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이들이 임수혁을 위해 모금을 한다고?

기적 같았던 2005년 겨울날의 고마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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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래(golg94)등록 2007.09.11 16:44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망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때로는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기 마련이다. 떠올리는 내내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잊지말고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런 가슴아픈 이름이 있다. 2000년 4월 18일 잠실야구장 2루에서 쓰러진 채 7년째 멈춰버린 시간을 살고있는 '임수혁'.

 

이 글은 그의 소중한 팬들이 함께 만들었던 어느 겨울의 이야기다.

 

'찌질이'들이 임수혁을 위해 모금 한다고?

 

임수혁 선수에게 기적이 찾아오길... ⓒ 롯데 자이언츠

2005년 초겨울, 정확히는 11월 10일, 악플러 들이 난무한다는 비회원제 사이트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 야구갤러리'에 '임수혁 선수와 그 가족들을 위한 성금모금을 하자'는 조금 위험한(?) 글이 올라왔다.

 

위험하다고 표현을 한 것은 디시인사이드는 인터넷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비실명·비회원제를 표방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의 사람들은 서로 게시판 상에 사용하는 닉네임으로만 대화를 주고받는, 상대방의 신원이 철저하게 가려진 곳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누가 흑심을 품고 모금을 한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곳이다. 물론 성금이 걷히지도 않겠지만….

 

하루에도 수십페이지가 넘어가는 활발한 게시판에서 그래도 '임윤빈 선생님 우리는 당신의 아들을 잊지 않았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은 생명력이 길었다.

 

처음에는 '에이... 이게 가능이나 할까'라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그래 우리도 한 번 좋은 일 해보자 다른 사람도 아닌 임수혁의 일인데…'라는 댓글들이 올라오면서 점차 분위기는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었다. 과연 모금자를 믿을 수 있는가. 계좌는 누구 이름으로 올려야 공신력이 있는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측에 연락을 해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금을 하는 데 계좌를 빌려준 다는 것이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다고 임수혁 선수 가족에게 연락을 해서 모금 할 수 있는 계좌를 열어달라고 부탁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가 걷힐 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괜한 상처만 안겨드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결국 개인 계좌가 공지로 올라갔다. 이제 모금 예상액은 더욱 줄어들었다. 개인계좌로 비실명사이트에서 인터넷 상으로 모금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디씨인사이드 야구갤러리… 일부 사람들에게는 찌질이 들의 집합소 쯤 으로 알려져 있는 공간 입니다. 익명게시판에서 무엇을 할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 속에서 (중략) 그러나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수혁이형에게 지고있던 마음속의 빚을 이제 조금이라도 갚고 싶습니다.'

 

공지글에 나온 찌질이('다른 사람과 잘 어울려 놀지 못하는 아이'라는 뜻의 인터넷 신어)라는 표현은 이 모금의 비참한 결과를 미리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성금 모금은 진행이 되었다. 기간은 20여일. 만원이 걷힌다고 하더라도 할 말이 없는 그런 부실하기 짝이 없는 모금이었다. 

 

찌질이들이 모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돈'

 

성금 모금 한 지 6시간 만에 37만원이 모였다. ⓒ 이정래

계좌번호가 올라가고 공지가 뜬 시각은 다음날 오후 4시. 감격스럽게도 공지도 올라가지 않았는데 첫 입금자가 나왔다.

 

그런데 입금액이 좀 이상했다. 공과금 수납도 아닌데 1원 단위까지 표시돼 있었다. 입금 확인 요청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저려왔다.

 

'나이도 어리고 백수라 돈을 보내고 싶어도 많이 보낼 수가 없어서 통장에 남아있는 전재산을 보냅니다'

 

이 성금 모금이 어쩌면 성공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10시, 잠시 은행에 들려 통장을 찍어봤다. 그런데 통장을 읽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통장에 찍힌 입금액이 무려 37만2045원... 손이 떨렸다. 공지가 올라온지 불과 6시간 만에 모인 금액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금액 보다도 더 놀라웠던 것은 통장에 빼곡하게 적힌 수십명의 이름이었다. 그들은 성금을 입금하면서 실명을 쓰지 않고 게시판 사용하는 닉을 사용했다. 익명게시판이라 실명으로 보내면 누가 보냈는지 확인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가 철저하게 가려져있는 곳에서 6시간 만에 그런 금액이 모인 것이다.

 

그리고 공지 올라온 지 6일만에 모금액이 100만원을 넘어섰다. 모두가 놀랐다. 금액이 예상보다 커지자 논란도 생겼다. 일단 '모금자가 먹고 튀는 것 아니냐?'는 본능적인 문제제기에서 부터 '모금자 명단에 입금액을 쓰는 것은 적게 낸 사람들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속깊은 논란까지...

 

그렇게 아무도 믿지못했던 20여일이 흘렀다. 성금 모금 마감시한인 12월 1일 오후 4시 추가 입금을 막기위해 통장을 해지시키고 전액을 환급받았다. 최종 모금액은 2,396,022 원.

 

그날 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돈을 품에 안고 밤새 뒤척거려야 했다. 잠이 오지를 않았다. 다음날 임수혁 선수의 아버님께 연락을 드리고 모금액 전액을 보내드렸다. 인터넷 상에서 모금을 했다는 사실에 아버님도 놀라시는 눈치였다.

 

그렇게 아무도 믿지못했던 성금 모금이 끝이났다. 어떤이에게는 하룻밤 술값도 안되는 금액 일지 모르지만 우리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금액이었다. 그랬다. 이것은 기적이다.

 

임선수 부친 임윤빈 선생께서 보내주신 감사의 편지 ⓒ 이정래

 

죽을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기적의 존재를 확인한 이상 망설일 것이 없었다. 우리에게도 기적이 일어났으니 수혁이형에게도 반드시 기적이 일어날 거라 믿었다. 어느 날 아침 벌떡 일어나 다시 그라운드로 달려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두 번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수혁이형은 아무런 의식도 없이 누워만 있고 가족들은 현실적인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

 

모금을 한 지 2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더 이상 디시인사이드 야구갤러리에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

 

얼마전 그때의 기록들을 찾아봤다. 성금 모금을 마무리 하면서 분명히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작은 기적을 만들어 낸 것처럼 수혁이형의 가정에 기적이 찾아와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21일 동안의 이 감동적인 기억 고마운 기억 죽을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언제 부터인가 그해 겨울을 잊고 지내왔다.

 

너무나 한 참이 지났지만 2005년 11월, 그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이글로 전하고 싶다. 그리고 절대로 잊혀져서는 안되는 이름, 임수혁선수에게 기적이 찾아와 주길 간절하게 소망한다.

2007.09.11 15:5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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