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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여름, 베트남의 어느 가난한 처녀는 한국으로 시집가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혼인중개업소를 알아봤다. 베트남에서는 매매혼이 불법임을 알았지만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부모형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 물론 두려움도 있었다. ‘한국 남자들은 여자를 때린다, 이혼해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무서웠지만,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그때 처녀의 눈에 번쩍 띄는 광고가 있었으니, 대한민국 정부에서 신부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라에서 보장하는 중매업인 만큼 착하고 성실한 남편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다.
2007년 봄, 전남 해남으로 시집 온 A(23)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조씨와 이혼소송을 진행중이다. 그는 현재 임신한 상태다. A씨는 “처음부터 남편의 정신이 이상했다. 화를 자주 내고 약도 많이 먹었다”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역시 정신지체인 한국 남성과 결혼한 필리핀 신부 B(26)씨는 구타까지 일삼는 남편을 피해 도망치듯 고국으로 돌아갔다. B씨에게 한국에서의 생활은 상처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A씨와 B씨의 결혼을 주선하고 성사시킨 곳은 다름 아닌 시청과 군청이다. 최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예산까지 편성해서 추진하고 있는 ‘농어촌 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이 또 다른 A씨와 B씨를 만들고 있다.
지난 6월 7일 국가인권위원회 11층 배움터에서 ‘농어민 국제결혼 비용지원 사업,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국제결혼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난해부터 경쟁적으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지원사업’ 조례를 제정했다. 이번 토론회는 지자체의 조례 집행과정에서 결혼대행업체의 부조리한 횡포와 인신매매성 거래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염 대표는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지원 조례’는 한국 여성이 기피하는 자리를 아시아 여성으로 대치하려는 인종 차별적인 인권침해”라며 국가적인 윤리의식의 부재를 비판했다. 한 대표는 또한 “외국인 신부를 맞이하는 가정이 대부분 빈곤층이라서 또 다른 사회적 문제점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은 지자체가 주먹구구식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자기들의 치적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정책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례로 관련 예산을 농수산개발비나 사회개발비에 포함시킨 지자체가 상당수였다. 또한 농어민 국제결혼 비용을 지원하는 지자체의 약 93%가 이주민 가정의 생활안정보다 결혼비용 자체에 예산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기준으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에 가장 많은 예산을 투여한 지자체는 전남 해남이다. 해남군의회 김종분 의원은 좀 더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해남은 특정 업체에 결혼대행업을 위탁했는데, 이 업체가 신랑측으로부터 별도의 사례비를 받아 문제가 발생했다 게 김의원의 전언이다. 김의원에 따르면 신랑들은 대행업체가 신부를 보내주지 않을까봐 추가로 돈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농어촌 총각들은 국적에 관계없이 여자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업체가 요구하는 대로 다 해주는 거죠. 또 경제적 능력이 없다 보니 베트남 신부와 결혼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언론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꺼려합니다. 그래서 피해사례가 제대로 알려고 있지 않는 거죠.”
토론자로 나선 김현미 교수(연세대 사회학과)는 지난 15년간 국제결혼과 관련한 정부의 모순적 태도를 비판했다. 정부가 표면상으로 지자체 중심의 행정주도형 결혼을 장려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국제결혼을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주변부 남성과 여성의 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제결혼을 중심 의제로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덕 중개업자만 양산했다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총체적인 해결 방안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다. 한국염 대표는 “정말로 지자체가 농촌가정의 행복을 원한다면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지원 조례 같은 허접한 것을 만들기보다 2006년 행자부가 마련한 ‘거주 외국인 지원 표준 조례안’이나 국회에 계류 중인 ‘다문화가족지원법’과 ‘이주민가족지원법’등을 지원하는 편이 낫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종분 의원은 이주민 자녀에 대한 교육지원을 늘리고 100% 무상 언어학습이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주민 여성이 언어를 가장 어려워하는 점을 고려해 집으로 직접 찾아가는 한국어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은 달라도 마음은 같았다. 한국으로 시집온 이주민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대한민국 여성이다. 우리의 인권이 소중하듯 그들의 인권도 소중하다. 가난한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이역만리 낯선 땅에 온 그들이 빠르게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절실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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