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의 일관성에 대해 묻습니다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편지'

검토 완료

이봉렬(solneum)등록 2007.09.11 18:36
대통령님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언론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일로 마음이 많이 상하셨을 줄 압니다. "믿음을 무겁게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 믿음이 무너졌을 때, 그것이 얼마나 난감한 일인지는 여러분들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에 저 역시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오늘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님께서는 그 건 말고도 여러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대통령님의 여러 말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가 ‘원칙’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님의 원칙과 제가 생각하는 원칙 사이에 작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공개편지를 통해 의견을 여쭙기로 했습니다.

변 전 실장 일로 마음이 안 좋으시겠지만 대통령님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어느 국민의 목소리라 생각하시고 귀담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이명박 후보 고소 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원칙이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 잘못된 정치풍토 하나는 정치가 법 위에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 "선거에 영향이 있다고 범법행위를 용납하라고 하는 것이 무슨 논리인지 저는 알 수가 없다".

전 대통령님의 말씀이 백번 옳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이 말씀이 대통령님의 진심이라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대통령님의 이 말씀을 지지할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려고 하시는 그 원칙이 모든 분야에 고루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님과 관련된 부분에만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사법부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 그룹 회장에게 연이어 집행유예 판결과 사회봉사명령을 내렸습니다. 아시다시피 정몽구 회장은 2100억원대의 횡령과 배임이라는 죄를 지었고, 김승연 회장은 자신의 아들을 폭행한 술집 종업원들을 회사 조직과 폭력배등을 동원하여 응징을 한 죄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동일한 범죄를 재벌회장이 아닌 평범한 국민 중 한사람이 저절렀다면 과연 동일한 판결이 나왔을까요? 국민들은 이 두 판결을 두고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입증이 되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우리나라에 잘못된 정치풍토 하나는 정치가 법 위에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하셨지만, 국민들은 재벌이 법 위에 있다고 여기는 사법부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거에 영향이 있다고 범법행위를 용납하라고 하는 것이 무슨 논리인지 저는 알 수가 없다"는 대통령님의 말씀을 빌자면 경제에 영향이 있다고 범법행위를 용납하라고 하는 것이 무슨 논리인지 저는 알 수 가 없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시지 않고 계십니다. 물론 행정부의 수장이신 대통령님께서 사법부의 판결 하나 하나에 간여하는 건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것 정도는 저도 압니다. 하지만 사법정의 구현을 위해 대통령의 신분으로 하실 수 있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도 잘 압니다.

게다가 대통령님께서는 법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정당의 경선에 대해서도 말씀을 아끼지 않으시고,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벌언이 필요하면 선관위에 문의를 해서라도 하시는 분 아니십니까? 이 나라 사법정의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시면서도 아무 말씀 안 하시는 것은 ‘원칙’을 중요시 하시는 평소의 대통령님답지 않습니다.

행여 대통령님께서 중요하다고 여기시는 그 ‘원칙’이 대통령님의 필요에 의해서만 가치가 부여되는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원칙’이 바로 서려면 ‘원칙’의 적용에 최소한의 일관성은 갖춰져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 사법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원칙 외에 무엇이 남아 있는 지 모를 지경입니다. 이대로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대통령님께서는 측극들의 탈선과 민주신당 대권주자들의 대통령 때리기, 그리고 야당 대선후보의 불법적 선거운동 등이 더 신경에 쓰이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두 재벌회장에게 내려진 집행유예 판결로 인해 땅에 떨어진 이 나라 사법정의를 더 걱정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법 위에 있는 풍조도 고약하지만 재벌이 법 위에 군림하는 지금의 풍조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도무지 참을 수가 없습니다.

2002년 대통령님을 지지했던 이들은 대통령님께서 이끄시는 이 나라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상식으로 통하는 그런 나라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통령님에 대한 믿음을 무겁게 가지고 있는 이들이 아직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저버지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믿음을 무겁게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 믿음이 무너졌을 때, 그것이 얼마나 난감한 일인지는" 대통령님께서 더 잘 아시지 않으십니까?

대통령님의 건승을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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