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난 논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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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욱(sidefriend)등록 2007.12.07 21:41
지난 11월15일, 수능시험이 치러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한 결과를 평가하는 시험이 끝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시험스트레스를 풀 겨를도 없이 다시 책가방을 등에 메고 학원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바로 논술이라는 ‘제2의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고교내신평준화 실패로 1-4등급이 0.5점 차이밖에 나지 않아 대학들은 내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수능 역시 변별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로 인해  실력있는 인재를 뽑는 어떠한 장치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대학은 논술을 평가 잣대로 삼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교육계에는 우후죽순처럼 논술강좌가 생겨났으며 교육계의 흐름에 맞춘 호황을 누리고 있다. 현 교육제도의 실태와 대학입시논술의 허와 실을 알아보기 위해 ‘대박 난 논술 선생’ 김지은씨(29)를 만났다.
첫 만남의 긴장해소의도로 “요새 경기 좋으시죠” 라고 물었더니,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차는  뭘 하시겠냐’며 대답을 꺼리는 투다. 표정에는 많은 의미가 있는데, 김씨가 지은 표정은 이번 인터뷰의 내용을 흐릿하게나마 예상하게 한다.
김씨는 국어국문과를 졸업한 후 9년 째 사설학원강사로 일하고 있다. 현재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녀는 일과 공부 둘 다 잡으려 하는 야무진 커리어우먼이다. 대학시절 교내 방송국에서 리포터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현재 논술을 가르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전공과 부합한 직업이냐는 질문에 “대학교 전공과는 부합하지만 현재 공부하는 학문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글이 사람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된다.” 고 대답했다.
-논술 선생으로서 필요한 자질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열정을 기본으로 시사나 시대흐름을 잘 읽고 눈높이를 학생들에게 맞추어야 한다. 기본적인 국어 능력은 물론이고 순발력과 민감한 반응성이 필요하다. 아, 대규모 강의를 지루하지 않게 잘 이끌 수 있는 유머감각과 외모도 중요하다.”
공부 가르치는 선생에게 외모가 중요하다니, 그 부분에 대해 다시 질문하였더니 학생들이 강사의 외모를 중요시한다고 한다. 옷차림에 항상 신경 써야 하고 성형을 하는 강사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비쥬얼 시대에 외모지상주의는 어디에나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김씨도 상당한 미모와 패션 감각을 가지고 있다.
                      *‘제2의 수능’ 논술, 사교육 과열열풍 주도.
-이번 대학입시에서 논술의 비중은 얼마나 됩니까
“이번 수능에서 당락을 결정지을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대학 자체적으로 논술을 실시함으로써 이에 대한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파급효과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그 대학출신강사들이 유리할 것이며 대학별 원하는 문제를 학교는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원으로 몰려 사교육시장의 확대를 가져올 것이다.” 라고 한다.
-사교육시장이 확대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교육 관계자인 나 역시도 후에 학부모의 한 사람이 될 것이고 그러한 입장에서 보면 착잡하다. 언론은 과대해진 사교육만을 공격할 것이 아니라 사교육이 과열되는 원인 뒤에 있는 교육제도의 근본 문제점을 지적하고 변화시키지 않는 한 이런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사교육 관계자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입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돈을 쉽게 번다는 말을 들었나 보다. 나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김씨는 합당한 노동의 대가라고 말한다.
-수능 후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얼마나 됩니까
“이과 과목마저도 통합논술과 수리논술을 기본으로 하여 선발하기 때문에 예체능을 제외하면 논술 없이 합격을 이야기할 수 없다. 심지어 이런 실정 때문에 중학생 때부터 논술이 필요하다 하여 강남권에서는 중학논술반이 급증하고 있다.”
문득 필자의 중학시절이 떠오른다. 그때도 학원이 있었지만 다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하루종일 운동장을 뛰어다녔으며 자전거로 코딱지 만한 동네를 탐방한답시고 돌아다니곤 했다. 하지만 우리 어린 세대들의 어깨는 점점 무거워만 지고 있어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논술 잘하려면 고액 학원수업이 아닌 창의성 연마해야.
-학생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는 심정을 듣고 싶습니다
“선진국들도 쓰기 능력을 기초로 인재를 선발하기 때문에 논술이 확대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진정한 쓰기 능력이 아닌 입시를 위한 기술적 능력만을 키우는 것이 현실이기에 그들이 과연 대학에 가서 학업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내신평준화와 수능 논술까지 짐이 무거워진 고3들이 안쓰럽고 논술 학원비는 다른 과목에 비해 비싸서 가계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논술학원은 소수정예로 진행되고 창의성과 논리성, 문법과 맞춤법까지 지도하기 때문에 고액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강남에서는 주1회하고 월70이상을 받는다고 한다. 학생 한명당 30만원정도의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능 후 단기간 논술학원을 다니면 얼마나 도움이 되냐는 질문에 놀라운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절대 도움이 안된다. 기계적인 논술기술은 오를 수 있겠지만 진정한 자기실력 향상은 어렵다. 수박이 껍질만 핥는다고 달콤함을 느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논술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술적 논술을 잘 하려면 학교별로 선호하는 문제유형이나 관련학과의 예상문제들을 직접 만들어 모범답안을 작성해 보는 것이 좋다. 요즘 학생들이 문법에 약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들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 요즘 논술의 트렌드는 창의성이기 때문에 판에 박힌 답보다 논리성을 갖춘 답을 쓰는 것이 좋다. 당장 논술이 급한 학생이 아니라면 책과 친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책만 많이 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제를 가지고 책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며, 신문기사와 사설을 틈틈이 읽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씨는 ‘자기주도학습’을 추천했다. 결국 시험은 혼자 보는 것이기에 사교육에 모든 것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계획하고 공부하는 습관을 강조했다.
-논술선생이 된 계기가 있습니까
“솔직히 학원 선생을 하면 쉽게 돈벌이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선생으로 대우받고 보수도 좋아 일찍부터 강사직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적은 보수, 다른 선생과의 경쟁, 그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수업준비를 하다가 응급실에 실려 간 적만 세번이다. 주변 선생들이 성대결절과 과로로 학원을 그만둘 때마다 나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학원선생을 하다 보니 점차 돈 때문에 강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순수하고 독창적인 답안들을 낼 때면 큰 성취감과 뿌듯함이 밀려오고 열정적 강의 후에 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고.
“학생들은 논술을 통해 자기 속의 아픔이라던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함께 나누면서  학원 강사로서가 아니라 인생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조력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씨는 논술을 가르치며 상당한 역할갈등도 겪었는데, 학원 강사로서 기대되는 능력과 학생들의 조력자의 갈등이 그것이다. 바쁘게 진도를 나가고 가르치고 싶지 테크닉만 가르치며 지정해주는 책을 강요하는 것과 진정한 문학의 맛을 알려주는 것의 갈등.
논술선생 김씨는 바쁘게 논술학원을 오가며 제2의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던진다.
“나중에 대학가서 제대로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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