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산 대야? 다라이?
우리집은 따로 욕조가 없는 약간 구식 욕실이다. 그래서, 물놀이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대야를 사용한다. 어렸을때 보았던 붉은 대야는 아니지만, 그냥 그런 기분은 늘 느끼고 있다. 나도 어렸을때 붉은 대야에서 꽤 놀았는데.
아이가 커지니 대야가 비좁아져서, 이번에 새로 구입을 하기로 했다. 마침, 김장철이라서 다양한 크기의 대야가 마트에 즐비했다. 가장 큰 놈으로 하나 골랐다.
▲ 이번에 구입한 대야 마트에서 판매하는 김장용 대야 ⓒ 한글로
품명은 '대야', 바코드와 영수증에는 '다라이'?
그런데, 영수증을 확인하는데 좀 이상했다. '다라이'라고 되어 있었다. 내가 알기론 '다라이'는 일본말 찌꺼기인데 말이다. 유심히 살펴보니, 제품에는 분명히 '대야'라고 쓰여 있는데, 마트 측에서 붙인 바코드와 영수증에는 '다라이'로 변해 있었다.
▲ 대야인가 다라이인가? 제품명과 바코드, 영수증에 적힌 것이 모두 달랐다 ⓒ 한글로
'다라이'는 살아있다! 마트에서, 쇼핑몰에서!
그래서 혹시나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다라이가 많이 노출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나처럼 어릴 적 추억을 가진 사람이야, '다라이'에 대한 추억을 블로그에 적는 게 별로 희한할 게 없다. 신문기사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마트, '김장대전' 배추 한포기 470원 [뉴시스] 2007.11.21
‘김장용 다라이’를 3790원~9790원에, ‘김장용 봉투’를 350원~590원에 판매한다.
그리고, 쇼핑몰 검색어로 상당히 많이 검색되었다. 어쨌든, 나만 쓸 것 같았던 단어, '다라이'는 살아 있었다!
일본어 찌꺼기이긴 한데.. 고민되네... 순화? 외래어로 승격?
국립국어원 표준 국어 대사전 (www.korean.go.kr)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다라이 (일본어 tarai[盥])
「명」금속이나 경질 비닐 따위로 만든,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둥글넓적한 그릇. '대야', '큰 대야', '함지', '함지박'으로 순화
명백한 일본어다. "벤또, 와리바시, 사라, 고뿌..." 와 같이 우리 생활에서 아주 많이 쓰이던 일본어 찌꺼기다. 많은 단어들이 이젠 순화되어서 오히려 "벤또"가 무엇인지 아는 청소년이 드물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다라이'는 그렇지 못하다. 나 조차도 '다라이' 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무엇이 있는데, 그냥 '대야' 하면 떠오르지 않는다. '다라이'에 대한 추억이 너무 커서 그런가?
고무 다라이 가져와!
김장을 하려면 고무 다라이를 준비해야 해...
그냥, "큰 대야"로 순화하기엔 너무나 큰 이미지로 머리속에 박혀 있어서 그런가보다.
그래서 아마,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검색 단어로 넣은 것이고, 대형 마트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그냥 "다라이" 찾으면 되는 것을 "큰 대야"로 찾아서 세숫대야를 제외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는 없으니까.
수십년간 거쳐온 언어 순화에서도 살아 남은 '다라이'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그냥 '함지박'으로 순화해서 써야 할까, 그냥 외래어로 승격시켜서 우리말화 시켜야 할까? 이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도 의미 있는 것 같다.
한글로. 200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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