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커피를 찾아서.

청계천 골목에서 만난 다방.

검토 완료

신민경(shinnayo)등록 2007.12.04 08:18
신민경 기자는 대진대학교에 재학중입니다.
 
청계천. 자동차를 위한 차도에서 지금은 서울 관광객을 위한 명소로 바뀌었다. 인기 있는 곳에 어김없이 들어선 외국간판들.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잘살아보세’를 외치던 그 시대의 그 분위기들을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걸까? 손님들을 따뜻한 석유난로로 안내하며 고소한 커피를 내주던 그 시대의 다방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세운교를 건너면 펼쳐지는 70년대 그 풍경.

청계천 세운교를 건너 세운상가 쪽 골목을 누비다 보면 여기가 21세기의 청계천인가 아니면 너도나도 열심히 일하던 70년대인가 구분이 가지 않는 곳이 있다. 군밤을 파시는 할머니 마저도 과거의 한 시점처럼 느껴진다. 큰 드럼통에 불을 피워 아저씨들 여럿이 모여 불을 쬐고 있고 그 옆을 지나며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잠시 발길도 멈춰진다. 이 곳의 공장들은 전기, 전자제품의 부속품을 만드는 철강, 선반 공장이다. “드르륵, 끼익……” 소리나는 나무 미닫이문에 기와 지붕을 가진 가게와 공장들이 많다. 뿌연 유리창 안으로 가게 안을 들여다 보면 낡은 기계가 보이지만 그 안에서 모두들 열심히 일하고 있다.

골목에서 만난 오래된 공장. 청계천 거리는 최첨단을 걷고 있지만 구석엔 아직도 과거의 풍경이 있다. ⓒ 신민경

 이런 곳에 어김없이 자리잡고 있는 옛날의 다방 역시 예전의 분위기 그대로이다. 다방 카운터에는 테이블 번호에 따라 가격을 표시해 놓은 색색의 딱지들이 있다. 수시로 주문하는 손님들 덕분에 카운터에는 주인이 꼭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매출에 신경 쓰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마음인가보다. 과거를 느낄 수 있는 물건은 다방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가스레인지 위 큰 주전자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고 그 옆에 전골냄비 같이 생긴 기구에서는 커피잔이 소독되고 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세 분이서 따뜻한 웃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손님이 오면 주인장은 석유난로 근처로 자리를 마련해 준다. 참 오랜만에 맡아본 석유난로 향이 과거를 생각나게 해주었다. 청계천 밖은 2008년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청계천 안은 과거 그대로였다.

다방의 오래된 풍경들. 주방의 모습과 카운터에 있는 손님 주문을 기록하는 도구 ⓒ 신민경


이렇게 옛 것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의 이면에는 그들만의 고충이 있었다. 이 곳 다방들을 들를 때 마다 느낀 것은 종업원이 없거나 있으면 한 두명 정도 이다. 이건 손님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응접실다방 사장님께서는 “청계천 공사 전에는 종업원이 3~4명 이었는데 지금은 나 혼자 운영하고 있어요. 이 근처 공장들도 마찬가지죠.” 예전을 생각하며 아쉬움을 느끼고 계셨다.

 

공장 안에도 근로자 수가 적었다. 한 두명의 사람만이 작업을 하고 있을 뿐 이었다. 이 지역 경제가 많이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영다방 사장님은 “사람들도 가게를 팔지 못해 여기서 버티고 있는 거예요. 내가 가진 게 이 가게 전부니까 버리고 갈 수 없잖아요.” 청계천 개발 전을 아쉬워하셨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우리나라의 다방커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데도 다방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어디서도 맛 볼 수 없는 다방커피 때문이 아닐까? 그 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으니 잊지 않고 찾게 되는 것 아닐까.

 

다방커피의 비법은 커피와 프림의 비율이 아니라 순서.


다방커피를 시키면 첫번째는 저렴한 가격에 놀라고 두번째 고소한 향에 또 놀란다. 참기름을 넣은 걸까? 커피콩을 갈아 압축해서 나온 에스프레소도 아닌데 인스턴트 커피가루를 쓰는 다방에서 고소함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서 가끔씩 커피를 타서 마시지만 그때마다 그저 가벼운 맛일 뿐이었다. 다방커피라고 하면 설탕, 프림, 커피가루의 비율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얘기를 하면 하와이에 놀러 온 팽귄이 되는 꼴이다. 다방을 운영하는 사장님께서 직접 알려주는 비법을 듣기 전에는 말이다.


 “비율이라면 커피는 2, 프림은 3, 설탕은 2.5 라고 할 수 있지요. 아니! 설탕은 입맛에 맞게? 하하” 아니 이렇게 전문가답지 않은 대답이라니…… 약간 실망스러웠다. 사장님께서 대답을 하시고 내게 내 온 커피를 다시 만들어 보여주셨다. 그 시연에 나의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비율은 단지 개인의 입맛이라는 것. 그 시연에서 중요한 것은 순서였다. 우선 커피잔에 프림을 먼저 2~3티스푼 넣는다. 그리고 커피가루를 2티스푼 넣고 계속 데우고 있던 주전자의 따뜻한 물을 커피잔에 반정도 부었다. 이 상태에서 스푼으로 젓지 말고 마지막엔 설탕으로 간을 맞춰 넣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커피의 향은 고소했고 맛도 역시 프리미엄급 이었다.

다방커피 보기에는 가정집 커피와 똑같지만 맛은 전혀 그러하지 않다. ⓒ 신민경

이 다방커피를 주변 공장 근로자들은 하루에 아침, 점심 두번씩 꼭 챙겨먹는 다는 것이다.마치 마약 같은 커피의 향과 맛에 습관화되는 것이 당연하다. 다방에는 커피 외에 전통적인 메뉴들도 많다. 두번째로 잘 팔리는 쌍화자, 걸죽한 율무차, 달큰한 대추차, 칼칼한 생강차, 요구르트도 있다. 사장님께서 직접 추천하는 겨울 메뉴로는 쌍화차, 대추차, 인삼차가 있고, 여름엔 아이스 다방커피와 마차, 요구르트이다. 이 모든 것들이 2천원에서 3천원 선으로 에스프레소 커피점에 비해 매우 저렴하다. 도심카페에서 어쩌다 한번 소파에 앉아 여유를 느끼지만 이 곳 다방 의자는 모두 푹신한 소파이다. 다방은 한가한 오후에 들러 따뜻한 햇살과 기운으로 낮잠을 잘지도 모르는 포근한 장소이다.


커피가 약간 모자른 감이 있어 아쉬움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면 사장님께서 커피를 더 주겠다고 하신다. 리필을 요청해도 반갑게 한잔을 더 주신다. 언제나 리필 가능한 것도 이 곳의 매력이다.

대추차와 율무차 커피 외에도 우리들의 향수를 자극할 메뉴가 다양하다. ⓒ 신민경


내년 여름엔 다방 아이스커피를 맛 볼 수 있기를 ......

중국산에 밀리는 made in Korea. 이 아름다운 청계천도 예외가 아니었다. 겉은 화려했지만 청계천 구석은 외로웠다. 이제 이 지역도 재개발 붐이 일어 곧 없어진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만약 없어진다면 이 곳의 공장, 사람들, 오래된 골목, 다방까지도 모두 이동하거나 없어질 것이다.

몇 년 후 이 자리에는 반대편과 같이 외국어 간판을 앞세우고 고소한 다방커피가 에스프레소 커피로 바뀌는 날이 올 것이다. 커피믹스의 선두주자 다방커피가 없어진다면 우리는 이제 공장에서 나오는 커피믹스로만 그 느낌을 이어 받아야 하는 걸까. 그러기에는 다방커피의 가치가 높다. 이 장소들이 서서히 없어지기 전에 언제 만나볼지 모르는 다방커피를 만나러 가보자. 내년 여름에 진하고 달콤한 아이스커피를 마시러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서울의 상징이 된 청계천에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겉과 다른, 과거의 속 모습이 존재하고 있었다. 과거를 보존하자고 말하면서 우리 스스로가 그 문화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이 곳에서 내일이란 것은 사치스러운 명사일 뿐일지도 모른다. 사라져 가기 전에 한번쯤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2007.12.04 08:18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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