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현 씨의 사람중심의 경제는 어떤 정치를 지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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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상(ahs631)등록 2007.09.27 12:35
문국현 씨의 사람 중심의 경제는 어떤 정치를 지향하는가?

정치 경력 0개월인 문국현 씨가 대권 도전을 선언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3% 이상의 지지율을 얻은 것은 그 자체로는 놀랄 일이다. 하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특정 언론의 띄워주기를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이 안 된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일이다. 다음으로 쉽게 들 수 있는 것은 지난 십 년, 짧게는 지난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개혁 세력이 보여준 배신과 무능에 대한 반사이익이다. 오랫동안 이명박 씨가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것도, 보수 언론의 띄워주기를 제외하면 그런 반사이익, 즉 강요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한 이해방식이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또 하나 들 수 있는 것은 문국현 씨가 보여주고 있는, 도덕적으로 깨끗한 노블레스 오블리제다운 면모이다. 이른바 착한 기업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씨가 그간 보여준 말도 안 되는 말에도 불구하고, 도곡동 땅 의혹(의혹이라기보다는 진실에 가깝지만) 등 무수한 비리 혐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이런 설명도 제한적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사실 진실은 가까운 곳에 있으며, 누구나 다 안다. 문제는 경제다. 그러니 경제를 잘 아는, 잘 운영할 것 같은 대통령을 뽑자. 이런 점에서 이명박 씨에 대한 지지나, 문국현 씨에 대한 어떤 바람이나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범여권이라 부르는 정치 세력이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정확히 그 반대의 이유이다. 그리고 진보 세력의 원내 정당인 민주노동당이나 원외 정당인 한국사회당은 여전히 저항 정치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번 대선을 지나면서 바뀔 수 있겠지만 말이다.
지난 십 년 간 한국 사회는 빠르게 바뀌었다. 1970년대 초부터 시작된 자본의 구조 조정이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배경으로 하여 1990년대 초반에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을 때조차 그것이 가지고 있는 심각성은 아직 남의 일이었다. 하지만 누구 말마따나 역사의 여신은 가장 잔인한 법이어서 이러한 시대의 흐름은 1997년에 ‘외환 위기’라는 벼락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아둔함을 꾸짖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한국 경제에 펀더멘탈은 없으며, 이제부터 IMF나 미국의 일부 경제학자, 정책 담당자가 권고(?)하는 대로 노동을 유연화하고 시장을 자유화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물론 역시 한국은 한국이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어느 민족도 보여주지 못한 역동성을 지닌 나라답게 세계의 흐름, 아니 미국의 흐름에 발 빠르게 자신을 맞추어나갔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앞서나갔다. 왜냐하면 일부 진보 세력을 제외하고 거기에 저항할 만한 시민 사회의 힘이 약했고, 공적 담론의 장은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도 역사의 복수이리라.
그리곤 십 년이 흘렀다. 꾸준히 경제 성장이 지속되었다. 외환 위기가 언제 있었나 싶게 한국의 외환 보유고는 적정 수준을 넘는다는 걱정이 흘러나오는 상태가 되었다. 수출은 계속해서 호조를 보여 얼마 전에 3,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그런데 경제가 문제란다. 또 한 쪽에선 심각한 사회양극화가 우리 사회를 해체시킨다고 걱정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여러 측면에서 말할 수 있겠지만 일단 크게 두 가지가 아닐까?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찾는 것과 차별적인 불안정 고용을 극복하는 것 말이다. 지난 십 년을 돌아볼 때 이 두 가지가 결합된 경제 구상이 모두가 바라는 것이 아닐까? 이런 점에서 문국현 씨의 경제관이 주목받고 있다고 본다. 육체노동에 기반한 경제에서 지식 창조 경제로 가야 한다든가, 노동 시간을 선진국 수준으로 줄이면서 일자리를 500만 개 만들겠다든가, 실제로 고용을 별로 창출하지 못하는 재벌과 대기업 대신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든가 등등. 여기에 보충적으로 여성의 참여를 강조하고,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농촌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해야 한다는 등의 구상이 뒤따르고 있다.
문국현 씨가 어떤 가치관과 윤리에 기초해서 이런 주장을 하는지와 상관없이 나는 그의 주장이 경제 강령으로서 현실성이 있으며 또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현실성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단 한국이 노동력을 기초로 한 경제 발전을 도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몇 십 년 간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은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꼼꼼한 손노동으로 여러 경공업 제품을 생산한 (여성) 노동자 덕분이 아니었던가? 거기에 더해 70년대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조선, 자동차, 철강 등에서 일한 노동자들의 노고 덕분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시간이 흘러 포드주의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을 때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더 고도의 노동이 경제 발전의 기반이 되리라는 것은 상식이 아닐까? ‘산업의 지도자’인 기업가 혹은 CEO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할 일 아닐까?
또한 문국현 씨의 주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지식과 숙련을 가진 노동자들이 시민으로서 공동체인 국가의 견실한 정치적 기초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별다른 지식과 교양이 없이, 내일이 어찌될지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공동체의 업무인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노동 시간의 단축, 평생 교육 등을 주장하는 문국현 씨에게 공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문국현 씨가 주장하는 ‘진짜 경제’가 어떤 국가를 지향하는지 어디를 찾아보아도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신자유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것은 인상적이었지만, 유럽의 보수화를 주도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누누이 찬양하는 것은 뭔가 이상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 인터뷰에 함께 했던 기자가 보나파르티즘을 떠올리는 것도 아주 생뚱맞아 보이지는 않는다. 거기에 급격한 사회 변화를 안타깝게 여기는 보수적 사회주의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고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논평은 그리 생산적이지 않다. 도리어 문국현 씨가 주장하는 경제 모델, 경제 강령이 어떤 국가 공동체를 목표로 하는지를 함께 찾아볼 일이다. 그리고 이는 지금의  정치 지형 자체를 바꾸어내는 일일 것이다. 내가 지난 번 글에서 문국현 씨의 책과 한국사회당 금민 씨의 <사회적 공화주의>를 겹쳐 읽자고 제안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이 둘만 겹쳐 읽을 일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진보적인 여러 대안들의 겹쳐 읽기와 교차 참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할 때 새로운 경제 모델만이 아니라 그러한 경제 모델이 겨냥하는 국가의 성격이 무엇인가를 묻고 대답하는 일이 필요하다. 경제가 경제 자체로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자체가 삶의 목표이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마 그것은 공화국 논쟁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공화국은 republic이자 commonwealth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문국현 씨의 인터뷰에 부록으로 붙어 있는 ‘30문 30답’의 마지막 질문과 대답은 사실 그것을 예정하고 있다.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면, 다음날 뭘 할 건지: 사람입국 선포, 국민 통합과 대한민국 재창조를 위한 사회적 대화 전개.” 아니 이번 대선 자체가 국민 통합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공동체의 재창조를 위한 사회적 대화가 전개되는 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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