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8월 PD수첩 방송. ⓒ MBC 화면
의사가 암환자들을 고소했다고?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 아니, 세상 어느 의사가 암에 걸린 환자를 상대로 고소를 한단 말인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농담이겠지.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그것도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얼마 앞둔 날의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고소를 한 것일까. 암 환자들이 어떤 몹쓸 짓을 했길래 의사가, 병원이 환자들을 고소 했다는 말인가.
고소를 당한 이유는 '명예훼손'. 도대체 암 환자들이 어떻게 해서 의사의 명예를 훼손한 것일까. 궁금하다면 한번쯤 이야기를 해드리는 것도 좋겠다.
병원에 대한 정보 주고받았는데... 명예훼손?
예전에 한 한의원이 있었다. 강남에 위치해 나름대로 유명세를 떨친 한의원은 매우 값비싼 진료비로도 유명했다. 그런데 지난 2005년 8월, PD수첩에서 이 한의원이 약효를 검증되지 않은 약침을 정맥 주사해 집단부작용을 일으켰다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
그 뒤 어떤 사정 때문인지 문제의 한의원은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다. 원장도 바뀌었다. 왜 바뀌었는지는 잘 모른다. 서로 연관이 없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다. 뭐, 여기까지도 괜찮다.
이번 고소는 문제는 이 한의원을 이용한 암 환자들, 그리고 그 환자들의 가족·친구들이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 한의원의 이야기를 올린 데서 시작됐다. 곧바로 삭제가 되었기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나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좋지 않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 2005년 8월 PD수첩 방송 내용 ⓒ MBC 화면
우리는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까를 이야기 할 때도 "맛이 있다" "맛이 없더라, 가지 마라"를 이야기 한다. 하물며 암 환자들에게 어떠한 병원을 선택해야 하는가는 생존과 직결된 일이다 보니 물어볼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일이다.
어떠한 병원을 선택해 어떠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가는 의사들마다 의견이 다르고, 환자들 역시 나름의 입장이 있기 마련이다. 이 때마다 환자들이 스스로 심사숙고해서 결정을 한다는 것도 곤란한 일이다.
진료의 경우 직접 겪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니만큼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암 환자들에게 하루, 그리고 한 번의 진료, 하나의 선택은 바로 곧 생존의 기회와 맞바꾸는 중요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암세포와 싸우던 환자들, 병원과도 싸워야 했다
글이 올라오자 한의원은 환자들을 상대로 집단 고소를 했다. 총 30명이 고소를 당했다. 올바른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커뮤니티에 의견을 올린 것이 이렇게 큰 화를 불러 일으킬지 환자들은 몰랐다.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앞두고 그들은 경찰서로 출석하라는 요구서를 받았다.
고소를 당하는 일은 흔한 것이 아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조사를 받으러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평생 살면서 한번도 고소당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다. 그런데 명절을 앞두고 고소를 당했다. 그것도 위와 간과 대장과 폐와 유방과 자궁과 뼈 깊숙이 암세포가 자라나고 있는 환자들이 자신들을 위할 것이라 생각했던 병원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해당 의원은 당장 관련 게시물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환자들은 하루하루 약해져가고 있었고, 환자 가족들 역시 약해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보통 사람도 의연히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인데 환자들에겐 견딜 수 없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일을 빨리 마무리했으면, 그래서 투자자와 법무팀까지 있는 거대 병원이 고소를 취하해 주셨으면'하고 생각했다. 왜 한의원이 투자자와 법무팀까지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관련 커뮤니티의 해당 환자분들은 모두 고통 속에 추석을 보내야 했다.
그런 와중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추석이 지난 후 한의원은 전원 고소를 취하했다. 조건은 '이번 사건과 관련된 모든 게시물의 삭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 정도로 겁을 줬으면 됐다고 생각을 한 것일까? 아니면, 일이 커지는 것 같아 마무리를 지으려는 것일까?
어쨌든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그 조건을 받아들였고 작지만 소중한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 2005년 8월 PD수첩 방송 내용 ⓒ MBC 화면
고소 취하, 그러나 진짜 평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어릴 적 학교에 무서운 녀석이 있었다. 하지만 싸움도 잘하고 욕도 잘하기 때문에 다들 몸을 사렸다. 그 녀석이 멋대로 구는 것을 알지만 반장까지 하고 있었기에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었다. 선생님에게 말씀이라도 드리면 분명히 험한 꼴을 볼 게 뻔했다.
하지만 녀석의 횡포는 극에 달했고, 선생님 역시 이 문제를 눈치채셨다. 어느 학급회의 시간 선생님은 반장인 녀석에게 심부름을 시킨 뒤 말씀을 하셨다. "반장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겠지."
하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나는 손을 들고 일어나 반장이 얼마나 제멋대로이며 다들 그 녀석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자질했다. 고자질 안 하고는 견딜 수 없었다. 바로 그 때 반장이 돌아왔고, 나는 혹독한 따돌림을 당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노는 것은 상관이 없었다. 내가 견딜 수 없던 것은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며 정당한 척 하는 녀석이었다.
아마 당시 우리가 초등학생이 아닌 성인이었다면 녀석은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을까. 그리고는 혹독한 따돌림을 겪게 한 뒤 선심이라도 베풀듯 고소를 취하해 줄까.
다시 말하지만, 이전의 그 사건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애꿎은 환자들에 대한 고소가 취하가 되었다고 해서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암 문화 기획 단체인 '구름'은 우리나라에 건전한 암 문화 정착을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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