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는 성경 창세기 역사였다

단기 4340년 단군신화의 현대적 의미는 무엇일까?

검토 완료

김용승(yskim138)등록 2007.10.02 09:36
‘신화’는 자신의 조상이나 나라를 세운 사람을 신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 쓴 이야기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하늘의 아들이라던가 또는 특이하게 태어났거나 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대별되는 것으로 ‘설화’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재미있고 교훈이 되는 소설 같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신화’와 구별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대한민국에는 하늘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단군신화, 고구려 주몽신화, 신라건국의 박혁거세신화, 가야건국의 김수로왕신화 등 대표적 ‘신화’가 존재한다.

그 ‘신화’ 중 으뜸은 대한민국 건국신화를 담은 ‘단군신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근현대에 이르러 물밀듯 밀려온 기독교의 영향(?)으로 단군신화의 의미가 퇴색되고, 왜곡되어 매년 10월 3일 개천절은 일부 민족종교 그들만의 명절인양 일반 국민들에겐 하나의 의미없이 노는(?) 공휴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다. 더군다나 ‘단군신화’에 대한 명확하고 현실적인 해석노력도 없이 점점 ‘허구’라는 소설 같은 이야기로 전락한 채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따라서 과연 ‘단군신화’의 진실적 교훈은 무엇이며, 그리고 ‘단군=우상’론의 발원지인 기독교의 ‘성경’을 통해 ‘단군신화’와의 상호연관성이라는 발상 전환적 입장에서 ‘단군신화’를 해석을 시도해 보게 되었다.

단군신화는 그 옛날 주인공 단군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골자로 한 신화로써 현재까지 전해오는 단군신화 자료들 가운데서 가장 오래 된 것은 13세기 말 고려 승려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고기‘ 편에서 나온다.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성경과 연관 지어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 해보겠다.

삼국유사 : 옛날 하늘세계의 임금인 환인이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에 내려가는 아들 환웅에게 《천부인》3개를 주어 삼위태백에 내려 보내어 다스리게 하였다. 3000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꼭대기의 신기한 박달나무(신단수)아래에 내려온 환웅은 풍백(바람맡은 어른), 우사(비를 맡은 어른), 운사(구름맡은 어른)를 거느리고 곡식과 생명, 병과 형벌, 선과 악을 비롯한 360여 가지의 인간세상살이를 주관하면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해석 : 우선 ‘환인’은 성경상 하나님의 한국적 표현이다. 이슬람의 알라가 하나님의 아랍어인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비 바람 구름’ 등의 표현은 창세기 1장 천지창조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환인의 아들 ‘환웅’은 창세기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1:27절)” 라는 대목에서 남자인 아담을 말한다. 왜 여자가 아닌 남자가 되는가 하면 창세기(2:21-23)에 하나님이 남자를 먼저 창조하고,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고 나와 있는 데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1:8절에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라는 기록은 의미 깊은 말일 것이다.

삼국유사 : 때마침 곰 한마리와 범 한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면서 웅에게 사람으로 변하도록 해달라고 늘 빌었다.

해석 : 이는 하나님이 남자 아담(환웅)을 먼저 창조한 후 아담이 홀로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음에 그의 배필로(창 2:20) 이브(여자)를 만드는 창조의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곰과 범의 동물적 표현은 일부 민족종교단체나 지금 방영되고 있는 MBC 대하사극 ‘태왕사신기’에서 ‘웅족’과 ‘호족’의 부족명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성경을 잘 읽어보면 태초 아담 이브 1남1녀가 아니라 당시 인간들 중 대표적 남자, 대표적 여자였던 만큼, 누구나 여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여러 인간집단을 말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곰 같은 사람’, ‘호랑이 같은 사람’과 같이 인간개개인의 다양한 성격개념으로 웅과 범을 표현했을 수도 있다.

삼국유사 : 곰과 호랑이는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개를 먹고 백날동안 햇빛을 보지 않았다.

해석 : 이는 수신(修身) 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선 쓰고 독한 쑥과 마늘을 먹어야 했다. 성경(렘 9:15)에서도 독하고 쓴 것으로 ‘쑥’을 하나의 시련 즉 탕감으로 표현했다. 즉 육신으로 완성되었으나 정신적으로 미완성된 인간이 완성으로 가는 데에 따르는 시련의 과정을 쑥과 마늘로 상징했던 것이다. 마치 오늘날 성년으로 가는 청소년 사춘기라고나 할까? 커진 육체에 인격적으로 성숙해가는 인고의 성장과정이었던 것이다.

삼국유사 : 곰과 범은 그것을 얻어먹고 굴에 들어가 햇빛을 보지 않기로 하였는데 성급한 범은 참지 못하여 사람으로 되지 못했으나 곰은 스무하루 만에 여자로 변하였다.

해석 : ‘햇빛’을 보지 않았다는 말에 주목하고자 한다. 예로부터 해는 남성을 상징했고, 달은 여성을 상징했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성을 ‘달덩이’로 표현하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곰과 범이 굴속에서 햇빛을 보지 않았다는 뜻은 해의 상징인 ‘남성’을 보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는 결혼적령기까지 영육으로 ‘순결’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경에는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 2:25)”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가 타락 후 부끄러워 옷을 입었으니 그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는 바로 ‘불순한 사랑’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창3:10)
그런데 21일의 기간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날의 결혼 적령기간인 21세 나이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1세 꽃다운 여자나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제 비로소 ‘수신’된 여자가 제가(齊家,가정을 갖는 것)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삼국유사 : 곰 여인은 혼인할 자리가 없어 신기한 박달나무아래에 가서 애기를 배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환웅이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와 관계함으로써 애기를 배게 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를 단군왕검이라고 불렀다.

해석 : 이는 제가(齊家) 즉, 가정완성을 의미한다. 즉, 인격적으로 완성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 천손(天孫)가정을 만들어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는 의미이다. “나는 신랑이요 너는 신부니‘하는 예수의 발언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2에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해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3가지 면에서 단군신화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대체적으로 어려운 문구로 되어있는 ‘신화’를 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단순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화’는 고도의 과학문명이 발달된 지금보다 못한 당시의 생활관, 국가관, 우주관 등이 복합적으로 배어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도 하루 만에 천지를 창조했다는 기록을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대목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신화’를 너무 어렵다고만 볼 것 이 아니라 당시 시대적 배경 하에 고대를 미화를 장엄한 대서사시와 같은 기록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둘째, 신화의 이해는 단순한 문자가 아닌 그 문자 속에 담긴 ‘비유와 상징’적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주변에도 훌륭한 인물을 묘사할 때, ‘00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고 표현하면 뭔가 신비하면서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것은 ‘비유와 상징’적인 문자표현일 것이다. 성경(요 16:25)에도 “이것을 비사(비유와 상징)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란 기록을 보면 참고가 될 것 같다.

세째, 단순신화가 현대생활에 가져다주는 삶의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군신화’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위와 같은 해석을 참고로 단군신화는 한마디로 성경 상 “생육하고(修身) 번성하며(齊家 治國) 땅에 가득하여 번성하라(平天下) 하셨더라(창 9:7)”라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3대 축복을 우리의 고대 서술로 기록한 성경 창세기의 기록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놓은 ‘가정’이라는 것은 천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며, ‘결혼’은 순결한 삶을 통한 인격완성 후의 새로운 삶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네째, 기독교에 대한 일갈로써 단군신화가 성경과 공통점이 오히려 많기에 결코 ‘미신’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옛 시절 원래 한 뿌리였던 가족, 부족들이 국가권을 이루고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갈려져 나간 형제들이 옛 이야기들을 고립된 지역의 시대적 배경에 따라 각기 기록되어진 것을 ‘신화’라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기에 넓은 의미에서 성경도 그 ‘신화’적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오히려 성경이 더 이상 배타적으로 고립되지 말고, 수많은 신화 속에서 공통점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프리카 오지의 한 부족장의 죽음은 거대한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한다. 기록문화도 없는 벌거벗은 정글(에덴동산)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의 운영은 경험을 축적한 부족장 한사람의 머리에서 나온다. 그러기에 세월이 흘러 그 부족의 제 문화를 기록하게 되면 보는 각도와 시대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낳기 마련이다.

단군신화, 결코 ‘미신’이 아닌 한국의 창세기 역사이다. 그리고 더더욱 중요한 건 그 신화가 갖게 되는 교훈적 의미를 오늘에 되새길 일이다.

그것인 진정한 개천절의 의미 아닐까?

단기 4340년 10월 3일 개천절을 되뇌이며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