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깍이 여고생의 마지막 축제날

첫눈 오는날 느티울 축제를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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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배(이야기마당)등록 2007.11.29 21:00
1995년 서울 대방동 영등포방송고등학교 앞에 서성이던 그 날,
용기가 나질 않아 가지고 갔던 서류봉투를 도로 손에 쥐고 내려온 후
2000년 또 다른 방송고 수원여고에 입학하려고 준비하던 그때......,
친정 아버지의 암 투병으로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려 올라오셨을때 많은 형제가 있었지만 오직 나만이 서울에 사는 관계로 아버지의 병간호에 여념이 없는 엄마의 식사와
시골에서 아버지를 병문안 오는 사람들과 친 인척들을 대접하랴, 여러가지 문제들로 인하여 두 번째 방송고 입학을 놓치고 말았다.
2년을 병간호와 퇴원 후 시골에서 한달에 한번씩 진료 받으러 올라오시는 부모님 덕분에 5년이라는 세월을 뒤로하고 나는 또 한번의 도전을 준비하였지만 너무 오랫동안 비워둔 두뇌들을 깨우기엔 역부족임을 깨닫고 또 포기할까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렇때 금일 휴업이라는 문구를 사무실 문에 걸어두고 용기를 내라며 차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는 남편을 따라 수원여고 방송고의 교문을 넘어 서류를 접수하러 가던 2005년,
행여 또 다른 생각에 빠져 포기하고 나올까봐 교무실 앞에서 입학금이 든 하얀 봉투를 건네주던 남편 덕분에 용기를 내어 한발 한발 디디던 그때는 누구도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 깜깜한 하늘에 첫 눈이 온다고 문자 메시지 날려주는 우리 남편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고 3 이라는 단어조차 내 것을 만들지 못하고 그저 주부로만 살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벌써 그 즐겁고 아쉬운 시간들을 뒤로하고 어제로 학교 행사인 "느티울 축제"를 마쳤다. 계발활동 시간에 학생들 스스로 강사가 되고, 학생들은 열심히 배워 무대에 올렸는데
첫 번째 출연 축전 행사에 신명나는 사물 놀이반 행사장을 힘차게 울리는 쾡과리 소리와 북소리, 장고소리가 올려 퍼져 우리의 소리를 한껏 자랑하며 분위기를 띄우고.
다도부의 학생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다례를 시연하는 모습은 학이 춤추는 아름다운 군무 같았다.
수화부의 공연은 눈물을 쏟을 만큼 너무 감동적이고 손 동작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뜻을 설명할땐 뭐라 표현하지 못할 경이로움이 있었다.
피부 관리 시범은 얼굴 근육 풀기를 하며 마음 껏 웃고, 강사의 표정에선 아 ! 저래서 젊음을 유지하고 있구나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니 더이상 무슨말이 필요할까?
특별공연 선생님들의 풀룻 동아리 모임의 찬조 출연으로 소리의 아름다운 극치를 맞보았고 여기 저기 앵콜 소리와 함께 이어진 곡들은 심금을 강당을 황홀한 도가니로 몰고갔다.
종이접기의 섬세한 손 놀림은 누구나 좋아하는 예쁜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비즈공예 또한 하나하나 구슬을 꿰어 목걸이,귀걸이, 결혼식 신부의 화관이되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서예부 또한 한획 한획 그어지는 선을 따라 멋진 글씨들이 쓰여지고,
POP부 ( 예쁜 글씨 쓰기)는 글씨체가 예쁘지 못한 나에겐 얼마나 부러운지 꼭 한번 배워보고 싶은 부서이다.
꽃꽂이부는 축제장 입구에서부터 온갖 꽃으로 장식을 하고 내빈 및 학우들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맞이하니 얼마나 장관을 이루던지.....,
한지공예부의 작품에서 옛 선조들의 얼이 배어나오고 그 멋은 그윽하다 못해 그 작품이 있는 안방마님이 된 기분이다.
요가부의 몸놀림은 흥겨우면서 경건하고 무엇인지 온 몸의 경직된 부분들이 꿈틀 거리는 것 같았다.
1부 마지막 무대에 학우들의 작품 여고시절과 심금을 울리는 인사말로 장내에 계신 모든 선생님들과 내빈들의 눈시울을 자아내던 공연은 평생을 두고 잊지못할 것이다.
학우님들의 소중한 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2층 무용실에 관람하는 모든 학우들이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며 잘했다, 멋지다, 격려를 하는 모습은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볼수 있었다.
2부 순서로 각 학년별 ,반별, 장기자랑 시간으로 무대에 올라서면 떨 것 같았던 학우들의 모습에서 어찌 저렇게 아까운 끼들을 숨기고 살았을까? 할 정도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있었다.
틈틈히 교장선생님, 그리고 여러 선생님들을 무대에 올라가시도록 빈틈 없이 준비한 자리에 어느 한분도 못한다 거절치 아니하고 기꺼이 올라 함께 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느티울 준비를 하면서 조마 조마 했던 일들이 순조롭게 풀리니 어느새 그 무대에 올라 서있는 나 또한 많은 학우들 앞에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또 한자락 소중한 기억속의 추억으로 남기고 있다.
이렇게 정말로 시간은 흘러 졸업이라는 말들을 들으며 달려가고 있다.
12월 초에 있을 졸업여행 만을 남겨두고 있는 오늘 창 밖에는 함박눈이 내린다.
힘들었던 시간보다 더 아름다운 날들이 있었기에 오늘 밤 나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의 일들을 다시 계획하며 정리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삼년을 함께 등교하다시피 김 기사가 되어주고, 느티울 축제로 모든 행사가 무사히 끝났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아름 국화 꽃 다발을 예쁘게 사들고 한 시간을 추운날씨에도 기다려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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