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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두고 총체적 난국이라 하나보다. 축구국가대표팀을 두고 하는 말이다. 프리미어 리거들이 이번 아시안컵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할 것은 이미 예견된바, 그 충격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발탁된 이동국도 큰 활약이 불투명한 상태다.
며칠 전부터 깜짝 놀랄만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대표팀 주장 김남일이 수술로 아시안컵에 불참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3년간이나 통증을 참으며 경기에 나섰다가 지금은 아파서 잠도 잘 못잘 지경이라니, 이 미묘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소속팀인 수원 삼성은 지난 19일 “김남일이 지난 주말 경기를 치른 뒤 양쪽 사타구니 부위에 심한 통증을 느껴 18일 정밀진단을 받았다. 진단결과 ‘스포츠 헤르니아’판정을 받아 수술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밝혔다. 수원 삼성은 이어 “조만간 축구협회에 진단서를 제출해 아시안컵 대표에서 제외되면 가능한 빨리 수술날짜를 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위기는 곧 기회다. 아니 반드시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빠지는 걸로 확인된 이상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일단 그동안 김남일이 국가대표팀에 뽑힐 수밖에 없었던 그 존재의 이유 즉, 그의 강점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그래야 그 대체재를 떠올려보고, 최상의 전략을 짤 수 있기 때문이다.
“진공청소기”라는 그의 별명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최대강점은 홀딩능력이다. 하지만 그의 별명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생긴 별명임을 잊지 말자. 벌써 5년이 흘렀고, 지나간 시간만큼 김남일의 플레이도 농숙해졌다. 여전한 “홀딩맨”으로서의 수비력과 더불어 어느새 “앵커맨”으로서 패싱능력과 경기조율능력이 수준급이 이르게 되었다. 국내 여타 수비형 미드필더들과 구별되는 가장 큰 강점이다.
그렇다면 그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이호. 2006년 독일월드컵 당시만 해도 이호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아드보카트의 절대적인 신임을 보내며 그를 월드컵본선 전 경기에 출장시켰고,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감독을 맡은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그를 데려갔다. 가히 아드보카트의 황태자라 불릴 만 했다. 차세대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수식어는 이미 진부해졌다. 그리고 베어벡이 부임한 이후에도 “한국에서 가장 재능있는 미드필더”라는 극찬을 들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대표팀에서 주로 17번을 달던 그는 어느새 6번을 달고 있다. 수비의 리더들이 번호라는 6번을 말이다.
그에 반해 그는 국민들의 신임은 그다지 얻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월드컵 뒤에도 무수한 악플에 시달렸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언젠가 제니트의 한 동료의 인터뷰를 본적이 있다. 이호는 패스차단 등 수비력에서는 우위를 보이지만, 경기운영능력은 아직 조금 부족하다고. 국민들의 주된 비난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여진다. 틀린 말 같지는 않다. 경기 중의 그를 보면 보기만 해도 치가 떨리는 살인적인 태클을 예사로 해대고, 강한 몸싸움을 즐기는 듯하다. 하지만 플레이를 만들어 나가는 능력에 있어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답답함을 느끼게 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것은 그것은 스스로가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77년생인 김남일이 2010년 남아공에서 예전의 터프한 모습을 보이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호는 6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대표팀 유니폼을 보면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김남일의 역할은 결국 내가 해야 한다고. 지금은 욕 좀 먹고 있지만 완벽한 수비형 미드필더가 될 거라고. 그리고 이번 아시안컵을 자신의 무대로 만들어야 한다. 김남일이라는 큰 산이 아예 사라진 지금이 최고의 호기로 보여진다.
그리고 또 한명이 있다. 김정우다. 사실 그는 멀티 플레이어다. 지금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거론되지만, 고려대 시절엔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울산 현대시절에는 이 둘을 오가더니, 현재 나고야 그램퍼스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고 있다. 다재다능하다. 하지만 동시에 특화되지 않았다는 말도 된다. 더구나 182Cm라는 좋은 신장에 68kg 밖에 안 되는 그의 적은 체중은 그를 더욱 괴롭혔다. 몇몇 감독으로 부터는 “너무 곱게 축구한다.”는 혹평 아닌 혹평을 들으며 그의 체력과 파워에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그렇게 대표팀 안에서도 공격형 미드필더인 박지성과 김두현, 수비형 미드필더인 김남일과 이호 사이를 이리저리 떠돌며 자리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엔 그의 재능은 너무나 뛰어나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오래 뛰어온 구력에 김두현에 비견되는 패싱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전에서 이미 그는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팀을 이끌며 언론의 주목을 받은바 있다. 전혀 새롭지도 않은 ‘김정우 다시보기’가 한창이었다. 분명 한국에서 찾지 쉽지 않은 스타일이다.
그 점에서 김정우는 2006월드컵 준비기간 중 이을용이 대표팀에서 보였던 플레이를 역할모델로 함이 어떨까 싶다. 말이 쉽지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추상적이고 막연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김정우 스스로가 뛰어넘어야 할 부분이다. 이을용은 그 역할을 십분 해내지 않았던가. 당시의 박지성-이을용-김남일 조합은 지금도 회자되는 최강조합 아니던가. 김정우 역시 팀 내에서 주축 미드필더로 평가받는 지금이 베어벡 감독의 확실한 눈도장을 받을 기회이다. 조금 더 기대하자면 한국 주축 앵커맨으로서 더 이상 이을용이란 이름을 떠올리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둘은 울산 현대에서 같이 뛴 적이 있다. 해외로 진출하여 둘 다 팀 전력에서 이탈했을 당시, 김정남 감독이 크게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둘의 존재감은 컸던 것이다. 이제 이번 아시안컵에서 홀딩과 앵커의 조합을 확실히 보여주며 한국축구의 주축 미드필더로 성장할 차례다. 드디어 기회는 찾아왔고, 이제 플레이로 국민들에게 어필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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