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 영화 ‘더 브레이브 원(The Brave One)'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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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승(yskim138)등록 2007.10.14 08:18
만일 내 사랑하는 연인이 거리의 불량배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자신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뒤, 이후 그 범인을 추적 끝에 찾았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경찰에 넘길 것인가! 아니면 그 자리에서 피의 보복을 할 것인가!

이 사건의 종말은 바로 지난 10월 11일 ‘양들의 침묵’으로 유명한 여우 조디 포스터를 주연으로 한 영화 ‘더 브레이브 원(The Brave One)'에서 그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해 주고 있다.

필연으로 생각할 만큼 아주 특별히 귀한 분의 초대를 받아 본 영화 첫 장면에서 나는 먼저 문명의 화려함과 비문명의 폭력이 혼재된 미 뉴욕의 환경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화려한 조명과 높은 빌딩 숲 속에서 활기넘치는 시민들.. 하지만 그날 그날을 엔죠이하며 지내는 뉴욕의 뒷골목 젊은이들 하며, 문방구에서 문구 사는 것처럼 쉬운 총기 구입 등 어두운 구석들과 함께 말이다.

이런 혼재된 배경 가운데 등장한 라디오 쇼 진행자인 주인공 에리카(조디 포스터 분)는 어느 날 사랑하는 약혼자와 산책 중 우발적으로 불량배들과 시비 끝에 그만 약혼자는 죽고, 자신은 겨우 목숨을 구한 채 심한 정신적 충격의 후유증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영화의 제목처럼 정말 자신을 용감하게(Brave) 만든 권총 한 자루가 쥐어지고, 이어 우연치 않게 편의점 강도를 죽이게 되는 일에 휩싸인다.

그리고 연이어 지하철 불량배들의 범죄행각을 대담하게 심판하는 제 2의 사건을 일으키게 되면서, 뉴욕은 위 두 사건이 화제가 되면서 찬반양론에 휩싸이게 된다. 너무도 통쾌한 범죄 소탕이라는 찬성 측과 법의 심판이 우선이라는 반대론으로 말이다.

이때 ‘법은 곧 정의’라는 신념으로 이 사건을 맡았던 형사 테렌스 하워드는 에리카의 범죄행각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신념과 범인에 대한 연민사이에서 갈등한다. 마치 에리카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우리 말의 신념을 대변하고 있었으며, 형사 테렌스 하워도는 그녀와 반대적인 인물이었다.

결국 에리카는 자신을 피참한 나락으로 몰아부쳤던 범인들의 집에 권총을 들고 들이닥치게 되었고, 이를 눈치 챈 형사 테렌스의 개입으로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한다.

마침내 에리카는 과연 범인을 죽였을까? 아니면 테렌스에 의해 법의 심판대에 올랐을까?

결과는 에리카가 형사 테렌스의 총으로 범인을 죽인 것으로 끝난다. 에리카 총의 범죄 흔적을 숨겨주기 위해 형사 테렌스가 도움을 준 것이다. 그리고 테렌스 자신도 위장된 총기 부상을 입게 만들고 난후, 에리카를 유유히 현장을 떠나게 한다.

결국 완전범죄를 이룬 것이다.

물론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이는 범죄행위이다. 그 어떤 상황이라도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반드시 법에 의한 심판만이 문명사회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이 영화는 ‘인간에 의한 심판’으로 해결방법을 찾아 버렸다.

왜 일까?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바로 영화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대리만족’의 쾌감 때문이다. 누구나 가까운 주먹으로 그렇게 할 것이라는 것을 대행해주는 것 말이다.

그 누구라도 그 못된 범죄에 피해를 당했다면, 주인공 에리카 이상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인지상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결국 영화 ‘더 브레이브 원(The Brave One)' 더 이상 영화 밖으로 나와서는 안되겠다. 자칫 폭력을 미화 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그런 행동이 나오게 만드는 사회도 되지 말아야겠다.

문득 경우는 다르겠지만, 지난 번 미 버지니아공대에서 총기사건을 일으킨 ‘조승희’씨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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