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9등급이야?"

캐나다 수능 학부모가 바라본 수능시험

검토 완료

조석진(cho3237)등록 2007.11.20 17:18
정강정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님께

먼저 편지의 형식을 빌어 원장님께 글을 씁니다. 우선 저와의 인연부터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2001년에 이곳 캐나다 터론토 인근의 미시사가市에 이민을 온 사람입니다. 원장님과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원장님을 아는 그런 관계는 아니고 다만 저가 1988년 서울올림픽조직위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원장님을 뵌 적이 있던 기억을 떠올린 것에 불과합니다.

저는 서울올림픽 조직위 관중편익국 국내입장권과에 근무하던 공채 직원이었고 원장님은 당시 어느 공직부서에서 조직위에 파견와서 문화행사관련 업무를 한 것으로 기억하고 또 네이버 검색을 통한 원장님의 이력에서 확인한 바 있습니다.

당시 직급이 달라서 원장님은 저를 기억하지 못하실 것이지만 저는 원장님의 얼굴을 기억해내었습니다. 몇달전의 TV화면에서 였습니다. 저는 이민 7년차의 세탁소 주인으로, 그리고 원장님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으로서 이번 2007년 대입수능시험 출제에 관한 뉴스시간에 서로를 본 셈입니다.

"여보...저 사람 어디서 본 적이...?"

세탁소 일을 하다가 인터넷으로 보는 국내뉴스 시간에 낯익은 얼굴로 본 원장님은 수능등급제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었고 이곳 캐나다 교육을 한사코 싫어하여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되돌아가서 중학과정 검정시험, 고교과정 검정시험을 거쳐 이제야 수능을 앞둔 아들을 둔 저로서는 학부모로서 온 관심을 집중하여 그 뉴스를 보고 있었죠.

"왜? 아는 사람이야?"
"응, 분명 옛날 올림픽 조직위에서..."

그 정도에서 아내와의 대화는 끝이 났고 이내 수능시험 성적을 등급화하는 이유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원장님의 설명을 들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보, 시험을 치고는 그 성적을 왜 등급화하는 거지?"
"낸들 알우?"

정말 답답했습니다. 아니 멀쩡한 시험성적을 아홉등급으로 나눈다니?
시험을 보는 목적은 수험자의 성적을 알게하고 자신의 성적이 어느정도인가를 가늠하기 위한 것은 상식입니다. 그것을 백점만점이라고 가정하면 바로 100등급이 되는 것이고 등급은 세분화될수록 변별력이 생길텐데...

그런데 왜 하필이면 아홉등급으로 점수를 뭉텅거릴까?.

여기까지가 세탁소주인으로 판단한 상식선의 대입전형관이었습니다.
왜 하필 9등급으로 나누지 11등급은 안되나...13등급은?...아예 2등급으로 나누면?...

이런 엉뚱한 생각이 이어지자 마침내 저는 화를 벌컥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들녀석이 이곳 고교과정을 채 마치지 못하고 역유학으로 어렵게 한국 수능을 대비하는 한사람의 학부모로서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아니, 왜 시험을 보는 거지. 왜 9등급이냐구. 차라리 2등급으로 하지. 아니지 1등급으로 하면 전부 평준화되는 것 아닌감. 단일등급으로 하여 내신만으로 지원하면 이곳처럼 내신만 가지고 대학을 응시할 수 있는 것 아냐. 수능은 무어고 내신은 무어고 논술은 무어고 특목고는 무어냐고!!"

와이셔츠를 다리던 아내는 벌건 얼굴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한국의 대입과정을 저희 부부는 모릅니다. 가끔 국제전화로 통화하며 아들녀석에게 전해듣는 말과 이곳 인터넷 뉴스로 얼추 알고는 있지만 국내의 극성 학부모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수능시험을 앞둔 학부모의 자격은 애시당초 없었고 사실 알려고 해도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수능 학부모인 옛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그 양반의 설명으론 내신을 강화하기 위하여 수능시험 성적 비율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시험을 보고는 그 성적의 변별력을 애써(?) 지우려한단 말야? 그럼 왜 시험을 보며 그 시험을 위해 그 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공부한단 말야?

평소 이곳으로 조기유학을 온 아이들을 바라보고는 조기유학 반대론자가 된 저는 거꾸로 이곳에서 한국으로 역(逆)조기유학을 보낸 학부모입니다. 그렇지만 교육공무원들의 이런 행태를 보면 많은 돈을 들여 이 추운곳으로 아이들을 보내는 한국의 기러기 아빠들의 심정을 알듯도 싶습니다.

그리고 특목고라고 그야말로 특수한 고교를 만들어놓고는 평준화를 외치고 그 특목고에 들어가는 비리에 연루된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달려가서 울부짖는 광경을 인터넷으로 보았습니다.

공무원들의 발상이 언제나 그렇듯 특수목적고로 외국어고를 만들 당시에 저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조기에 외국어 교육을 해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그 교육공무원의 설명이 지금의 외고 사태를 암시하는 듯 했습니다. '단란주점'이란 이상한 형태의 술집도 처음에는 가족끼리 '단란하게' 술도 마시며 노래하는 그런 공간으로 구상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공무원들의 진부한 탁상공론을 탓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발상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수능을 마친 지금 아들의 전화를 받고는 대입지원 전략을 짜지도 묻지도 않습니다. 그냥 2년동안 중학, 고교과정을 검정시험으로 마치고 올해 재수생에 해당하는 나이로 수능을 친 아이에게 다만 "그간 수고했다. 정말 수고했다."란 말밖에 할 수없습니다.

당최 수능의 의도와 결과를 알수가 없으니 무어라고 물을 수도 없습니다. 가채점으로 점수를 안들 등급분포를 정확히 모르는 한 자신의 등급을 모르니 시험을 치고도 잘 쳤는지 못 쳤는지도 모르고...

어느 일간신문에서는 '로또 수능'이란 표현도 있더군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저는 일간신문의 사설을 보았습니다. 수능등급제 철폐, 교육부 철폐를 외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글을 올린다는 그 사설을 보고 저도 동참하기로 한 것입니다.
원장님에게 직접 사적 인연과 함께 직소하려 한국교육평가원 홈페이지로 들어갔습니다.

수능답안 다운로드 설명만 달랑 있고는 홈페이지 연결을 시도했지만 종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이곳 캐나다 인터넷 기반이 시원치 않아서인지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아마 들어가서 게시판에 글이라도 올릴 수 있었다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이런 글도 쓰지 않았을겁니다. 바로 악성댓글이라는 야비한 수단으로 원색적인 욕을 원장님께 올리려 했거든요.

이 글의 서두에 저의 신원을 밝혔고 저의 주소, 전화번호까지 드리니, 20년전에 서울올림픽을 함께 준비한 인연이 한사람은 출제평가원장으로, 한사람은 캐나다 거주 수능 학부모로서 만난 것이 기쁨만은 아닌 것 같아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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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진

덧붙이는 글 캐나다 이민자로 수능시험을 본 아이를 둔 사람이 바라본 이번 수능시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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