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권력자들, 강한 남자들이 떨고 있다

[조중근 칼럼] '신정아 사건'의 사회심리학

검토 완료

조중근(shapsyche)등록 2007.11.05 15:42

문화일보는 9월 13일자에 신정아씨의 누드사진이 여러장 발견됐다며 이를 입수에 3면에 게재했다. ⓒ 문화일보 촬영

이른바 신정아 사건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국내의 한 신문이 '성로비도 가능한가'라는 기사 가운데 모자이크 처리된 그녀의 알몸 사진을 실었고, 이에 국내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일고 있는 그녀를 향한 약간의 동정심. 그리고 그녀가 귀국했다.


해당 신문 편집책임자는 누드 사진의 게재가 이번 사건의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삼기 위한 것이지 결코 선정성을 자극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 사진이 게재된 지면을 접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 상징성에 공감하기보다는 그 폭력성에 공분했다.

 

누드 사진이 등장함으로써 사태의 본질이 오히려 흐려지고 있다.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그녀에게 온 것일까.


국민, 자신도 모르게 관음증적 쾌락에 빠져들어


누드 사진 보도를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주요 언론 매체들도 원인을 차분히 분석하기보다는 신씨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사이에 벌어진 불륜에 초점을 맞추면서, 교묘히 그들의 동침 현장을 독자들이 상상하도록 만들어왔다. 그리고 국민은 자신도 모르게 관음증적 쾌락에 빠져들게 되었다.

 

정권의 실세와 미모의 젊은 미대 교수라는, 상류사회의 징표들이 관음증의 또 다른 요소인 가학적 충동을 배로 만족시켜주었다. 간음한 남녀들이 벌거벗겨져 저잣거리로 내몰리는 장면을 기다리면서, 여론은 흥미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누드 사진은 오히려 그 관음증적 상상의 판을 깨어버린 격이다. 타블로이드판에나 어울릴 법한 그 낯 뜨거운 사진은 그동안 은근히 조장돼 왔던 에로틱한 분위기를 확 달아나게 해버렸다. 그렇다 하더라도 뜨겁게 달아오른 비난 여론은 쉽게 식지 않았다. 그 순간을 그녀는 어떻게 여겼을까. 이따금 들려오던 귀국설이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사태의 반전을 위해 그녀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멸의 기로에 서 있는 신씨의 한 남자. "그대 아직도 사랑을 꿈꾸고 있는 것인가?" 변 전 실장은 마음속으로 수없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을지 모른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신씨가 한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순정파는 아닐 것이라는 점을 밝혀주는 단서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가장 최근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연인관계를 정면으로 부정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사랑이 갖는 진정성을 믿으려 할 것인가. 아마 믿어야만 할 것이다.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린 이 마당에, 그녀와 나누었던 사랑을 의심하는 일은 그에게 존재론적 소멸을 의미하기에.
  
정신분석을 하는 가운데 의사와 환자 사이에 로맨스가 벌어졌다면, 그 의사는 권력을 남용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카우치(휴식하기 좋은 긴 의자)에 환자를 눕혀놓고 자아의 방어 능력을 무장 해제시켜버린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환자의 사랑 고백을 순수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는 정신분석가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은 그러한 면에서 항상 삼가야 한다. 변 전 실장을 만나고 난 뒤부터, 신씨가 누려왔던 권력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누구인가 권력을 그녀의 손에 쥐어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 중심에 변 전 실장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 맥락이라면, 세간에서 제기되는 사랑의 불순함을 근거없다 말하기 어려우리라.

 

지금까지 언론에 나타난, 신씨 드라마를 요약하는 우화(fable)는 "한 허영심 많은 미모의 젊은 여성이 묘하게 성적 매력을 발하면서 문화계와 학계, 그리고 종교계를 종횡무진 유린하면서 자신의 실력에 전혀 걸맞지 않은 지위에까지 올랐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많은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고 정권의 어떤 권력자가 적극적으로 그녀를 비호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염치가 없다는 것이다"라는 이야기. 사실(fact)은 명료하다. 변명과 추측이 사태를 엉킨 실타래처럼 만들어가고 있을 뿐.


대한민국 남성 권력자들의 내면이 그리 쓸쓸할 줄이야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사태의 본질은 성과 권력이 만나는 지점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사랑이다 싶으면 권력이고, 권력이 포착되었는가 하면 다시 연정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그러한 변증법적 관계. 신씨는 성과 권력이 엇물려 돌아가는 역학을 다루는 일에서는 가히 천재적인 것 같다.

 

성(聖)과 속(俗)의 모든 권력들이 그녀가 부리는 마법 앞에서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분고분했다. 표면적으로야 물론, 어른 말을 잘 듣는 참한 아가씨로 보였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은 내공에서 한참 밀렸다. 그녀 앞에서 그들의 속은 의외로 허했으리라. 그녀는 항상 차분하고 쿨했지만 그들은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남성은 예외적인 한 절대권력을 상정함으로써, 보편성에 도달한다"는 주장을 통해 라캉은 남성권력의 허구성을 폭로한 바 있다. 가능하지도 않은, 법과 질서를 뛰어넘는 예외적 인간을 상정함으로써 무제한의 쾌락(향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사는 존재가 남성이라는 말이다.

 

대한민국 남성 권력자들은 신씨에게서 그 예외적인 인간을 본 것일까? 그들 마음이야 알 바 없지만, 그녀는 남성들이 절대 권력의 향수에 취하도록 만드는 일에 완벽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남성 권력자들의 내면이 그렇게 쓸쓸할 줄이야.

 

그녀가 돌아왔다. 신씨는 어떤 패를 쥐고 있을까? 누드 사진 사건과 이에 대한 엄청난 비판 여론, 변 전 실장과 연인 관계의 부인 등을 종합하여 볼 때 그녀가 의도하는 바는 '가해자로서 남성권력과 희생자로서 여성' 구도가 부각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위기에 몰린 투수가 가장 자신 있는 공을 결정구로 던지는 일은 당연한 것.  아마 그녀가 만났던 수 많은 인사의 치부를 만천하에 공개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강한 남자들이 떨고 있다.

2007.09.16 13:38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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