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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우리에게 축구란 무엇인가.
한 광고에서 들려주었던 차범근감독의 말은, 그가 이 광고를 위해 얼마 만크의 돈을 받았으며, 그 돈을 어디에 썼고 무슨 계기로 광고를 찍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말한 몇 마디 광고 멘트에,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말들이 그를 아는 사람들에겐 의미, 그 자체의 의미가 된다.
보는 사람도 애가 타고 숨막히게 아슬아슬한, 07년 아시안컵 3,4위전은 그렇게 끝났고, 우리에게 또 하나의 축구 시합은 그렇게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시청하는 사람들도 지치게 만든, 국제 축구 경기의 3회 연속 120분 연장 승부차기 시합의 기록도 세우게 되었다.
그리고 삶이 그러하듯, 축구에 있어서 완전한 해피엔딩도 없고 완전한 비극도 없었다.
한국의 축구 레전드격인 홍명보 코치는 퇴장 명령에도 불구하고 연속해서 120분간 3경기를 치른 어린 대표선수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다시 관중석으로 돌아갔고, 연장전 끝에 이운재의 선방과 마지막까지 집중한 승부차기로 한국은 그렇게 승부를 겨루었다.
경기가 끝나고 승리에 도취된 선수들 틈에서, 베어백 감독은 감독직 자진 사임의 뜻을 밝혔다. 충분한 동기 부여 기간과 재충전을 위해, 부친의 병간호를 위해서라는등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축구협회는 감독 선임에 있어 또 한번의 혼란과 미성숙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다수의 축구팬과 국민들은 핌 베어백 감독을 '감독'이 아닌 충실한'코치'로서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 같다. 한일월드컵 4강때의 히딩크 감독에 이어 독일월드컵의 아드보카트 감독에 이르기까지, 베어백 감독, 아니 당시의 코치는 훌륭한 보좌관으로서 기억되고 있다.
작년 베이백 감독의 감독 선임에 있어서 축구팬 여론에게는 코치로서는 적합하되 감독으로서는 부적합한 듯한 카리스마와 선수장악을 불안 요인으로 꼽았었다. 실제로 최근의 언론의 뭇매에도 조용히 무대응을 원칙으로 하던 베어백 감독도, 아마 그의 향후 일정이 한국팀에 미련이 없는 시점에 있어서 맞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으로 보아 현란한 언론 플레이의 히딩크와 아드보카트에 밀리는 것이 사실이었다.
베어백 감독의 오랜 한국 대표팀의 코치 생활은 무엇보다 한국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올려놓기 충분한 조건이 되었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한국 축구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언론에 불평을 늘어놓았던 본프레레 전 감독이나, 언론이 때리는 대로 맞았던 큐엘료 전 대표팀 감독처럼, 어쩌면 또 한명의 외국인 감독 피해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축구팬들은 베어백의 전술이 프랑스의 도미니크 감독의 전술과 닮았다고 분석한다. 전문적인 글은 아니지만, 이러한 글이 상당수의 축구팬과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 선수 위치와 역활, 전술과 전략에서 유사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도미니크 감독 또한 한국의 언론 못지 않게 수많은 욕을 먹었고, '재미없는 축구'로 일관한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었다. 물론 그가 추구하던 시스템이 선수들에게 이해되고 전술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한 단순하면서도 파괴적인 역습'은 힘을 발휘하게 되었고, 아무리 막강한 공격력의 상대팀이라도 신중에 신중을 가한 경기를 펼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몰고갔던 것이다.
물론 한국의 축구 역사와 선수 기량이 프랑스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다는 점에서, 베어백 감독이 지나치게 '이상적인 축구'를 구사하려고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해외파의 키플레이어들이 모조리 부상으로 낙마했다. 홍명보 수비진 이후 부진한 수비력을 끌어올리는데 시간에 쫓기 베어백은 공격 주전의 줄부상은 공격력에 대한 해답을 내놓기 어려운 시점이었다. 주전 선수 한두명이 빠진다고 해서 그 팀이 흔들린다면 그 나라의 축구 후진성을 드러내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브라질과 같은 축구'광'국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리고 예정된 대표팀에서 낙마한 주전 선수들은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에서, 변명아닌 변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지독한 악장(惡將)이 아닌 이상, 전쟁이든 조직이든 이끄는 자가 바뀌면 체계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 한국 축구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정신력과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 시스템에 있어서 심리적 주축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인 감독 평균 수명이 2년을 넘지 못하는(물론 외국의 경우에도 이런 것이 부지기수이다. 언론의 현란한 악평과 비판도 마찬가지)이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려면, 아마 그의 감독으로서 능숙한 전략과 전술보다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어야 견디어 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의, 바로 앞의 결과와 사건을 중요시 한다. 천리안의 능력도 없고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이상 불안한 현재에 대해 집중하고 해결하려 한다. 한국 축구는 언제나 과도기였다. 차범근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나왔을 때에도, 미국월드컵에서의 투혼을 보여주었을 때에도,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5:0 대참패와 극한의 벨기에와의 무승부에서도, 한일월드컵의 환희와 이후 수많은 패배와 승리 속에서도 한국에서의 축구는 삶처럼, 인간처럼 달고 쓴맛을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미리 맛볼 수 없는, 승패를 쉽게 점칠 수 없는 축구란 틀안에서 어떤 선수가 나올 것이며 어떤 감독이 나올지는 쉽게 알 수 없다. 스위스전 패배 때의 '축구는 죽었다'가 아닌, 인생처럼 '축구는 알 수없다.'가 근접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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