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 이것만은 짚고 넘어가야지요

'광주에 대한 예의', 왜 보통의 광주사람들이 광주말을 쓰지 않나요

검토 완료

이성홍(cdstone)등록 2007.08.11 11:17
잘 아다시피 5·18 광주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3백만 이상의 관객이 보았구요, ‘꿩잡는 게 매’라면
제 구실 톡톡히 한 상업영화입니다.
있는 대로 말하자면 그 때 광주 이야기를 누가 제 돈내고 볼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흔히 쉽게 말하는 ‘대중문화’의 힘, 참 대단하지요.
그러니 이 영화에 콩이야 팥이야 입을 대거나, 토를 다는 건
뜻있는 이들이 할 짓은 아니지요. (이 영화 덕분에 합천 ‘일해공원’ 명칭
반대운동이 활성화되고 있지요)

그럼에도 굳이 어깃장을 놓고 싶은 것은 먹물 언저리 심보이기도
하겠지만 광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랄까 뭐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 때문인데요.
어떤 이는 이 영화가 나오기까지 27년을 기다렸다고 감격스러워 하기도
하지만 극적 구성이나 리얼리티, 감동으로 치자면 10년 전 TV로 방영된
<모래시계> 속의 광주이야기가 윗 줄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걸 가리자는 건 아니고 그 당시 드라마에서는 크게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아주 어색하고 불편하게 다가온 것이 바로 주인공들의
말투입니다.

감독이나 제작진이 강조했듯이 이 번 영화의 주된 컨셉이나 캐릭터가 거창한
이념이나 논리를 들이대는 먹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 나랏일이나 정국과는
무관하게 살아가던 보통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그 때 광주를 되새겨보자는 것이고
이는 제대로 적중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 보통의 광주사람들이 왜 광주말을 쓰지 않는 걸까요. 오래 전 기억이지만
실제로 해방구 광주에서 짚차를 타고 가두 선전방송을 하던 아줌마(극중 간호사
이요원의 역할,이 때문에 뒤에 옥살이를 했다고 하지요)의 애끓는 목소리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당시의 절박함과 안타까움을 광주말이 아닌 다른 어떤 말로 되살릴 수
있을까요.
아니 당시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광주사람들이 극중의 일상이나 절박한 심정을
또박또박한 서울말로 전해듣는 기분은 어떠할까요. 더빙한 외국배우의 입술을 보는
그런 어색함이나 불편함같은 것 아니었을까요 또 거기서 오는 현실감의 괴리같은 건
어떻게 하지요.

물론 그럴 수 있지요. 영화니까, 또 흥행을 고려해 볼 때 사투리가 가지는 핸디캡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게고 자칫 설익은 사투리가 오히려 외래어처럼 리얼리티를
더 망칠 수도 있을테고. (이런 상식을 깨고 영화 ‘친구’처럼 사투리를 써서 성공한
사례도 있고 영화 ‘황산벌’은 아예 전라도말과 경상도말을 기본 컨셉으로 삼기도
하였지만)
어쨌든 그렇다면 극중에는 광주말이 안나와야 하는데요, 짐작하다시피 광주말을 쓰는
이들이 나옵니다. 빛나는 조연이라 일컬어지는 택시기사와 건달로 나오는 인물,
그러니까 오락영화의 공식대로 희화화된 인물과 상황을 설정하는 도구로 광주말이
쓰이고 있는데요. (실제로 전남도청을 사수하고자 끝까지 남아 공수부대의 총탄에
스러져갔던 대부분의 인물들이 이른바 비주류의 주변 계층이나 고등학생이었다고
하지요)

여전히 상업영화의 룰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연출자나 제작자에게 옆 눈을 뜨기보다
적어도 그 날 광주의 아픔과 기억을 되살리는 마당에서 광주에 대한 예의와 아울러
그 오랜 아픔과 기다림 속에 극으로나마 이를 다시 지켜본 광주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생각해 볼 때 꼭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아닌가 하는 거지요.

엔딩부분에 억지스럽긴 해도 공수부대의 서취라이트와 총구 앞에서 폭도라 불리우는
광주의 시민군 김상경이 장렬하게 죽음을 맞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온 몸으로
‘폭도가 아님’을 외치던 말,
“우덜은 폭도가 아니여, 아니란 말여.” 이게 맞지 않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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