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한 소재, 아쉬운 각본. '궁녀'

[영화 리뷰] 궁녀

검토 완료

김황주(blackfootdog)등록 2007.10.19 09:59

영화 궁녀 포스터 ⓒ (주)시네마서비스

정확한 때를 알 수 없는 조선 시대의 궁궐 안. 그 곳에서 생활하는 '궁녀'들의 모습을 가능한 사실적으로 담아내려고 했던 게 이 영화의 목적이었을까. 혹은 여자라는 존재에 대한 고찰을 궁녀들의 몸을 빌어 표현하려 했던 것이 목적일까. 해석이야 두 방법 모두 가능하겠지만, 기획 의도라면 아마도 저 둘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전자라면, 난 이 영화에 호의를 표하고 싶다. 꼼꼼한 고증을 통해 독특하고 참신한 소재라고 할 수 있는 조선 시대 궁녀들의 생활상을 세밀하게 묘사한 점과, 그것을 추리극 및 호러의 형태를 빌어 비교적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냈다는 점은 충분히 좋은 평가를  받을 만 하다. 하지만 후자였다면, 그 주제가 잘 나타났다고 보기 어려울 듯 하다. 모든 여성들이 지니고 있는(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 치명적일 정도의 모성애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글쎄, 잘 모르겠다.

 

그것은 귀신을 비롯한 등장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이유가 조금 모호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궁극적으론 모성애에서 비롯된 살인이라고 결론낸다. 하지만 월령의 경우 그것이 복수 때문인지 모성애 때문인지 혼란스러운 경우(천령은 왜 살려두는가?)가 있고, 심상궁의 경우라면 그녀가 왜 그리도 왕자에게 집착하는지 잘 알 수 없다.(자신의 신분상승을 위해?) 또한 천령의 경우 결말 부분에 왜 입을 다무는지도 그 이유가 모호하다. 자신의 모성애가 왕자에게 전이되었다는 듯한 설명의 컷이 등장하지만, 그것만으론 이유가 충분치 않은 듯 한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영화 '궁녀'는 특정한 장르 하나로 분류하기가 어렵다. 배경으로 따진다면야 시대극이라지만, 이야기 자체에는 미스테리와 호러가 두서 없이 버무려져 있다. 전체적인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천령의 입장에서 보자면 미스테리지만, 월령의 원령(!)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호러다. 이 두 장르는 얼핏 생각해보면 잘 어울릴 듯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영화에선 그러질 못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처음부터 진실을 꿰뚫고 있는 듯한 천령은 계속 헛다리만 짚다가 마지막에서 비로소 모든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미 사건은 귀신에 의해 마무리되어진 후다. 그리고서 천령은 그 모든 일에 대해 침묵한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천령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원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중심사건에 있어서 그녀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단지 귀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버리는 과정 속에서 이리 저리 뛰어다니다가, 귀신의 존재를 알고 난 뒤엔 오히려 굳게 입을 다문다. 철저한 관찰자일 뿐이다. 어찌 보면 이야기의 바깥에 존재한다고 해도 전혀 상관이 없다.

 

이는 '미스테리'와 '호러'라는 두 장르의 효과적인 결합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한다. 두 명의 중심 인물을 가지게 된 이야기는 각자 두 물결을 이루어 따로 흘러가고, 결말 부분에 나타나는 접점은 그리 큰 인상을 주지 못한다.

 

인물들에 대해 말해보자면, 너무 강한 억양을 남발하는 바람에 약간 거슬리는 사극체를 구사하는 박진희와는 달리, 감찰 상궁 역을 맡은 배우 김성령의 연기력은 정말 훌륭했다. 마치 사극을 위해 태어난 배우가 아닌가 하는 정도의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연기였다. '대사가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라는게 어떤 것을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또한 박진희의 스승(?)역으로 나온 배우가 안경을 쓰고 살인현장을 조사 할 때는 천령보다도 더 '노련한 탐정'이라는 분위기를 풍겨서 재밌었다. 모름지기 탐정은 인상을 찌푸린 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척해야 그럴듯 한 법이다.

 

2007.10.19 09:5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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