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시청 정문의 철거민 차량들 '더불어 사는 행복한 도시 수원'이라는 문구와 철거민들의 풍경이 대조된다. ⓒ 김보람
"우리나라에 돈 한푼 못받고 멀쩡한 자기 집에서 쫓겨난 것도 모자라서 폭행까지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고한다면 사람들이 믿을까?"
지난 달,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친구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그것은 수원시청 앞에서 1년이 넘도록 시위 중인 철거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철거민들에 대한 이미지는 대략 도시 빈민들, 무허가 주택, 허물어진 건물들 사이로 경찰들과 대치하는 모습들로 떠올릴 수 있다.
대다수의 우리나라 국민들, 소시민들은 철거민들의 일이란 자신과는 별다른 상관이 없는 빈민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기사의 주제를 철거민으로 정하기로 마음먹고 찾아가본 경기도, 특히 수원 지역의 철거민들의 사정은 알려져 있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현재 경기도 수원시 내의 재개발 추진 지역은 대략 28곳으로 여타 다른 수도권 지역들에 비해 많은 수준이다. 김용서 수원시장 취임이후로 도시 곳곳에서 수년간 많은 재개발이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많은 철거민들이 양산되었다.
▲ 수원시청 정문 앞의 철거민 천막 수원시청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틈만나면 무너뜨리는 바람에 36번이나 다시 설치해놓은 비닐 천막. ⓒ 김보람
8세대 어른 7명, 아이 4명 2년 가까이 시청 정문에서 노숙 생활
현재 수원시청 정문에서 노숙을 하면서 466일째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2006년 1월 23일 강제 철거를 당한, 95%가 세입자로 이루어진 화서주공 2단지 주민 8세대로 어른 7명, 아이 4명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들은 소위 ‘강제 철거법’ 이라 불리는 행정대집행 법에 의해 세입자들은 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평범하던 가정에서 쫓겨나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다. 행정대집행 법이란 행정법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를 행정 관청이나 제삼자에게 집행을 대신하게하고 의무자에게 그 비용을 치르게 하는 법으로 현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철거 현장에서 적용되어지고 있는 법이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세입자들의 이주대책을 세우지도 않은 채 철거를 시행한 A모 건설회사도, 이 사람들이 쫓겨나면서 보증금 단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살림살이는커녕 옷가지도 챙기지 못한 채 몸뚱아리 하나만 가지고 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철거 당시 몇 안되는 부녀자들에게 자행되었던 2~300명의 용역업체 직원들의 무자비한 폭력과 부모가 용역직원들에게 맞아 쓰러지는 것을 여과 없이 목격한 아이들, 그리고 현장에서 이런 장면을 보고도 뒷짐만 지고 있었던 경찰의 모습들이었다.
수원시청 앞에서 생활하는 6살배기 아이 재현이(가명)는 제복입은 남자들만 보면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재현이가 가끔 엄마에게 “엄마, 우린 언제 집 생겨? 집에 가고 싶어” 라고 하면 주위에 있던 어른들의 눈가에 눈물이 소리 없이 맺힌다. 아이들은 4 살배기 아기부터 고등학생까지 있지만, 한 어머니는 한창 예민한 시기의 사춘기 자녀가 가장 걱정이라고 말하며 한 숨 짓는다. 작년 1월22일에 시행된 철거는 동절기 철거 금지법을 어긴 처사였으나 힘없는 빈민들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끌려나왔고 지금까지 수원 시청 입구에서 시청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의 감시 아래 불안에 떨며 하루 하루를 비닐 천막에서 보내고 있다. 각종 매체에서 묘사되었듯 이 사람들은 그냥 집을 달라며 생떼를 쓰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단지 최소한의 생존권이라도 보장해달라며 울부짖는 한 아이의 어머니, 아버지들이다.
▲ 저녁식사 준비 중인 철거민들 마땅한 장소가 없어 인도 한켠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철거민들 ⓒ 김보람
수원시청, 법적인 근거없어 책임질 수 없다 방관
철거 시에 정부에서 제공해준다는 임대 아파트는 허울 좋은 눈속임일 뿐이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12~20만원 짜리 13평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에게 50여평의 임대아파트의 비싼 임대료는 다시 길거리로 나앉게 만들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정부에서 철거민들에게 순환식 개발 조건으로 이주비와 임대아파트 제공 중 택일하라고 하지만, 이주비를 받자니 금액이 너무 적어 그 돈으로 이주할 집을 구하기가 어렵고, 임대 아파트에 입주하자니 비싼 임대료를 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수원시청은 시행사가 아니므로 철거민들이 요구하는 임대주택 입주우선권 보장과 이주대책에 대해서 아무런 보상의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2003년에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에 “사업시행자는 3~5항인 임시수용시설을 포함한 주민이주대책, 세입자의 주거대책, 임대주택의 건설계획 내용을 포함하지 아니할 수 있다”라고 임의규정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법 조항에 의해 수원시는 철거민들을 보호할 법적인 근거는 없다는 말로 일축하고 있고, 철거민들은 이 법 조항이 임의규정인 만큼 대책을 마련했어야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시청측이 고용한 용역회사 직원들이 이들의 비닐텐트를 허물어뜨리고 불태운 것이 내가 찾아갔을 때가 36번이었으니 지금은 그 횟수가 얼마나 더 늘어났는지 모른다. 아이가 텐트 안에서 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텐트를 부서뜨리고 새총을 이용해 쇠구슬을 쏘아대며 쫓아내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이 지경이 되도록 우리사회는 무얼하고 있었던 것일까.
▲ 시청 정문에 설치된 철거민 천막 수원 시청 정문 바리케이트 앞에 천막이 설치되어있다. 겨울에 이 곳에서 생활하는 것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것이다. ⓒ 김보람
우리는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달라는 거지 무조건 돈을 달라 떼를 쓰는 것이 아니다
전국 철거민 연대 임경숙 총무는 이렇게 말했다. ‘강제 철거민은 경제적인 약자이며 노동자인 동시에 학생들의 부모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전체의 문제다. 우리는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달라는 거지 무조건 돈을 달라, 집을 달라 떼를 쓰는 것이 아니다’
취재를 하면서 일간지에 이 기사가 실릴 수도 못 실릴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괜찮다. 관심을 가져준 것만 해도 고맙다"며 웃으며 배웅해주시는 이분들에게 절실한 것은 경제적인 지원 이전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아닐까.
2007.11.11 16:36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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