지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성격은 그녀만이 가진 독특한 본질적인 요소들이 아닌가 한다.


주어진 현실을 박차고 나가 전혀 이질적인 다른 곳에서 자기가 바라는 꿈을 성취할 수 있었던 놀라운 의지력은 다른 사람들에게 바로 ‘희망의 증거’인 셈인 것이다.


태권도로서 유명한 그랜드 마스터의 김태연,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재일 한국인 손정의 같은 사람들 모두가 자기의 꿈을 당당하게 실현한 사람들이다.


서진규의 오늘은 참으로 가슴 뿌듯한 감동이요, 본보기이며 희망 그 자체다. 고난 속에서 피어난 눈물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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