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대구 삭제하라는 대구시 고담스럽다

검토 완료

하재근(ears)등록 2007.11.02 13:18

대구시가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통해 38개 주요포털사이트와 UCC 업체, 언론사에 '고담대구' 등 지역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내용의 글을 ‘삭제’하라는 요청문을 발송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고담대구라는 비아냥이 대구시에 대한 명예훼손이니 인터넷 세상에서 이런 말을 검열해달라는 것이겠다.

난 고담대구라는 말을 한 번도 쓴 적이 없지만 대구시가 이렇게 나오면 고담대구라고 불러줄 수밖에 없다. 완전 ‘고담’스럽지 않은가. 자기자신이 고담시티라고 컴잉아웃하는 격이다.

이 괴상한 별명은 2000년대 초에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대구시에서 각종 사건이 빈발하자 그것을 빗대 디시인사이드 등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2005년 초 대구경찰청장이 취임연설에서 "대구는 요구르트 독극물, 총기강도, 염산테러, 지하철 폭발 및 방화 등 '이상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곳"이라 말한 것도 별명 확산을 부추겼다고 한다.

이 말을 지역 비하의 뜻으로 마구 쓰는 사람들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통계적으로 보면 대구시의 범죄율이 그렇게 높은 편도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네티즌들이 그렇게 별명을 지어버렸다. 아무리 일부 네티즌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이 듣기 싫어도 그렇지 그걸 삭제요청으로 대응해? 군사독재 시절에 자기 욕하는 것 듣기 싫다고 검열강화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아래는 인터넷에서 유포되는 비슷한 성격의 도시 별명들이다.

인천 : 마계인천 - 범죄가 많다나.
서울 : 심시티서울 - 뉴타운 등 무분별한 개발을 비아냥대는 것.
강릉 : 소돔강릉 - 툭하면 각종 재해로 아수라장이 된다는 의미일 듯.
수원 : 뉴올리언스수원 - 빈민들이 많다는 뜻이라고 함.
춘천 : 착취춘천 -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음)
마산 : 여의봉마산 -?
정선 : 잭팟아리랑 - 카지노.
합천 : 29만합천 - 29만원 선생님을 추앙하는 일해공원.
화성 : 살인의화성 - 연쇄살인.
부산 : 갱스오브부산 - 조직폭력배의 도시.
광주 : 라쿤광주 - 데모와 특공대 투입.(라쿤은 영화 레지던트 이블에서 좀비의 창궐로 특공대가 투입된 도시)
태백 : 조루태백 - 폐광으로 인해 빠르게 쇠락해간다는 뜻일 듯.
안산 : 제3세계안산국 - 외국인 노동자들의 도시?

뭐 하나 좋은 말이 없다. 이런 말들이 좋은 건 아니지만 네티즌들이 이 말을 썼을 때 삭제해달라고 나선 도시가 있다고 들어본 적이 없다.

유독 대구만.
유독 대구만!

고담시티의 고담본색인가? 입에 재갈부터 물리겠다는 것인가? 감히 불온한 언사를 입에 올리는 자들을 못 봐주겠다는 것인가?

없는 사실을 지어낸다면 문제가 있지만, 별명도 마음대로 못 부르는 세상이면 어디 무서워서 살겠나. 저 위의 별명 중에 살인의화성이나 착취춘천 같은 건 정말 문제가 있다. 만약 화성에서 살인의화성이란 말을 쓰지 말자고 했다면 이해가 간다. 하물며 그것도 설득이어야지 삭제는 문제가 있는 판인데 고담 정도 가지고 웬 삭제?

블로그에 쓴 글도 삭제를 요청한다고 한다. 블로그 표현 규제라. 최근에 한 정당에서도 이런 주장을 한 일이 있다. 이거야말로 정말 이 나라를 고담민국으로 만들겠다는 발상 아닌가.

네티즌들이 고담대구라는 말을 기꺼이 쓰는 이유는 대구가 한국 현대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대학총장 표준형이 60대-서울대-영남출신이라고 한다. 전에 한 국회의원은 자신이 지역차별이란 말을 듣긴 했지만 막상 자기 지역구에서 아파트 평수를 기준으로 영호남 출신자가 정확히 갈리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고 술회한 적도 있다.

최근 10년은 호남정권 아니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호남은 여전히 각종 지표에서 강원도와 꼴찌를 다툰다. 강원도와 달리 호남은 평야지대인데도! 대학충원률 꼴찌에 지금 추세로 가면 초등학교가 사라질 지경이라고 한다. 새로 결혼하는 4쌍 중 한 쌍이 국제결혼이다. 내국인들이 정말 못 살겠어서 탈출하고, 안 태어나고, 결혼할 짝도 안에서는 찾지 못한다.

호남이 이렇게 고사해가는 동안에도 대구에선 호남정권이 대구 죽인다는 선동이 먹혀들어갔다. 경상도는 IMF 당시 지방 중에 그나마 타격을 덜 받은 곳 중 하나였고 지금도 대한민국 지방 중에 수도권 바로 아래 수준이나마 발전된 곳은 경상도가 유일하다.

그러면서도 남한테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고, 삼가는 기색이 없고, 결정적으로 과거에 학살자들의 정치적 근원지 역할을 했던 것에 대해 반성하는 기색이 없다. 이런 것이 네티즌들로 하여금 고담대구라는 말을 쓰게 한 간접적인 이유일 것이다.

물론 지역감정 선동은 안 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영호남 할 것 없이 지방 전체가 고사해가는 추세다. 이젠 지방이 힘을 모아 수도권, 특히 강남 패권에 저항해야 할 국면이다. 서울이야말로 진정한 고담시티라고 할 수 있다. 특정지역 비하는 없어져야 할 악습이다.

그렇지만 대구시가 인터넷 검열식으로 나오면 고담시티가 대구시한테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게 된다. 나만 해도 벌써 생전 처음으로 고담대구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은가. 이건 아니다. 만약 이순재 씨가 야동순재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면 그건 자해행위였을 거다.

아무렴 이것이 대구시민의 뜻이겠는가. 대구의 ‘고담시청’이나 ‘고담공무원’ ‘고담지자체’ 등의 누군가가 제 시민의 얼굴에 ‘고담칠’을 하고 다니는 것이겠지. 대구시민은 지자체를 매우 쳐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고담칠’ 당할 판이다.

2007.11.02 13:19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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