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노빠가 진보언론의 본분이라 했나?

기자실 증설과 기자 편의 제공 확대가 진보적 가치는 아니다.

검토 완료

김명석(풀벌레)등록 2007.09.04 17:58

한 ‘진보’ 기자의 주장 ①: 노무현 조지기 담합을 깨뜨리기 위해 기사실을 통폐합한다?

 

오마이뉴스 김태경 기자의 “‘노빠’가 진보언론의 본분인가”라는 기사는 진보언론의 본분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이 글의 부제는 “노대통령과 참여정부 인사들의 이상한 역사관”이다. “역사관”과 “진보언론관”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기사의 제목은 마치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인사들이 진보언론의 본분이 노빠짓이라고 주장하기나 한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김태경 기자는 기사실 통폐합에 대한 정부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보수 언론은 물론이고 진보 언론도 현 정부를 공격해대니 이게 대통령 눈에는 보혁 가릴 것 없이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노무현 조지기 담합’을 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지.” 그리고 김 기자는 이러한 요약을 다시 생각해 보니 “얼추 맞았던 것 같다”고 자부한다. 김 기자의 요약은 나름의 논증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1. 보수 언론은 물론이고 진보 언론도 현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2. 대통령은 이러한 공격을 기자들이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노무현 조지기 담합’을 한 것이라 보고 있다.
3. 따라서 정부는 노무현 조지기 담합을 깨뜨리기 위해 기자실을 통폐합하고 있다.

 

1은 김태경 기자와 노무현 대통령이 의견 일치를 보고 있는 지점이다. 2는 1에 대한 대통령의 원인 분석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2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김 기자의 전제를 모두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이 결론 3을 수용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1과 2로부터 3을 끄집어내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을 지니지도 못한다.

 

김 기자의 논증은 논리적 설득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현상황에 대한 원인 분석으로서도 함량미달이다. 대통령은 기사 담합 구조를 깨뜨리기 위해 기자실(기사송고실)을 통폐합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노무현 조지기 담합을 깨뜨리기 위해 통폐합을 추진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참여정부의 어떤 인사도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이 노무현 조지기 담합을 종종 거론하는 것은 그것이 담합 일반의 주요한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진보’ 기자의 주장 ②: 대한민국 언론시장에 의견의 카르텔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언론시장에서 오피니언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의 인식에 대체로 동의한다. 반면에 김태경 기자는 이러한 카르텔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판 내용은 보수와 진보가 다르잖아. 그러나 그들 눈에는 이게 안 보여. 자신들은 정작 이라크 파병부터 시작해 한미 FTA까지 스스로 조중동과 담합해놓고는 말이야.”

 

김 기자의 말처럼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의견은 대체로 달랐다. 그러나 이러한 이견들이 다른 영역에서 카르텔이 없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진보와 보수 구별 없이 동일한 관점에서 동일한 이유로 비판한 사례들이 넘치고도 넘치기 때문이다.

 

금방 생각나는 사례로는 대통령의 어투, 연정, 개헌, 복지정책, 비전 2030, 국방개혁, 공무원 증원, 양극화 문제, 언론 정책 등이 있다. “부적절한 언행”, “국민이 반대하니 접어라”, “재정계획 없는 장밋빛 그림”, “민생부터 챙겨라”, “국민의 알 권리 봉쇄”, “정부의 말을 받아쓰기 하라는 것” 등등의 표현은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앵무새처럼 출몰하는 헤드라인들이었다.

 

김태경 기자는 한국 언론 시장에서 시각의 담합, 프레임의 카르텔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를 명시적으로 주장하기 바란다. 그리고 대통령의 잘못된 현실 인식을 비판하기 바란다. 그러나 만일 실제로 한국 언론 시장에서 기사 담합이 만연해 있다면, 그것이 바람직한 현상인지 아닌지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표명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것이 공정한 토론의 조건이다.

 

대통령은 그 현상이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의견들이 공정하게 경쟁하지 못하는 왜곡된 시장에서는 불량의견들이 여론 시장에 판을 치고 그 결과 대한민국의 공적 담론이 전반적으로 혼탁해지기 때문이다. 이 조건에서 국민들뿐만 아니라 정치인, 지식인, 관료들까지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김 기자 역시 기사의 담합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개선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그런 다음 그 대안이 참여정부의 소위 “취재선진화 방안”보다 더 좋은 안이라는 것을 주장하라. 이것이 옳은 순서이고 생산적인 토론이다. 지금처럼 “노대통령과 참여정부 인사들”의 언론관과 역사관을 완전히 잘못 해석한 채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은 지식인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진보’ 기자의 주장 ③: 진보언론의 본분은 진보적 가치를 무작정 주장하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진보언론의 본분은 무엇일까? 노무현 대통령은 그것이 자기를 지지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그것을 주장한 노빠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얼마 전 2007 EBS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에서 상영한 “마이클 무어 뒤집어보기”는 저널리즘의 진보성이 어디에 기초해 있어야 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진보언론은 진보적 가치를 고수하고 그것을 여론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 확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역할을 수행할 때 수단이 매우 중요하다. 사실의 왜곡, 맥락의 제거, 악의적 편집과 조작 등을 동원해서라도 진보적 가치를 확산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삐라’나 ‘찌라시’가 하는 일들이다. 마이클 무어는 미국에서 진보적 가치를 전파하는 데 나름대로 큰 기여를 했다. 불행히도 그는 왜곡했고 토론을 봉쇄했다. 그는 저널리즘 속에 내재된 진보성 자체를 훼손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애써 표명한 문제의식은 진보언론까지도 자기 이익에 매몰되어 저널리즘의 정신을 내팽겨 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합의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첫째로 정확한 사실, 사실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것, 반드시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할 것, 두 번째로 공정하게 토론의 기회를 줄 것. 토론해야 합니다”(한국PD연합회 창립 20주년 기념식 축사)

 

“우선 사실, 진실한 사실에 충실한 방법으로 문제를 풀자, 그리고 이 문제를 둘러싼 사실 보도에 있어서 공정한 기회를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언론이 사유 재산이 아니고 언론이 사회적 공기라고 한다면 공론 형성의, 여론 형성의 공정한 장이라고 한다면, 여기에는 공정한 기회를 줄 의무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제44회 방송의 날 기념식 축사).

 

과연 진보언론이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판단, 다른 판단을 하는 이들과 공정한 토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가? 언론이 대북송금특검 수용, 주한미군기지 이전, 전략적 유연성, 전시작전권 환수, 남북정상회담, 황우석 박사 사태, 한미 FTA, 아파트 값 폭등, 비정규직 증가, 소득격차 확대 등 개별적 사안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그것은 그들의 이념적 자유이다.

 

그렇지만 보수는 사실을 조작하고 맥락을 무시하고 토론을 봉쇄하는 것은 나쁘지만 진보는 그렇게 해도 된다고 주장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언론에게 자기를 지지해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진보적 주장을 하려면 사실에 근거하고, 맥락을 보존하고, 타당한 반론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진보언론이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을 비판하려면 먼저 자신들의 진보적 가치를 분명히 하고, 그 가치를 위반하는 점에 대해서 사실과 맥락과 반론들을 감안해서 주장해야 한다.

 

 

‘진보’ 기자의 주장 ④: 기자실 증설, 기자에 대한 편의 제공 확대는 진보적 가치이다?

 

김태경 기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정부가 기자실을 개혁하려고 했다면, 현재와 같은 각 부처 기자실은 그대로 두되 대신 공간을 늘려 신생매체나 인터넷 언론의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기자실 문턱을 낮춰야 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기자실”이다. ‘진보’ 기자로서 그는 기자실 존치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기자실’은 기사송고실을 말하는가? 브리핑 룸을 말하는가? 김 기자는 왜 국민 세금을 들여 공적 공간을 기자들에게 보다 많이 제공해주어야 하는지 스스로 반문한 적이 있는가? 왜 많은 선진국이 기자실을 두지 않는지, 왜 모건스탠리가 일본 정부에게 기자실을 없애라고 요구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기자실 증설, 기자에 대한 편의 제공 확대가 진보적 가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진보언론들은 정부의 이번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에 대해 진보적 가치를 유지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진보언론에 가끔 끼워주는 경향신문 편집국장도 나서서 정부의 정책이 “군사정권 시절보다 질적으로 더 나쁜 언론탄압이다”이라고 외쳐대는 것이 과연 정상인가?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진보언론을 대한민국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들조차도 엄살꾼 편집국장들의 목소리에 동조하기 때문인가? 하도 기가막혀 말문이 막힌 것인가?

2007.09.04 17:4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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