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꿈

윤이상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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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순(vm2243)등록 2007.06.22 14:09






윤 이상, 그분은 내게 미지수의 인물이기도 하지만 관심권 안에 늘 머물러 있었다. 세계적인 음악가라는 타이틀에서도 그렇고 파란만장했던 삶의 진면목을 알고 싶다는 호기심 탓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최근에 나온 윤정모의 “나비의 꿈”은 그 분의 삶과 예술에 대한 모든 곳을 알 수 있게 해준 좋은 기회였다.


그는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암울한 식민지 시대와 현시대를 두루 거친 인물로서, 훌륭한 음악가로서 뿐만이 아니라 타인과 조국을 사랑할 줄 아는 폭넓은 인간성을 가지고 있었다. 외고집스럽고 자기만 아는 괴팍한 예술가가 아니라 약속을 지킬 줄 알고 신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올바른 선비정신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타고난 것이라고들 했다. 그것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기질로 인하여 그는 음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다. 이 세상에 떠돌아 다니는 온갖 음률과 음계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이해하는 능력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917년 남쪽 바닷가 통영에서 태어난 그에게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판소리와 세습무가 계승되었던 예술적인 분위기는 그에게 음악에 대한 본능적인 감수성을 제공했다. 열세 살에 바이올린을 배운 것이 본격적인 음악 공부의 첫걸음이 되었고 그것이 경성에 있는 최호영과 일본 작곡가 이케노우치 도무치로에게 사사하는 운명을 걷게 한다.


해방 후 통영여고 교사, 부산사범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고풍의상] [달무리] [그 네] 등이 수록된 가곡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휴전 협정 후 서울에서 활동하면서 중앙 음악계의 일원으로 [서울시 문화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그러나 짧은 공부에 대한 자기 한계에 부닺히자 유럽 유학을 단행한다. 그러다가 독일 서베를린 대학의 보리스 블라허 교수는 그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주게 한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그 곳에서의 본격적인 음악수업으로 다름슈타트에서 초연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이 이외로 큰 호응을 얻게 되고 [현악 4중주]가 세계 음악제에서 입선을 거듭함으로써 그는 계속 독일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뒤이어 [낙 양] [ 오 연꽃속의 진주여] 라는 곡들로 국제적인 명성에 다가갈 무렵 큰 사건 하나가 불거진다. 바로 동백림 사건이었다. 친북 인사였던 그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어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서독 정부와 각종 인권단체 및 언론들의 구명 운동으로 2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된다.


그러나 그가 받은 수모와 멸시는 그의 영혼과 가정에 지울 수 없는 족쇄를 채운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무 악] [신 라] [거 리] [자유에의 천사와 에필로그] 등 150여곡의 작곡을 해낸 거장이 된다. 킬 문화상, 독일 정부로부터의 대공로 훈장, 괘테메달 등의 수상이 이루어지고 그 명성은 세계적이 된다.


아마도 유럽의 음악계가 12음의 작곡에 식상해 있을 때 그는 동양적인 음향과 음색을 서양 음악에다가 접목시켜 독창적인 개성과 변화를 준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 것이라 추측된다. 그러나 그는 남과 북 양쪽에서 이해되지 못하고 마침내 그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는 그런 쓸쓸하고도 고단한 삶을 살았다.

예술가라고 해서 반공법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그 이념의 벽이 곤두 서 있던 당시로서 북한을 자유롭게 왕래하고 김일성 주석의 총애를 받았던 것을 남한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고, 고향을 그리워하여 조국에 돌아오고 싶었던 그의 심정 또한 이북에서는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한 예술가의 삶에 이토록 뼈아픈 고통과 슬픔이 흘러가고 있고, 그 슬픔은 또한 아주 맑고 깨끗한 것이어서 내내 우리들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


남과 다르다는 것도, 독특한 것도, 뛰어난 것도 그가 가진 인간적인 본성과 본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한 그런 밑바탕을 책 전편에 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조명한 작품이기에 여느 다른 창작물이 가진 깊이와 문학성을 제대로 나타낼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를 작가 윤정모는 아주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 사람 자체에 근접했음은 이 책이 보여주는 놀라움이다.

작고도 험난한 역사를 가지고 이만큼이라도 자유롭게 숨쉬고 있는 조국. 그 조국이 낳은 음악가 윤이상은 그렇게 쓸쓸히 외롭게 먼 이국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안타까운 인생을 마감한 것이다.


연주가와 성악가는 많아도 작곡가로서의 세계적인 성공은 참으로 귀한 우리나라 풍토에서 이러한 예술가가 등장했고 그것이 또한 세계적인 큰 발자욱이었음을 자랑스럽게 기억하면서 [나비의 꿈]을 꾸던 아름다운 사람 윤이상은 내게 또 다른 세계를 열어준 사람으로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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