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를 다 덜어냈어도 장애인이 아니라구요?

장애등급 판정을 받을 수 없는 암 환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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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열(9room)등록 2007.07.12 16:20
장애란 무엇일까.

장애 [障礙] :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

나의 아버지는 3년 전 위를 전부 절제하셨다. 아버지는 그런 당신을 가리켜 ‘속 없는 사람’이라며 농담을 하시지만 그 누구보다 속이 쓰린 것은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위를 모두 덜어내신 아버지는 요구르트 한 개 분량의 식사를 수십 번에 걸쳐 나눠 드셔야만 했고, 그 나마도 위가 없어 소화를 못 시키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 이루 말할 수도 없이 많았다.

운영하시던 작은 식당은 당연히 영업이 중단 되었고, 일상 생활은 커녕 편히 누워 주무실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장애자가 아니다. 식도와 소장을 이어붙인 탓에 맞지 않는 음식을 드시거나 조금이라도 많이 드시면 장 폐쇄가 일어날 수 있는 신체를 가지고 있지만 장애등급을 받을 수가 없었다.

수술이 끝난 뒤 집에 돌아오셔서 시작 된 항암치료는 일상생활은 커녕 지속적인 생존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버지는 몸 속에 돌연병이 종양이 발생하여 음식을 소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는 주요 장기 ‘위’를 전부 도려내셨고, 항암제를 투여하느라 일상적인 삶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별표 1 “장애인의 장애등급표”에 따르면 장애의 종류는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장애로 나뉘게 되며, 신체적 장애는 외부신체기관,내부기관의 장애, 정신적 장애는 정신지체/정신장애/발달장애로 나뉘게 된다. 암 환자들의 경우 정신적 장애에서는 제외 된다 치고 내부기관 장애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면, 세목별로 다시 신장장애, 심장장애, 호흡기장애, 간장애, 안면장애, 장루 및 요루장애, 간질장애로 나눌 수 있다. 그렇다면 암으로 위를 절제해 낸 아버지는 장애로 포함 될 항목이 없었다. 아버지가 장애인이 아니라니 기뻐해야 할 노릇이지만, 매일 밤새 뒤척이시는 아버지(위를 전절제한 환자들은 상당수가 이러한 불편을 호수한다)를 보고 있노라면 뭐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만약 아버지가 위암 환자가 아닌 간암 환자일 경우에는 별 탈없이 간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죽지 말고 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만약, 나의 아버지가 장애등급에 포함되어있는 간장애로 판정 받을 수 있는 간암 환자라면 장애등급 판정을 받을 수 있을까? 한번 가정을 해보자. 아버지가 위암이 아닌 간암에 걸리셨다면. 그래서 수술을 하셨다면. 급한 마음에 나는 국민연금 홈페이지를 찾아가 간암 환자인데 장애등급을 받고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글을 남겼다. 그러자 너무나도 친절히 찾아온 답변.

“암으로 장애연금을 지급 받기 위해서는, 암의 발생이 국민연금 가입 중이어야 하고 처음진료를 받은 날로부터 2년경과 후에 장애등급에 해당되면 2년 경과 일을 기준으로 장애연금을 지급 받을 수 있으며, 2년 경과 일에 장애등급에 해당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60세가 되기 전에 장애연금의 지급대상이 되는 때 그 청구 일을 기준으로 장애등급을 심사하여 장애 등급 (1급∼4급)이 인정되면 장애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아버지가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암에 걸렸다면 여지없이 탈락되며, 처음 진료를 받고 2년 안에 사망하게 되면 장애등급도 받지 못하고, 장애연금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2년 안에 사망하지 않으셨는데 장애등급에 해당하지 못하시더라도 60세(그러니까 당시부터 8년까지 더 생존을 하신 상태)가 되야 청구 일을 기준으로 장애등급을 심사하여 장애 등급이 인정 되어야만 장애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 뿐이다. 지금 당장 아버지가 간암이라 간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아 아무리 냉정한 눈으로 봐도 일상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지금까지 꾸준히 납세를 한 대가가 이렇게 가혹한 것이라니. 다행스럽게도 국민연금을 가입해 있었으나 암 환자에게 2년 생존을 해야만 장애등급을 줄 ‘수도 있’다 라니. 장애등급을 받고, 장애연금을 받고 싶으면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으라는 스파르타 식 교육을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암 환자들의 2년 생존률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높아 거의 대부분이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암환자 생존률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있자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몇 개인지 알 수가 없다. 어디에서는 국내 암환자 생존률이 다른 곳에서 조사한 생존률의 반이 안된다. 또 다른 곳에서 조사한 생존률은 거의 대부분의 암 환자들이 생존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고,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이 사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병원이나 조사 기관에서 암 환자 생존률의 기준을 저마다 다르게 설정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암에 걸린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이는 명백히 암으로 인한 사망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조사 기관에서는 이 역시 암으로 인한 사망으로 친다. 반면에 암 환자가 병원에서 손을 쓸 방법이 없어 집으로 돌아가 소리 소문 없이 사망했다. 이 경우 암 환자는 암으로 인한 사망이 아닌 것으로 측정된다. 이러한 측정 방법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른 기사에서 면밀히 살펴볼 계획이다.

우리 나라에서 암을 전문으로 다루는 국가 기관에서 1995~2001년까지 성별, 암종별로 5년 생존률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암 환자가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은 남성이 35.6%, 여자가 55.5%로 나타나 있다. 암종별로는 췌장암 7.2%, 폐암 11.9%, 간암 12.75, 식도암 14.5%순으로 생존률이 낮았다. 2년 생존률은 어떨가. 발견이 늦게되는 진행성 간세포암의 경우 평균 생존기간이 3~6개월 정도이며, 크기가 3cm이하로 작은 간세포암 환자의 경우, 1년 생존률은 90%로 비교적 양호하며, 2년과 3년 생존률은 각각 55%와 13%로 급격히 낮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통계에 따르자면 간암에 걸린 나의 아버지가 2년 동안 생존하실 수 있는 확률은 55%이다. 그런 상황에서야 비로서 장애등급 신청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성공적으로 장애등급을 받으셨다고 할 경우 1년 뒤에는 1/4의 확률로 생존해 계실 것이라는 얘기다. 이래서야 장애등급을 받고 그 실질적인 혜택을 누리기까지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정말 죽지 말고 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냥 죽으라는 것도 아니고,

장애연금을 받기 위한 조건은 신체에 장애를 발생시키는 사고나 질병이 국민연금 가입 중에 발생했어야 하며, 질병으로 인한 장애상태가 치료 후에도 남아있어야 하고, 장애연금 지급사유 발생 시점에 연금보험료를 1/3 이상 체납하고 있지 않아야 한다. 국민연금을 성실납부한 모든 암 환자들은 질병으로 인해 일상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가 치료 후에도 남아있다. 다른 많은 질병과 달리 완치라는 개념이 없으며(5년이 지나면 형식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는다), 평생을 재발에 대한 공포 속에서 지내야 한다. 암 환자들이 겪는 재발의 공포는 상상을 뛰어넘는 것으로, 지금도 수많은 암 환자들이 수면 유도제를 처방 받아야만 잠에 들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왜 암 환자들은 장애등급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일까. 재발을 하게 되면 멀쩡해 보이던 사람도 한 두 달 사이에 상황이 악화되어 사망에 이르고 만다. 결국, 그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낼 시간적 여유도 없는 것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힘들며, 얼마나 괴롭게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줄 힘조차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안된다. 우리 나라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고,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무역 대국이 되었지만 사망 원인 1위가 된 무서운 질병에 대해 이렇게 무관심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진국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등급을 받아야 할 것은 우리 사회 모두의 무관심도 포함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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