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투쟁도 불온한 댄스홀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모호한 말의 향연

'항일 투쟁과 불온한 댄스홀의 모호한 만남'이라는 리뷰기사를 읽고

검토 완료

이성홍(cdstone)등록 2007.07.05 11:11
전체기사를 둘러보다가 제목에 이끌려 이 기사를 보게 되었다. 기사는 <경성스캔달>이라는 드라마의 리뷰로 제법 분량도 있고 묵직한 용어들을 써가며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듯 신선해 보였다.
하지만 글쓴이의 주장은 뒤로 가면서 방향을 잃고 난삽하고 모호한 개념과 용어를 늘어놓는 데 급급한 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되어 있다. 그런데다 네티즌들의 추천도 받고 있는터라 그냥 보고 넘기기 어려워 약간의 비판의 글을 붙여본다. 먼저 밝혀둘 것은 글쓴이나 드라마에 대한 악의는 전혀 없다.

일제 강점기를 퓨전스타일로 만들어 ‘한낱 로맨스 따위의 스캔들로 그 시기에 대한 외경(웬 외경?)과 금기를 뒤집는’ 드라마라고 하면 되지 않나. 그리하여 '약한 고리이기도 한 식민지 시대에 대한 ‘오랜 콤플렉스와 부채감을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경쾌하고 발랄하며 유쾌한 전도(뒤집음)의 드라마’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오늘날 복고적 욕망과 맞물려 한 편의 짜임새있는 즐길 거리로 여기면 될 일이다.
이는 어쩌면 글쓴이의 말대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망각과 숙고의 반복적 진통이 만들어낸 그만큼의 시간적 거리와 사회의 성숙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겠다.

또한 글쓴이는 4명의 남녀 주인공이 ‘각자의 스타일(또는 가치관)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뭔가 불온해 보이는 공모의 기운으로 전도의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한다. 이는 ‘독립운동을 하든 룸펜부르조아든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것에 대한 욕망 그 자체이자 금지된 것에 대한 위반의 쾌락이며 이들 사이에 은밀하게 통하는 삐딱하고 불온한 모종의 기류’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도 재미있는 시각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다.
글쓴이는 ‘이러한 극단적으로 갈리는 두 경향의 은밀한 내통의 기류가 강렬하게 맞부딪치면 어떻게 되나.’하고 묻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러니까 전혀 이질적인 두 경향이 한데 어울려 극적 재미를 더한다는 말이겠는데
앞에서 말한 ‘ 금지된 것에 대한 위반의 쾌락’이라는 시각에서 공모적 성격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이들이 강렬하게 맞부딪칠 수 있는 근거나 접점을 어디서 어떻게 찾을 것인가

물론 퓨전 극화니까 현실적 리얼리티를 문제삼지 않을 수도 있고 한 편 글쓴이는
‘탄압의 현실은 근대적 욕망과 반제국(자본)주의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는 장치로서
기능‘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결속을 가능케 하는 전제조건으로서 기능‘한다 라며 얼버무리고 있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말뜻을 제대로 짐작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까 식민지적 조건 내에서의 문화적 향유와 이를 거부하는 해방투쟁 사이의 갈등이란 뜻인가. 그리고 이의 궁극적 결속이란 무엇을 말함인가. 잡탕으로 어울린 사회의 복잡함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조화로운 문화 독립국을 선망하는 것인가)

어찌됐든 식민지 현실에서도 사랑의 로망은 계속된다, 그럴 것이다. 그런데 혹시 스타일(가치관)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의 관계설정 자체가 단지 식민지라는 시대적 배경을 빌려온 낯설고 색다른 사랑놀음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설정 자체도 경성 최고의 모던걸이자 화류계의 여성이 비밀 결사조직의 일원이라든지 (무슨 마타하리나 김수임같은 임무를 띠고 있는 것인가, 그냥 해방투쟁하기도 바쁜 세월 아닌가), 바람둥이 룸펜부르조아의 형이 항일투쟁에 가담한다든지, 형의 동지였다가 변절하여
형을 죽게 만든 이가 죽마고우로 옆에 버젓이 존재한다는 상황설정 자체가 갈등장치로서 너무 작위적이고 우습지 아니한가.

또한 글쓴이는 이미 혁명과 투쟁이라는 식민지적 상황을 딴스홀로 전도시킨 퓨전적 설정을 전제로 하면서 그리고 거기서 새롭고 낯선 어떤 그림(흥미나 재미)을 얻고자 한 것 아닌가. 그럼에도 글쓴이는 식민지적 상황에서 다시 사랑과 혁명이 서로를 엮어주는 전통적 서사를 들먹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좀 색다른 혁명과 투쟁의 상황설정을 넣고 싶었던 것인가
그리고 서로를 지탱해주는 공동운명으로 엮였다는 건 무슨 말인가
앞에서 설정한 갈등장치에서 재미로 걸어본 사랑놀음이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깨닫고
해방투쟁으로 나아가게 하는 필연적 계기였다는 것인가

드라마의 매력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해방투쟁과정에서 위장된 사랑이나 사랑을 이용하여 투쟁을 고양시켜야 나가는 설정이(투쟁의 어떤 상황에서 가능한지 알 수 없지만)
특별히 색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혁명과정 중에서 망나니 노릇을 하다가 진정한 사랑에 눈뜨고 전선에 복무하는 스토리는 아주 상투적인 레파토리 아닌가
그리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감성(연애)과 이성(혁명)의 갈등이 새롭게 합일해간다든지 비극적 최후를 맞게 한다든지 하는 것이라면 대개의 스토리와 다를 바가 뭐 있겠는가.

그럼에도 굳이 '거짓과 진실의 숨바꼭질'이라거나 '위장전술 ,가면놀이' 등 의 용어를 써가며 또한 거기에 무슨 깊은 의미가 있는 듯 '핵심 키워드' 운운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신비화 전술인가, 지은이는 이를 ‘사랑과 투쟁을 촘촘히 뒤섞어놓는 전략과 구성의 탁월함’이라고 극찬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스토리가 기발하고 매끄럽다는 뜻인가

계속 중언부언 위장과 가면놀이를 치켜세우면서 유쾌한 전도와 역전을 들먹이는데 이는 일반적인 드라마의 배치나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이미 처음 말했던 식민지 상황에 대한 전복적 설정(딴스홀의 경쾌하고 발랄하며 유쾌한 설정) 자체로서 유쾌한 전도와 역전이 설명돼고 있지 않은가, 또한 코믹 요소들이야 드라마에 양념처럼 들어가는 것일터이고 이것이 뒤집기 전략을 뒷받침해준다는 건 또 무슨 의미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식민지적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한 편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퓨전드라마라고 하면 족할 것을 장황하고 거창하게 끌고 갔다는 느낌이다.( 때때로 동어반복적이거나 개념이나 용어의 부정확성이나 난삽함, 모호함이 많이 거슬린다) 그냥 식민지 상황을 지금까지의 전통적 서사와 달리 바라보는 전복적 시각에 후한 점수를 주면 되지 않겠는가. (궁극적으로 얼마나 다른지, 얼마나 전복적인지 의문이 가지마는)

끝으로 ‘식민지의 약동하는 근대적 욕망위에는 우리 시대의 포스트모던적 욕망이 덧쒸여 있다.’고 하는데 포스트모던적이라는게 탈근대의 욕망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근대를 지향하는 욕망 속에 들어있다는 건 무슨 말인가. 혹 앞에서 말한 복고적 욕망을 일컬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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